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계획서가 쏘아올린 큰 공
지난 4월말이었다.
중학교 3학년인 첫째 아이와 학교과제로 진학계획서를 작성하다
그 알맹이 없음을 발견했다.
그저 동네 고등학교, 집 가까운 대학의 이름을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했다.
(이 자체로 알맹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유가 별다름이 없었다는 것이 알맹이 없다는 표현의 요지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이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할(?!) 때이며
그 방향찾기는 내가 뭘 잘하지? 뭐 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일러주며
네가 반드시 동네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같은 계획이어도 그 이유(=알맹이)가 분명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후였나? 아이가 나를 마주하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딸: 엄마 나 음악하고 싶어
나: 어? 음악? 음악 뭐? 진짜? 어 그런데.. 음악의 길은 시작이 좀 늦긴 했을 껀데.
딸: 엄마는 저번에도 그랬어. 3년전에 내가 첼로 배우면서 전공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엄마가 악기 전공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악기 전공은 최소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 시작해서 예원학교부터 진학해야했었다고 말하며 단칼에 잘랐었어.
나: 내가..... 그랬....었어? 그렇게 말했었다니 엄마가 미안해. 인생에서는 '너무 늦었다'는 건 없는데 말이야.
딸: 나.. 생각해보니 음악이랑 함께하는 순간들이 제일 즐거워. 그래서 지금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그 자리가 시작이었다.
이 아이는 피아노, 바이올린, 우클렐레, 기타, 첼로, 드럼, 노래를 배울때마다 재밌어하고, 선생님들로부터 악기를 빠르게 익힌다는 평을 듣긴 했었다. 애미의 눈에는 그저 음악적인 감각이 있는 정도라고만 여겼었는데, 이제 열 여섯살이 된 아이는 그 길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보다 아이가 더 용감했던 것 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