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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eun Mar 16. 2023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고 싶어

언젠가는 대형 면허를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주변 친구들이 대통령, 소방관, 가수라고 대답하던 나이, 나는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었다. 지팡이처럼 기다란 기어 변속기를 한 손으로 휘젓고(그렇게 보였다) 버튼을 눌러 동전을 거슬러주는 유일한 직업.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다란 차를 몰면서 시내를 누비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동전을 거슬러 줄 일도 거의 없고 기어 변속도 자동인 데다 음악이나 라디오도 틀지 않지만, 여전히 버스를 탈 때마다 운전석에 시선이 간다. 언젠가는 저 자리에 앉아볼 수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대형 면허는 다음으로 미루고, 1종 수동 면허에 도전하기로 했다.

처음 배운 운전은 너무 재미있었다. 건너다니기만 하던 아스팔트 도로가 누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두 발로 걷거나 뛰는 것과는 다른 속도로, 달려가 닿는 만큼 세상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면허가 생긴 것으로 끝이었다. 차가 없었으니까. 친구들은 부모님의 차라도 몰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성격이 급하고 길눈이 어두운 20대 딸이 운전대를 잡는 게 두려우셨던 부모님은 차키를 감춰두셨다.


그렇게 어영부영 7년이 지났다. 1종 면허는 7년 주기로 적성검사를 받아야 면허가 유지된다. 빛을 보지 못한 첫 면허증을 떠나보내고 갱신한 면허증을 받아가지고 나오면서, 장롱면허 생활을 청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개인 운전연수를 신청했다. 강사가 가지고 오는 차를 몰고 도로주행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연습은 큰 차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중형 세단을 골랐다. 검은색 그랜저를 타고 나타난 선생님은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분으로, 정석대로 연습을 시켜주셨다. 다만 한적한 외곽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면허시험에 통과했던 초보는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잔뜩 긴장했다.

이렇게 살짝 밟아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게 맞나요? 내가 속도를 줄인 줄 몰라서 뒷 차가 나를 박으면 어떡하죠? 라인이 없는데 어떻게 출발한 차선을 따라서 좌회전을 할 수 있죠? 제가 지금 차선 중앙에 있는 게 맞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뭐라 대답하기도 애매한 질문을 쏟아부으며, 5회의 강습을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으로 자유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자판기 음료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 평온한 표정으로 조수석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선생님을 보면서 혼자 운전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럼 이제 차를 장만할 차례인가. <이걸 사느니 조금 더 보태서>의 마법으로 국산 경차에서 수입 suv까지 오가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TV 광고에서 이런 멘트가 나왔다. “어차피 값이 내려가고 결국 팔 물건을 왜 소유하는 거죠?”

차가 자산이라고 하지만 결국 찻값은 떨어지게 되어있다는 점을 지적한, 현대캐피탈의 자동차 리스 광고였다. 전재산을 차에 쏟아부으려던 사회초년생은 머리가 띵했다. 아무래도 아직 차를 살 때는 아닌 것 같아. 그때 우연히 카셰어링 서비스, 쏘카를 알게 됐다.


카셰어링 서비스는 정말 편리했다. 특히 쏘카는 산뜻한 UI도 마음에 들었고 몇 번 이용해 보니 서비스도 좋아서, 이후로 차가 필요할 때는 쏘카를 탔다. 바다를 보러 갈 때, 산속으로 캠핑을 갈 때, 이케아에 가서 가구를 사 올 때, 다른 도시에 있는 맛집에 갈 때. 상황에 맞게 차를 골라 타면서 구입을 고려했던 후보들의 장단점도 파악했지만, 더 이상 차를 살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을 보냈고, 쏘카의 VIP 고객이 되었다.


그러다 작년 말, 차가 생겨버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photo from: Youth Employment 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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