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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도 색깔론이 등장할까?

김동춘 교수의 <전쟁정치>

by 한량바라기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여야의 대선 후보들은 현재 각 진영의 후보가 되기 위해 서로 물고 뜯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기존과 달리 들리지 않는 단골소재가 있다. 바로 색깔론이다. 우리 사회가 레드콤플렉스를 극복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아직 여야 후보가 제대로 붙지 않고 각 진영 내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야 후보가 확정되면 분명히 색깔론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질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전쟁정치>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내부의 적 만들기

213660299g.jpg ⓒ 길


사실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책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을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이념은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왜곡되었고, 작금의 현실 또한 그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오산이었다. 물론 책 전체를 꿰뚫는 전쟁정치의 개념이야 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가 열거해 놓은 사례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것들은 너무 많았고, 다양했고, 처참했다.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전쟁정치의 특징 중 하나로서 내부의 적 만들기를 지적했다. 결국 전쟁은 적군과 아군만이 존재하는 특수한 상황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만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 논리가 사회적으로 내면화 되면서 사회 내부적으로도 국가에 의해 끊임없이 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국가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흔히 전쟁 기간 중에 발생한다... 공권력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도 팽개치고 함정과 기망, 기만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전쟁 상황의 공포 때문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 27p


한국전쟁 시기는 물론 지금까지도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조직에서 바른말 하는 사람도 '빨갱이'다 - 103p


전쟁정치는 국가가 대내외적 적과 마주하고 있다는 상황 인식 위에서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으로 선포되고, 국가기관이 내부의 적을 자주 공격한다 - 171p


결국 이는 보수세력이 색깔론을 거론하는 이유로서, 그들은 끊임없이 종북좌파를 운운한다. 그 대상이 진짜 종북이고 좌파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 있다는 것을 전쟁을 겪었던 유권자에게 계속 상기시킬 뿐이다.


그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들을 떠올려보자.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 '동성애 찬성 하느냐?', '왜 5.18유가족에게만 군가산점을 주느냐?' 등 그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내부의 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적시함으로써 전선을 긋는다.


그동안 전쟁정치를 통해 타자를 대상화 하는데 익숙한 노년층에게 보수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국가는 죄가 없다


또한 전쟁정치는 국가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만든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란 국민들이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기구임에도, 전쟁을 통해 국가는 절대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전쟁이란 특수상황 속에서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불가피하며, 전쟁 주체로서의 국가는 가장 큰 권한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국가의 사과는 어불성설이다. 국가는 무오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 결정의 책임자나 지휘 명령선이 규명되기는 어렵다. 그것은 각 개인이 아닌 국가의 의지였으며, 국가는 사과 대신 유감만 표명할 뿐이다.


국가는 인권침해나 잔혹행위 발생 사실이 알려지면 일단 거짓 발표를 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이 공개되어 문제가 되면 은폐와 부인, 증거 인멸, 날조 등을 시도한다. 즉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 점은 모든 국가범죄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 109p


모두 '국가는 잘못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 129p


보수 언론들이 세월호와 관련하여 이제 그만 하면 됐다며 막말을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정치에 길들여져 있는 이들에게 국가의 절대성을 재확인시키는 작업으로서, 보수 언론들은 이를 통해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한다.


혹자들은 전두환씨가 5.18 광주항쟁에 대해 사과는 못할망정 헛소리를 한다고 분개하지만, 기존의 가치관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전두환씨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당시 국가의 선택이었으며,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정치에 있어서 국가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기구가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이다.


전쟁정치의 폐해


문제는 이와 같은 전쟁정치가 우리의 일상을 파괴시킨다는 점이다. 전쟁정치는 국가를 절대화시키고 내부의 적을 생산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사회정의를 말살시킨다. 국가가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기 위해 모든 상황을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내부의 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해방정국이나 한국전쟁 때 있었던 민간인 학살이나 군부시절 때 있었던 민주주의 탄압,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세월호 등을 떠올려보자. 그 모든 건 국가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맞다.


그러나 국가는 사과를 하지 않기 위해 그 모든 사항을 이념의 문제로, 정치적인 문제로 몰아갔고, 학살된 이의 유가족들이, 수몰된 자식을 둔 부모들이 오히려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누가 사회정의를 이야기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이야기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겠는가.


전쟁정치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범법자나 패배자는 힘이 없어서 패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권력과 법 집행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 184p


전쟁과 파시즘, 군사독재의 여파는 단순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과 지역사회 그리고 사회 자체를 파괴한다...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세상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굴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력감의 노예가 된다. 그들은 자기비하와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채우면 세상은 지옥처럼 변한다 - 256p


전쟁정치를 극복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짓눌러왔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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