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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고물 Aug 08. 2020

제주도 푸른바다, 떠나요.

제주도 동쪽 바다 앞, 작은 집.

         


    거실을 가운데에 끼고 방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공격하듯 들려오는 바람 소리로 가득 차는 방 안, 바들바들 떨리는 오래된 주택의 추위와 인적 드문 시골 마을 속 세련된 카페들과 가게들. 그리고 성난 파도의 공포와 해초가 밀려 올라오는 푸른 바다. 그 모든 것이 제주도였던 나의 공간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기 귀찮음에 밀려, 소파에 대충 누워 핸드폰을 보는. 그런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유명 포털 사이트 메인에 제주도가 보였고 친구들과 제주도 이야기를 하던 차, 친구가 sns에서 본 제주도 추천 장소를 알려주었다. 제주도 시골 풍경이 많이 남아있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작은 해변이 있는 동쪽 마을이었다. 다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당장 가지는 않겠지만 내가 나중에 꼭 가볼 것 같은 느낌. 장소를 기억하러 들어간 검색창에는 셰어하우스에서 입주자를 구하고 있었다.


결정은 충동적이었고 준비는 간단했다. 20인치 캐리어. 일할 노트북과 부자재로 한쪽 면을, 반대쪽 면에는 옷가지와 세면도구로 채웠다.  잠옷과 속옷, 하의 두 벌, 티셔츠 두 벌과 가디건, 영양제. 관광하지 않을 것이기에 가능한 짐이었고 “놓고 간 게 생기면 택배 보내주기다!” 가족들과 뻔뻔한 약속으로 짐 싸기를 끝낼 수 있었다.


아쉬운 짐이자. 누군가가 봄의 제주살이 팁을 말해달라 한다면 후드티와 모자를 넣으라 할 것이다. 제주도의 바람은 내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장옷처럼 뒤집어쓰고 돌아오게 했으니까.


바람은 엄청났다. 언제나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공간 안에서만 휴식을 찾을 수 있었는데,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와 멀어질까 기대했던 제주도는 오히려 살벌한 바람 소리로 가득차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달랐던 점은 저 무서움에 내가 기대 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집 안에 피신하여 숨어드는 딸을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은 처음으로 보낸 일출 바다 사진에 `나가서 찍은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찍은 것 아니냐` 농담 아닌 진담을 건네 오셨다. “그러게요, 제가 집 밖에 다 나가네요.”

산책을 하다 근방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는 숙소 사장님을 뵈었다. 가벼운 자기소개로 제주살이 한달 계획과 생활 패턴을 알고 계신 사장님은 밖에서 나를 만난 것 놀라워하셨다.  “그러게요 제가 밖에 다 나오네요.”


하루에 한 번 사진을 꼭 보내라는 친구들의 말에 “숙소 천장 사진 모음이 되겠는걸.” 말하던 내가 산책이 즐거워진 것이다. 한 번 나가기도 힘들었는데 어느새 나가서 한 시간 넘게 걷다 바다를 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프리랜서로 장소는 바뀌었지만, 업무는 똑같았기에 평소와 다름이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평소와 다른? 내 평소는 ‘일’이다. 나를 일어나게 하고 하루를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를 짓는 것도, 휴식도 외출하는 것도 일로 결정되는 것이 당연하였었는데. 뭔가 변했다.


 일 시작 전에는 산책을 가고 싶어졌고, 산책을 나왔지만 바람이 쌀쌀하니 목욕탕에 가고 싶고. 부족해진 영양소에 맞춰 커피보다 우유로. 자전거는 바람을 피해 꼭 돌담 옆에 세워 두기. 머리를 감고 산책에 돌아오자 그사이 머리에는 바다 짠 냄새가 가득했다. 퍼석퍼석. 그렇게 내일부터는 산책을 다녀온 뒤에 머리를 감자고 다이어리에 적는 순간, 이 공간이 나를 밖으로 꺼내더니 아주 사소한 것까지 바꾸어 놓는구나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실소가 쌓여 잠시 머물렀던 푸른 바다 안에 추억이 생겼고, 나는 돌담 속에 갇혔다. 보일 듯 말 듯 비슷한 눈높이의 담들은 내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리저리 꺾이고 숨은 돌담길이 내가 이방인이라고 말하는 기분이다. 단지 저 멀리 바다만 보이고 난 그 바다만 쫓아 걸음을 옮긴다.


가끔씩 일기장이 나에게 말한다.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를. 지난날 일기장 속, 같은 단어들이 나를 만들었기에 파도처럼 철썩! 치고 가버리는 그 마음이 생소했다. 이 들뜬 마음을 만든 것은 제주도일까 이 마을일까, 혼자 만의 시간일까, ‘제주도 좋다, 좋다,’ 주변에서 말해주는 말 한마디 덕분일까?

어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한 달 내내 반복해온 고민인데, 이제는 왜 고민을 했던 것인지 우스울 정도로 분명해졌다.


가장 많이 생각했던 귀농하고 싶다도 아니고, 한라봉은 귀엽다도 아니었다. 한 명, 나와 대화해 주는 친구가 있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나는 바다가 있어서 기뻤던게 아니라 이 좋은 순간들을 같이 나누고 같이 행복해 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좋았던 거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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