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마스크’ 현대史, 차이와 연대의 패션 코드

by 인이상

코로나19가 발생한지 1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일일 확진자가 나라마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 많게는 수십만 명이 발생해 ‘집단 면역’은커녕 ‘집단 공포’가 증폭되고 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2월부터 백신을 순차적으로 공급해 인플루엔자(독감) 유행 시작 전인 11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혀, 코로나19와의 대치 국면 해소는 다시 1년 남짓 뒤로 밀렸다.


통제보다 자율을 선택한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을 막지 못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위기론까지 거론되는 등 전 세계 주류 이데올로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선진국들은 백신 개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했지만, 전 세계 자본 권력 중심부가 전염병 앞에 무력화되는 모습은 코로나19가 초래한 비극보다 더 깊은 불안과 트라우마를 대중에게 안겼다.


거대 자본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전 세계적 위기에 직면한 대중은 오직 마스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마스크는 입을 무력화하는 대신 ‘마음의 창’인 눈을 소통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대중은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최소한 방어막’이자, 정부와 자본의 무능을 겨냥한 ‘최소한의 저항’으로 마스크를 일상 깊숙이 받아들였다.


가장 논쟁적인 현대 철학자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저서 ‘팬데믹 패닉’ 서문에서 예수가 부활한 자신을 처음 알아본 막달라 마리아에게 했던 “나를 만지지 말라”(요한복음 20장 17절)라는 말로, 코로나19 이후 단절이 일상이 된 현재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지젝은 “나를 만지지 말라” 뒤에 “사랑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지고 돌보라”를 추가했다. 그는 예수가 만질 수 있는 인간으로서가 아닌 사람들을 ‘사랑’과 ‘연대’로 묶는 존재로 임한다고 해석했다. 이는 단절이 오히려 ‘연대’로 연결되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어 그는 “내면에 이르는 창은 우리의 눈이다. 요즘엔 누군가 가까운 (혹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상대방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 한 번의 친밀한 접촉보다 더 많은 것이 드러난다”라며 ‘만지지 않음’으로 인해 더 깊어지는 ‘내면의 소통’에 관해 언급했다.


현재의 사회적 거리는 그간 말의 과잉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된 듯하다. 마스크는 팬데믹으로 패닉 상태에 치달았던 개인의 무력과 권력의 무능을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귀에서 턱까지 얼굴의 2/3를 가리는 마스크로 인해 유일하게 외부로 향하고 있는 눈은 지젝의 말대로 강력한 정서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위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슬로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책 표지, 넷플릭스 ‘익스플레인 : 코로나를 해설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마스크의 역할 변화는 흥미롭다. 마스크는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이어진 학생 운동 시기에는 저항의 상징으로 정치성을 띠었다. 이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K팝의 성장과 함께 아이돌 패션의 상징이자 스타와 대중을 구분하는 차이의 기호가 됐다.


마스크는 80년대 시위 현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박종성은 그의 저서 ‘패션과 권력’에서 간문자의 ‘저항 패션으로 현대사 읽기’를 인용해 저항의 기호로 작동한 마스크의 상징성을 기술했다. 당시 최루탄을 막고 얼굴을 가리는 익명성으로서 기능한 마스크는 결의와 결단의 표명으로서 머리띠, 삭발과 합쳐져 강력한 저항의 연대 코드로 승화됐다.


간문자는 “80년대에는 시위도 많고 학생운동 방법도 더 전문화하여 형태의 다양함을 볼 수 있다. … 경제성장으로 인해 의복 여유가 많았으므로 다양한 복식을 보여준다. 중반을 넘으면서 한글 문구와 민중화 그림을 넣은 기획 티셔츠, 한복, 개량한복, 청바지 착용 거부, 태극기 두르기 같은 두드러진 저항 복식을 나타냈고 머리띠와 함께 마스크, 두건, 삭발에 이르기까지 최루탄으로부터 보호, 얼굴 가림 등 다양한 목적과 저항을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두식을 한다”라고 기술했다. 이는 패션이 시위하는 청년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시각적 결집력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저항의 연대로 기능하던 마스크는 21세기 신흥 귀족인 스타들을 대중과 구별 짖는 기호로 전환됐다. 이를 통해 연예인들의 특권 의식을 부추기고 일반인의 소외를 조장함으로써 과거 계급 시대의 차이의 문화를 재현했다.


방탄소년단 지민 제이홉/ 방탄소년단 트위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축이 된 K팝은 과거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가 뚜렷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성 분화를 초월한 ‘아이돌 패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특히 마스크는 남자든 여자든 완벽하게 치장하지 않은 자신의 민낯을 가리는 도구이자 팬들의 과도한 시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로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비연예인들은 마스크를 아이돌의 화려한 일상을 감춘 베일로 인식하고 스타들의 삶을 모방하기 위한 대체재로 선택했다. 이에 따라 네오프렌 소재의 블랙, 그레이 마스크는 ‘아이돌 마스크’로 불리며 온, 오프라인에서 공급과 동시에 소진되는 등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니셜 BTS로 마스크를 만들어 자신들을 동경하는 팬들에게 대리 충족을 유도했다.


이처럼 스타로서 지위와 유행을 상징하는 차이의 코드인 마스크는 코로나19 발생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저항과 연대를 강화했던 ‘동질감의 기호’로 복귀했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 코로나를 해설하다’ 중 ‘코로나19 대처법’에서 심리치료사 로리 고틀리프는 전 세계 대중이 ‘같은 공포’를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다들 깨닫고 있는 건 우리가 다르기보다는 오히려 똑같다는 사실이죠. 비슷한 공포를 느끼고, 비슷한 희망을 품고, 비슷한 꿈을 꿔요“라며 코로나19가 공포는 물론 희망과 꿈마저도 ‘비슷한’ 형태로 동질화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과거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는 머리띠, 삭발과 합쳐져 구별 가능한 개인이 아닌 집단의 부분으로서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더욱 강한 결속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 현재의 익명성은 결속 외에 이탈의 명분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젝은 ”이따금 행인들이 있기는 해도 이들이 쓰고 있는 새하얀 마스크는 오히려 서로를 알아봐야 하는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반가운 익명성과 해방감을 제공한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코로나는 동양의 집단주의가 서양의 개인주의보다 위기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로 통제가 정당화된 현 사회에 대해 지젝은 ‘강제된 사회주의’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했다. 이와 함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조치들의 명칭으로써 ‘재난 공산주의’ 개념을 제시했다.


마스크가 조지 오웰 ‘1984’와 같은 통제 사회의 현대적 재현인지, 연대의 기호로서 개인주의 승화인지 한쪽으로 정확히 규정될 수 없다. 단, 2021년 현재 대중은 마스크를 체화함으로써 부분적 통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소통 방식을 통해 대면 접촉의 결여를 보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