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텀블벅에서 진저티프로젝트 발행의 미니북 세권을 펀딩했어요. 그 세권이 커피콩재생 연필과 함께 제 품에 들어왔을 때 정말 반갑고 기뻤는데, 가방 속에만 넣고 다니다가 오늘 새벽에야 이 책을 마주했네요. (갖고 싶은 책은 일단 눈 앞에 놓고 보는 나님, 그리고 어느날 그 책 제목이 내게 인사를 해오면 그제서야 그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곤 해요:)
3권의 책 중 제가 가장 먼저 집어든 것은 <나의 일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소제목의 제3권이었어요. 저의 최근의 일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겠죠?
구글 아시아 어라운트 리드 홍혜진님과 22살 배태랑님이 주고 받은 인터뷰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옮겨적고 또 거기에서 파생된 제 생각들을 몇자 적어볼께요.
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불확실성 속에 있었지만 그때 가장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 거 같아요. 그게 잘못된 길이었을 수도 있고 더 돌아가야 하는 길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나에게 제일 잘 맞을 것 같아서 선택한 거에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스스로 '선택'이라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영원무궁한 성공'이라는 판타지를 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걸 찾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선택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선택 후 대실패로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었어요.
- 그런데! 그런 선택과 결과라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재빨리 이 비현실적 판타지를 버리고, 내게 물어봐야 하는 거에요.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뭐지?'라고요. 언제나 인생은 불확실성 속에 있고, 완전 무결한 선택과 결론이라는 건 없으니, 내가 가장 원하는 것, 내게 가장 fit되는 것(=이게 나인가?라는 질문에 나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그 선택의 기준이어야겠더라고요. 그 질문을 내게 던져보고 얻은 답이 '그 당시에 내게 가장 좋은 것'이었으면 충분한 거에요. 그랬다면 후회따윈 필요 없는 것이고요.
상황을 바꾸어 가는 노력
- 육아휴직 복직 후, 조직 내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임신 및 육아휴직 복직 후 겪게 되는 동료의 상황과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원할하게 협력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또 교육도 했다고 해요. 구글이라는 회사의 우선가치인 다양성과 포용에 맞게,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서로 잘 알고 존중하며 코웍할 수 있도록 '누글러(뉴 구글러, 구글에 새로 조인한 임직원)' 가이드 적용사항처럼 안내하는 교육이었다는데요.
- 놀라웠어요. 내가 겪은 어려움을 상황 탓으로 돌리거나 한 개인이 극복해야하는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내 주변의 상황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행동력이요. 어떤 상황에서도 이 행동력이 다수의 구성원에게 탑제되면 우리가 일하는 환경은 한발씩 더 나아질 것이 분명하니까요. 일부 부서(인사팀?)의 일방적인 리딩이 아닌 서로가 공감하고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만들어 가니 변화의 힘은 더 크겠지요. 근데 이거 수평적인 조직 문화 아닌, 피라미드 조직의 국내 회사에서도 적용가능할까? 하는 의심도 잠깐 들긴 했지만(저희 회사 분위기는 그르크든요...), 우선 나부터 용기내고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해보며 그들도 이 필요를 느끼고 있는지 부터 시작해 봐야겠어요.
일의 정의와 의미
- 나의 삶에 맞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게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안에 나의 커리어도 있고, 나의 가정도 있고, 그걸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도 같이 있는 거요. 그 안에 있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게 제 '일'인 것 같아요.
- 내게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최근 몇년동안 내게 종종 물었던 질문이에요. 어떤 질문이던 지긋이 꾸준하게 들여다봐주어야 그게 명확해지는데, 저는 그러질 못했네요. 그러나 이러저러한 일의 위기가 오면 (큰 변화가 오거나, 내가 재미가 없어지거나, 회사에서 희망퇴직자를 신청하라는 공고가 뜨거나) 그제서야 그 질문을 내게 던지곤 했죠.
- 이번 기회에 다시 물어 보아요. '나에게 일에 대한 정의는 뭐지?' 제게 일은 저의 일부인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냥 저요. 일을 하며 나를 들여다 보고, 내 안의 역량을 키우고, 또 그걸 꺼내 써보며 연마하기도 하고 그걸로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누군가와의 연결감을 느껴요. 그래서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느끼거나, 혼자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면, 저는 마음의 힘이 뚝 떨어지곤 했었던 게 깨달아지네요.
단 한사람에게라도 새로운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인터뷰어는, (이제껏 마냥 두렵기만 하고, 우선순위에 두지 못했던) 결혼과 육아의 양립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아는 폭넓은 마음을 키워줄꺼라는 확신이 생겼데요.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 20년차 중 엄마 살이를 병행한지 15년차인 저는 일과 엄마살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마다, 이 두 가지 중 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의 고민만 해왔었던 것 같거든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양립하느라고 이렇게 힘든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요. 근데.. 이 인터뷰를 보니 저 인터뷰이 못지 않게 열심히 잘 살아왔더라구요. 한 두명 정도는 제 삶을 보고도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의 가치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이 발견되어서 참 감사했어요.
직업의 형태가 바뀐다고 해도 나와 일에 대한 가치는 더 크게 담을 수 있겠어요.
-이제는요. 일과 부모살이 두 가지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직업의 형태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뀔 수는 있어도(정규직, 회사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일과 엄마살이는 양립해야 하는 거죠. 어쩌면 곧 엄마의 삶에 일이 필수요소로 들어가게 될지도요?
-오늘의 인터뷰를 보니, 보다 지혜로운 양립을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후배들과 내 딸들에게 '보다 넓게 열린 문'을 열어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나와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으니 좀 더 힘을 내어 살아야겠다는 용기도 생겼고요. 최근 제가 하고 있는 Next Round에 대한 고민도 '직업'의 형태는 자유롭게 열어 놓되, 그 안에 담고 표현하는 '나와 일에 대한 가치'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크게 담을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 본 원고는 진저티프로젝트에서 발간한 <롤모델보다 레퍼런스3> 나의 일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책 중 배태랑님과 위커넥트 김미진 대표의 인터뷰 글을 읽고 받은 영감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