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 구석과 구석이 연결되면 변방이 된다

변화를 틔우는 매너리즘

by 얼룩
| 연대 |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가치를 합의(점검-토론)하고 힘껏 행동한다. 변방에서 서로 다른 공동체는 다음 단계를 상상하고 세상을 설득하는 공공의 언어를 찾아낸다. 변방의 또 다른 이름은 연대다.


중심이 되지 못한 구석, 혹은 변방이라 부른다. 입시 경쟁 구조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청소년 주도성과 삶을 지지하는 교육을 상상하는 다가치학교를 비롯한 교육 공동체는 변방으로 볼 수 있겠다. 중심과 변방은 끊임없이 자기 증명을 해야 한다. 변방은 중심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중심은 그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정-반-합 과정을 거쳐가며 세상의 ‘표준’이 형성된다.

중심은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어 변방의 작동 방식을 경계한다. 이윤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중심과 공동체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변방의 역학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 하지만 변방의 메시지와 문법이 중심을 천천히 변화시킨다. 그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한때 변방에서 익숙하던 방식이 중심에 자리를 잡는다. 불과 10년 전 학교와 청소년 활동 현장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변화는 생각처럼 느리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수십년전 교육운동이 혁신 교육 정책이 되고, 마을교육공동체 인프라를 키워냈으며,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 같은 자치배움터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변방은 변방의 몫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구석을 만들어 실험하고 영역을 넓혀가며 변방도 유기적으로 바뀐다. 그래서 변방은 시끄럽다.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토론이 이루어진다. 각자의 활동 현장에서 가치와 변화를 추구하는 주체들의 주도성과 변방이 세상을 바꾸는 힘은 구석이 모여 구성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중심의 강고한 틀에 지치기도 하고, 변방 안에서의 합의와 협력도 정말 어렵다. 방식도, 관점도 다르지만 변방에 있는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변화는 비슷했다. 그것은 각자의 공동체를, 구성원 모두가 주도성을 발휘하며 존재할 수 있는 현장을 짓는 것이다.

2023년부터 다가치학교에서는 인천의 〈청소년자치배움터 은하수〉와 힘을 모아 매년 〈전국청소년자치-주도활동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자치배움터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만나고 풍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었다. 토론을 통해 전국 각지의 활동가, 청소년, 교육자들은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차이점을 분석한다. 서로 다른 현장에서 겪고 있는 비슷한 어려움, 문제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는 감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 서로의 구석이 쌓아온 노하우를 공유하며 휘발될 뻔했던 각 구석의 경험이 살아난다.

매년 컨퍼런스에는 전국에서 100여 명이 찾아온다. 〈청소년자치배움터〉 사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 학교 교사, 여성가족부 산하의 청소년활동시설 실무자, 지역에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리더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자치를 실천하고 있는 청소년이 온다. 각자 겪고 있는 환경, 상황이 천차만별이고 그에 따라 시도하고 있는 교육활동 역시 완전히 달랐다. 그럼에도 대화가 되고, 영감을 주는 경험이 오고 간다. 누군가 겪고 있는 문제 상황을 함께 고민해 준다. 그것은 모두를 이어주는 변방의 언어가 같기 때문이다.


구석과 변방의 매너리즘

세상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기 위해, 중심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석과 변방은 자주 매너리즘에 빠진다. 우수한 성취를 보이는 다른 구석의 사례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변형을 줘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상급 기관에서는 차별화시킬 전략을 요구한다. 비슷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생겨 다녀오면 힘이 생기다가도 다시 현장 상황 때문에 막막하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굴레에서 중심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 현장을 짓는 우리의 동력은 크게 한풀 꺾인다.

14세기 유럽인들은 마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한 것처럼 온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를 우린 문예 부흥기, 르네상스라 부른다. 르네상스는 약 200년간 이어졌다. 그 시간은 예술에 형식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와 음악, 건축물, 그림이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생겼다. 그림의 경우 원근법, 황금 비율, 인체 구조, 연출 기법 등이 개발되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라파엘로는 이 기법들을 활용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작을 그리기도 했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의의는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방법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세기의 천재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배우면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 자연의 경관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훌륭한 르네상스 선배들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정리해 놓으니, 후배들은 그 방법들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지사로 느껴졌다. 위대한 선배들의 업적을 뛰어넘기가 어려웠다. 기법과 표현 방법을 이리저리 변형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아 헤매는 이 시기의 화가들을 매너(manner, 방법)리즘 화가라 불렀다.

우린 변화를 쉽게 오해한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바뀐다고 말이다. 소수 천재, 리더의 매력적인 제안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이에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매너리즘 화가들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 중심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표현 언어를 찾으려는 화가들은 늘 고뇌하며 작품 활동을 해왔을 것이다. 사실 모든 화가는 매너리즘 화가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장도 그렇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 기준과 가치가 있으리라 믿고 현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지향하며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현장, 각자의 작은 구석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석과 구석은 이어져 변방이 된다. 변방은, 그 연대의 힘은 중심을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든다. 매너리즘은 변화를 이끄는 과정을 부르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변방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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