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믿고 읽은 책, ‘일이 모두의 놀이가 되게 하라’
자기계발서의 함정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종류의 책들이 있다. 흔히들 자기계발서라고 불리는 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이나 화법 등을 나열하고 이들처럼 하면 꼭 성공할 것 같이 이야기는 하는 도서들.
저자들은 무슨 대단한 비법인 마냥 자신만의 성공 비결을 가르쳐 주지만 그것을 읽는 나 같은 이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그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일반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되는 사람이 이야기했다는 것이 다를 뿐.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그 책을 펴는 순간 독자가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보통 자기계발서를 찾는 독자들은 그 책에서 자신을 깨우칠 만한 계기를 얻고자 하는데, 자기계발서는 항상 그 답을 제공한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 습관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한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그것이 진리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나는 자기계발서를 멀리해왔다. 자기계발서가 성공한 사람의 습관이 아니라, 그 습관을 가지고 있는 '성공한' 사람 그 자체가 주인공인 이상 자기계발서를 쓴 저자 중에서 나의 이목을 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출판사가 제목으로 붙여놓은 '성공'의 정의부가 불명확했다. 도대체 누가 성공을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돈? 명예? 사회적 지위?
이런 내게 지인이 책 한 권을 권했다. 하필 자기계발서였다. 제목 하여 '일이 모두의 놀이가 되게 하라'. 안 봐도 빤했다. 일을 일로써 대하지 말고 놀이처럼 하면 가장 생산성이 높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려니. 그런데 저자를 보는 순간 책을 펴게 되었다. 과거 '아름다운 가게'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사무처장이요, 현재는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대표이사인 이강백 작가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저력
내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를 처음 접했던 것은 2015년 봄이었다. 강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서울시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을 모아 지역에서 소소한 장터를 개최했는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그때 참여한 기업 중의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공정무역'은 그리 대중화된 개념이 아니었으며, 이름만으로 그들이 윤리적 거래를 통해서 저개발 국가의 농민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구나를 추측할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6년 전에는 더욱 낯설었던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하물며 그들을 모아놓은 장터라니. 그런데도 다행히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기업들은 열심히 업체를 홍보하고 물건을 판매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돋보이는 업체가 있었으니 바로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였다.
그들이 군계일학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철저한 준비 때문이었다. 물건을 팔고 업체를 홍보하는 단순한 지역의 장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디스플레이부터 시작해서, 시식하는 시스템, 홍보 방법 등 그 모든 것이 다른 업체들과 비교 불가였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하면 대부분 영세하고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을 갖게 마련이지만,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프로였다.
게다가 그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냥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다른 업체와 달리 그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손님을 이끌었다. 사람들에게 공정무역을 설명했으며, 자신들의 제품이 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소비자의 구매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런 직원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단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팔고 있었으며, 동시에 세상을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뒤로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롤모델, 아니 최소한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데에 있어서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사업이 사회적가치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으며, 아무리 사소한 행사라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이강백 대표가 쓴 자기계발서라니. 그는 도대체 어떻게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철학과 유머
이강백 대표의 '일이 모두의 놀이가 되게 하라'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이다. 어디를 펴서 읽든 문제가 되지 않고 제목만 봐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게다가 하나 같이 모두 좋은 내용들이다. 바로 이런 식이다.
무엇이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팀을 만들까? - 공감능력과 기회의 평등
리더십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의는 무엇인가? - 명덕, 혁신, 비전
리더십의 핵심은 관찰!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 - 무엇을 반복하는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조직에 필요한 인재의 두 가지 특징은? - 협력할 줄 아는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
그러나 읽다 보면 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저자의 삶의 궤적이 갖는 힘이다. 그는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조직을 추구했고, 설립했으며, 실제로 나와 같이 그 조직을 접한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저자는 그 힘을 주는 바탕으로서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꼽는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지속가능성인데, 그것은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사람이 일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이야기한다. 리더란 사람들이 일을 재미있게 하는 데 있어서 그 구조가 가능하도록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저자는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는 각 개인에게도 주목한다. 결국 개인이 서야 조직이 서기 때문이다. 그는 찰리 채플린이 이야기했던 철학과 유머를 강조한다. 언제나 우리는 고통과 근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전, 즉 비트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철학 혹은 유머에서 온다는 것이다.
비트는 능력은 철학 아니면 유머에서 나온다. 철학으로 비추거나 유머로 비트는 순간 고통스러운 상황의 에너지까지 다 흡수하여 자신의 에너지로 재창조된다. 물이 증기로 전환되면서 에너지로 바뀌듯이,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전환될 때 그 순간에 에너지가 생성된다. 다이내믹한 반전의 감동이 생긴다. 고통을 즐거움으로 만드는 싸움의 기술은 이것이다. - 97p
이 밖에 저자는 개인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협력에 필요한 요소 등을 열거한다. 언뜻 보면 하나로 엮이지 않은 듯하지만, 읽는 이의 상황에 맞추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조직에서 리더를 맡은 사람에게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 곁에 두고 시간 나면 한 번씩 들추어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