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의 『일기』를 읽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쉬워 일기 하나하나를 아껴서 읽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첫 번째와 같은 부분에서 웃고 울었다. 세 번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책을 세 번씩이나 읽는 동안 계절은 열한 번 바뀌었고, 그사이 나 또한 열한 번쯤 조금씩 달라졌다.
이 책을 주변에 추천할 때면 늘 완급 조절이 인상적이었던 책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무거워질 때쯤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또 눈가에 눈물이 고일 때쯤 작가가 나에게 평안을 빌어주기 때문이다.
“건강하시기를.”로 시작해서,
“평안하시기를.”로 끝나는 책.
그리고,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책.
오 년 전, 쇄골 근처에 큰 흉이 생겼다. 그 상처를 얻고 한동안은 사람들이 내 안부를 묻기 전부터 흉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 흠. 어른들은 “고장 나고 흠집 난 물건을 보는 것처럼” 나의 흉을 살폈다. 그 흔적을 지우라는 조언들은 매번 공허하게 흩어졌다. 큰 고민 없이 입 밖으로 뱉어졌을 그 말들이 마음속에 새로운 상처를 만들었다.
흉터는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 “흉터”.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이라, 그 자체로 잘 살아냈음을 증명한다. 가장 깊이 새겨진 삶의 역사. 누구나 그런 흔(痕) 하나쯤 몸에,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나 또한 그럴 뿐이다. 그저, 그럴 뿐이다. 그뿐이다.
얼마 전에는, 밤의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엄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마 옆자리에 앉을 자신은 없어서 대각선 뒤에 앉아, 이런저런 말들을 주절대다가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 세 가지 사건을 추려냈어도 이야기의 순서를 정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숨막히던 침묵 속에서 그 순서를 고민하다, 가장 최근의 일부터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삼 년 넘게 만난 사람이 있었어.
첫 번째는, 얼마 전 삼 년 넘는 연애를 끝내며, 애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 내가 목을 졸려 꺽꺽 소리를 내고 비명을 질러도 그 건물에 있던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던 아랫집 남자도, 전 애인의 별일 아니라는 말에 그저 문을 쾅 닫아버렸다는 것. 나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이,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는 것. 사랑하는 남성들의 배신과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만 같아서, 그게 신체적인 폭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려웠다는 것.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미투보다도 이전에 ‘예술계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그와 관련된 모든 인맥을 끊어내고, 유학도, 성취도 포기하고, 또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 나는 운 좋게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그때 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아직도 죄책감으로 남아 나를 내내 괴롭힌다는 것.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늘어놓던, 되지도 않는 변명들이 지금도 가끔 귓가에 선명하게 울린다는 것. 그때 무력하게 그의 변명을 듣기만 하던 나를, 나조차도 오래 미워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의 사촌이, 엄마의 조카가 어린 시절 잠에 든 나를 만졌다고. 아랫배 위를 꿈틀대던 그의 손이 아직도 가끔 느껴진다고. 나와 사촌만 있던 집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깨어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던 그 순간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엄마는 영영 모를 것이라고. 엄마는 그의 사과를 원하냐 물었고, 나는 그저 그의 가족들을 가능한 만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친척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조금 더 편하고 친밀하게 굴기를 요구”해온 엄마에게 나는 더 이상 다정을 연기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나는 내가 그 일을 말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하는 방법을 이십 년 넘도록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다 사랑하던 사람의 폭력에 예기치 못하게 노출되었을 때, 이 모든 일을 한 번에 털어놓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엇이 더 최악인지 엄마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도록.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록산 게이.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사이행성. 33.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에 쓰인 이 문장이 황정은 작가를 쓰게 했고, 그의 글이 또 나를 쓰게 했다. 같은 책을 세 번씩 읽어낸 후에야, 그 세 번을 똑같이 소리 내어 울고 난 후에야, 계절이 열한 번 바뀐 후에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자서엔 자서로 응답할 수밖에 없”고 그런 자서에 응답하는 자서에는, 또다시 자서로 응답할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우리가 알 수 있었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
뮤리얼 루카이저. 「케테 콜비츠」(부분). 『어둠의 속도』. 봄날의책. 박선아 역. 217.
끝내 터져버린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안전함의 감각을 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를.
그 흔은 우리의 몫이 아니니까, 우리의 잘못이 아니니까. 아니니까.
*출처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직접 인용(" ")은 모두 아래 도서에서 발췌
황정은. 「일기(日記)」. 『일기(日記)』,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