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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Jul 24. 2020

'가족입니다' 은주 은희 "자매지만 다릅니다"  

패션, 작품을 말하다 : 테일러드 재킷의 다중성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가족이라는 단위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해왔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통제 도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가족 단위로 인해 빠른 시간의 경제 성장을 이뤄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을 바라보는 위치에까지 올라섰다.

 

이처럼 ‘빠른’ 성장은 독재정치 이래 줄곧 미디어가 정치 논리에 충성을 다했기에 가능했다. 한 집, 한 마을에 모여 살고 농사를 짓는 생활공동체인 김 회장 댁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전원일기’(MBC, 1980~2002년)는 가슴 따뜻한 푸근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좀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 새마을 운동, 출산 억제 등의 정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민주정권으로 교체되면서도 ‘가족 단합’은 여전히 삶의 미덕으로 강조돼왔다. ‘가족 해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늘 방향은 그럼에도 ‘가족의 동질성’의 필요성을 전제한 독재정치시대와 같은 결론을 향했다. 세기말을 지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흥행 불패로 군림해온 김수현 작가는 배우 이순재를 앞세워 불변의 가치로서 가부장제 중요성을 역설해 보수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가족 공동체에서 가족 개별체로의 진보 ; 성장 코드 분리불안 장애   

   

한국 가족 드라마는 분리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가족이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손쉬운 결말로 끝을 맺어왔다. 마지막 장면의 절대 공식이 된 모든 가족 구성원이 모여 찍는 가족사진은 이처럼 가족 절대 만능주의에 힘을 보탰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tvN 2020년 7월 21일 종영)는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모름과 다름’을 전제로 출발해 마지막까지 ‘모름과 다름’을 끝까지 유지했다. '가족의 동질성’이 아닌 ‘가족임에도 다름’을 전제로 ‘가족의 해체’ ‘가족의 위기라는 틀에 박힌 사회적 불안을 조장하지 않는다.


상식(정진영)이 가족 단톡 방에 가족이 함께 여행 가자고 제안하자 은주(추자현), 은희(한예리), 지우(신재하), 삼 남매는 또 다른 단톡 방에서 서로에게 결정을 미룬다. 답변이 없는 단톡 방을 바라보다 입을 삐죽 내미는 상식을 다시 웃게 한 것은 자식이 아닌 아내였다. 아내 진숙(원미경)은 “우리 둘이 가요”라고 제안하며 휴대폰 너머 상식과 함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여느 가족 드라마와 달리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의 분리불안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명확하게 그렸다.    

 

‘아는 것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니까를 앞세우지 않고 가족임에도 모두가 각각 개별적인 존재라는 전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막내 지우는 누나들을 좋아하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찬혁(김지석)과 친형제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공유한다. 은주와 은희의 관계는 성별이 같은 자매이기에 당연시돼온 관념적인 끈끈함의 틀에서 벗어난다.       


30대 중반을 넘긴 은주와 은희는 각각 변리사, 출판 편집자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경제 독립체다. 은주와 은희는 욕하고 싸우면서도 결국 끈끈한 관계임을 보여주려 애쓰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KBS2, 2020년 7월 23일 현재 방영 중)와 같은 기존 가족 드라마 속 자매들과 결이 다르다.


따뜻한 성격의 은희는  남을 배려해 오히려 자기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차가운 성격의 언니 은주와 5년간 연락두절 상태로 지내는 결단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회상 장면에서도 언니를 동경하기보다 자신과 ‘다름 인지하고 확실한  긋기를 한다. 은주와 은희는 자매라는 혈연을 빼면 신체조건 성격 직업 모든 것이 다르다. 은주가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에서 좋은 옷을 입으며 우아하게 살지만 은희는 다른 가족 드라마에서라면  번쯤은 등장했을 법한 언니 옷장 뒤지는 ‘동생의 허튼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막내 지우와 함께 은주의 스타일이 변한 것을 두고 무슨 일이 있는  아닌지 장난치듯 대화할 정도로 ‘언니 은주 아닌 ‘사람 은주 객관화한다.

      

물러섬에 익숙한 은희(좌), 우회를 모르는 은주(우) ; 테일러드 재킷에서도 자매의 다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재자 은희 VS 완벽주의자 은주 ; 공유 불가 테일러드 재킷      


이처럼 은주와 은희의 완전한 개별적 관계는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의 끈끈한 신체밀착형 자매만큼이나, 아니 이보다 더 현실적 설득력을 갖는다. 완벽주의자 은주, 중재자 은희 모두 직업인답게 테일러드 재킷을 즐겨 입지만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속할 수 없는 분리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은주는 남성 전유물에서 확장된 아이템으로서 테일러드 재킷의 기원에 충실하듯 보수적 뉘앙스가 짙게 배 있다. 화이트나 옅은 파스텔 톤에 꼭 맞는 어깨선을 시작으로 가늘고 긴 몸매를 따라 흐르는 간결한 선이 우아함을 강조하는 보수적 페미닌 무드다. 은희는 테일러드 재킷의 남성복 무드에 무게가 실린 디자인을 선택해 타인을 생각하는 습관적 배려의 외양 안에 자리 잡은 자유분방한 성향을 그만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이처럼 단순한 스타일 설정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은희는 패션으로 자신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능수능란한 면모를 보여준다. 은희는 기본 테일러드 재킷은 물론 개방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오버사이즈 재킷, 행동가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워크웨어 재킷 등 보수에 반하는 다양한 디자인을 폭넓게 소화한다.


은주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답게 적당하게 피트 되는 재킷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생들의 의혹을 받을 당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는 등 살짝 방향을 비껴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간결한 선과 디테일이 배제된 미니멀 디자인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결같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재킷에서만큼 페미닌 무드 테일러드 재킷의 기본을 유지한다.  

  

이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변화를 즐기는 은희는 불꽃같이 강렬한 사랑에 빠르게 마침표를 찍고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찬혁의 프러포즈를 오래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여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반면 변화에 신중한 은주는 은희처럼 살갑게 다가오는 민우(권율)와 동료이자 친구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이혼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절제된 삶을 이어간다.    


감성 패션으로 해석하는 이성 인간 ; 테일러드 재킷의 설득력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은 그의 저서 ‘패션:철학’에서 ‘삶의 이성으로 패션’을 논하는 시작점에 정체성과 자기실현의 관계를 언급하고 이어 자기실현과 패션의 관계에 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개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스스로를 개인으로서 ‘실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임무, 자신의 독특한 특징을 실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들이다. … 패션은 미학적 자기실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패션은 우리가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를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전쟁터로서 기능해왔다.   


테일러드 재킷은 격식을 갖춘 포멀룩의 기본이다. 직업 혹은 직책이 익숙해지는 나이라면 격식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테일러드 재킷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이유로 직업인으로서 경력만큼 옷장에 테일러드 재킷은 쌓인다. 이처럼 기능이 우선시 된 아이템이면서도 ‘미학적 자기실현’의 도구로서 패션이라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자매라는 가족 내 관계를 떠나면 각기 다른 정체성을 안고 사회에서 그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온 은주와 은희의 다름은 테일러드 재킷의 다름으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더한다.    


하나 더 라르스 스벤젠이 미학적 자기실현으로서 관점을 제시한 댄디의 사례는 은주가 보수적인 페미닌 무드를 고수하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댄디 중의 댄디인 보 브루멜은 “존 불이 당신을 주시하기 위해 돌아섰을 때 결코 옷을 잘 입고 있어서는 안 된다. 너무 딱딱하게 보이거나, 너무 달라붙는 옷을 입었거나 너무 멋지게 보여줘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댄디에게 있어서 지향해야 할 아름다움의 이상은 눈에 두드러지는 사치스러운 차림보다는 침착함이다.  


은주의 한결같지만 진부하지 않은 차분함이 댄디의 철학과 연결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은주는 결혼 생활 도중 커밍아웃 한 남편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침착하게 다름을 인정하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은주(추자현)는 이혼 1년이 지나 감정이 담담해졌을 때쯤 동성애자 남편 태형(김태훈)을 찾아 가 담담하게 그간 살아온 서로의 이야기와 함께 가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은주는 태형이 여전히 은희와 전화를 주고받고 있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알아.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안 하겠지”라며 두 사람이 놓지 못하고 있는 ‘가족의 흔적’이 서서히 지워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태형은 “처제는 계속할 수도 있을 거 같아. 나중에 전원주택 지으면 방 한 칸 달라고”라며 웃자, 은주는 “난 그 애를 언제 이해할까”라며 멋쩍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문제적 화두 "가족이라는 이유로 늘 함께 하고 같은 이상을 공유해하나요?"

가족사진이 등장하지 않는 진보적 결말 "가족이지만 다릅니다"


이들 가족은 한 차례 격동을 겪은 후 책임과 의무로 서로를 옭아매지 않고 각자 삶의 방식을 응원하는 다원적 삶을 산다.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 가족은 ‘다름’을 받아들인 후 각자 가슴 깊이 묻어둔 이상을 향해 나간다. 이혼한 은주와 퇴사한 은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익숙한 이들과 익숙하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지우는 날개가 꺾여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공간이 아닌 감정 독립의 중요성을 깨닫고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진숙과 상식은 가족에게서 한 발 떨어져 서로만 바라보며 부부로서 삶의 소중함을 누린다.


' 결혼  연애'. 부부의 연을 맺은  40여 년 만에 청춘의 연애를 시작한 진숙과 상식은  남매와 감정적 분리를   오히려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는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가족 모두가 대동 단결하는 식의 함께 모여 찍은 가족사진 대신 부부의 연을 맺기로  1982 10 13 찍은 진숙과 상식의 사진, 은주 은희 지우의 졸업사진, 모두가 빈집을 차례로 비추면서 끝을 맺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진숙과 상식 부부, 은주 은희 지우 삼 남매 모두 서로 가까이에서 보듬어 안고 살고, 가족이라면 늘 모든 일을 긍정하고 받아들여한다는 가족 분리불안 장애를 극복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각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별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신념과 지향점을 갖고 살아가는 개별적 자아로 미디어 속 가족의 진보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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