거버넌스의 존재 이유
| 거버넌스 |
다종다양한 요구를 사업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이 거버넌스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개별 조직에 함께 하려는 일의 비전과 가치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거버넌스를 제안하고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다가치학교 사업을 시작한 2022년 4월, 우리 팀은 한 달 내내 사업의 전체 얼개를 짰다. 벽에 큰 종이 다섯 장을 붙여두고 각각 비전, 연간 일정, 과정, 예산안, 그리고 맨 마지막 종이 맨 위에 ‘거버넌스’를 적었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려운 것이 거버넌스다. 당시 얄팍하게 듣고 경험한 바로 거버넌스는, 먼저 우리가 벌이는 일에 책임과 역할이 있는 예산 출연기관, 공공기관, 사업, 단체, 사람 등을 추린다. 그리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앞서 추려낸 그룹들의 리더를 한자리에 모은다. 그런 다음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하고 중요한 현안들을 함께 결정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이해관계가 얽힌 대표들을 한 자리에 앉혀 논의하는 구조를 짜는 일이라 투박하게 정리하고 겨우겨우 거버넌스 부분 종이를 채워갔다.
다가치학교 운영에 책임과 역할이 있는 주체들을 일단 적어놨다. 적어 보니 무려 8개로 정리가 되었다. 청소년, 코디네이터, 위수탁 운영 법인, 학교, 교육청, 구청, 교육지원청 등등.. 그들을 묶는 회의를 1년에 두 번 정도 하자는 약속과 함께 운영이 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고민하기로 한 거다. 거버넌스 구성원이라고 적어놓은 그룹들이 각자 다가치학교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사장님이 8명인 것인가. 당시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한 단계에서 그 사장님(?)들과 미팅하던 터였다. 각자가 생각하는 다가치학교의 역할, 운영, 철학이 너무 달랐다. 하지만 무엇 하나 무시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 작은 배움터에 그렇게 원대한 사명이 있었다니.
꾸리들은 늘 운영팀이 하는 일에 한껏 오지랖을 부리는데, 전체 사업의 계획을 세우던 그 주에는 벽에 걸린 워크숍 결과물에 질문이 쏟아졌다. 모든 질문에 성실하고 친절하게 답하고 설명했다.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했음을 자신한다. 역시, 거버넌스만 빼고.
(거버넌스가 적힌 종이를 가리키며)“이게 뭐예요?”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나도 잘 모르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질문을 한 꾸리의 눈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설명을 추가하려는 순간.
“아 뭐야, 커버댄스라고 쓴 줄 알았네. 재미없는 거였잖아요.”
이 말을 허공에 던짐과 동시에 그는 굵은 검은색 매직을 들고 그 큰 종이에 적힌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모두 색출해 획을 몇 개 추가했다. 그 종이에 남은 거버넌스는 없었다. 모두 커버댄스로 바뀌어 있을 뿐.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고, 그는 팔랑팔랑 다시 교실로 날아갔다. 커버댄스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도, 회의 구성원, 회의 안건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단 3개의 획이 추가된 언어유희였지만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거버넌스를 생각하면서 8명의 사장님을 대하듯 어떻게 이들의 요구를 잘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만 하고 있었던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소년이 즐겁게 공간을 점유하고 풍부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신나게 계획하던 것들이 거버넌스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앞서 세운 계획에 대해 ‘이게 맞나?’ 의심하게 됐다. 이 사업에 책임과 역할이 있는 주체들의 요구가 마치 해내야 할 과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가치학교와 연관된 주체들은 이곳에 오는 청소년이 커버댄스를 안전하고 즐겁고 멋지게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게 핵심이다. 요구가 각자 다르더라도 지속 가능한 사업이 가능하길 바라는 애정이 담겨있으니 차분히 소통하고 합의하여 나아갈 수 있다. 모든 요구를 수용한다는 미명으로 우리의 현장을 혼돈의 정체불명 비빔밥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아직도 ‘커버댄스 사건’의 기억이 선명하다. 특히 설명을 듣고도 아리송했던 눈빛이 직접 획을 그어 거버넌스를 커버댄스로 바꾸면서 선명한 눈빛으로 바뀐 그 순간은 정말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직도 커버댄스 사건을 일으킨 청소년은 거버넌스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가치학교는 각기 다른 자기만의 ‘커버댄스’를 추려는 청소년들로 가득하다.
거버넌스는 평상시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특별한 순간 생기를 얻어 살아난다. 평상시 거버넌스는 존재감이 약하다.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거버넌스의 역할은 사실상 없다. 일 년에 몇 번 만나 안부를 묻고 계획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또 앞으로 진행될 사업이 잘되도록 조언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거버넌스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청소년이 커버댄스를 안전하게 추기 어려운 그 상황이 찾아왔을 때 말이다.
하지만 문제 상황은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지라 평소 거버넌스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이내 형식적인 회의가 될 뿐이다. 구성원 사이에 연결은 약해지고 서로가 가져야 할 책임은 가벼워진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정작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결국 거버넌스도 아랑곳이다. 그래서 다가치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는 각자의 일로 바쁘니 일부러(?)라도 아랑곳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를 하나 정해뒀다. 그건 축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모임을 3년이나 멈춘 이후 축제가 참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학교마다 작은 축제가 참 많았다.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면서 관계를 다졌다. 하지만 최근 축제를 보면 큰 규모의 축제들만 눈에 띈다. 큰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나 지자체의 후원을 받은 대형 축제들이 성행하고 있다. 축제가 SNS를 중심으로 널리 홍보되면, 멀어도 축제를 즐기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축제들은 대중들을 위한 행사다. 축제를 여는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축제가 코로나 이후 축소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코로나 이전에 학교 축제 시즌이 되면 학교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은 축제 준비에 몰두했다. 모든 학생은 축제에 역할을 하나씩 맡았다. 동아리를 하는 이들은 동아리 차원에서 부스나 공연 등을 준비했고,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반마다 부스를 기획해서 축제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난 축제 때 반 친구들과 다 같이 공연을 준비했었고, 공포 체험 방을 만들었다. 역할은 맡고 있었지만, 축제는 모두가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보호자님들은 늘 맛있는 떡볶이를 준비해 주셨다. 학교 선생님들은 축제가 안전하게 잘 운영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동네 파출소, 소방서에서도 직접 와서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주었고 지역구 정치인들도 와서 한마디씩 했다. 찬조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옆 학교 춤 동아리, 밴드부, 힙합 동아리 등이 섭외되어 찾아온다. 이 당시 공연 동아리는 다른 학교 축제에 얼마나 많이 섭외되는지가 실력을 증명하는 척도였다. 학교에는 들어오지 못해도 정문 앞에는 늘 주변 학원에서 간식거리와 홍보물을 나눠줬다. 새로 개업한 치킨집에서도 나와서 축제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치킨너깃 하나씩 입에 물려줬던 기억도 난다. 축제가 끝나면 친구들과 다 같이 동네 분식집에 갔다가 노래방에 가고 온종일 노는 날이었다. 학교 주변 온 동네가 그날만큼은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교 축제라는 작은 행사에 얼마나 많은 지역의 이해관계자가 뒤엉켜 있었는지 새삼 놀란다. 행사를 준비하고 안전하게 이끄느라 선생님들께서 참 고생 많이 하셨다. 비록 과거의 향수처럼 꺼내든 추억일 수 있겠지만 다시금 학교 축제가 제대로 부활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가치학교에서도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초대해 직접 준비한 축제를 함께 즐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랑곳할 수 있는 날이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축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어린이날 축제, 청소년 축제, 지역 공원에서 열리는 생태 마을 축제, 동주민센터에서 여는 마을 축제, 오류중학교의 축제와 공익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함께 여는 공익 활동 박람회까지. 참여하는 축제부터 직접 여는 축제까지 1년 동안 거의 매달 축제가 있다. 그렇게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며 거버넌스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커버댄스를 즐기는 현장을 지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