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외국인학교 대안학교
1년간의 육아 휴직,
그리고
늘어난 육아휴직으로 인한 해외 생활이 2년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나의 리프레쉬가 더 중요했고,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와 둘이 있으면서 리프레쉬를 바라는 건 옳지 않은 생각이었다)
아이는...
그래도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아이는 파닉스를 막 마스터 한 초2였다.
우리 부부는 아니 나는 누구나 하는 선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이었고, 한국의 온갖 사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영유도 보내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못 보냈기보다는 애초에 보낼 생각도 없었고(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무엇보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내가 회사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일반 어린이집, 유치원, 영어유치원은 그저 남의 집 이야기였다.
후회는 없다.
비록 원해서 아이를 도맡아 케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아빠보다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소중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착각도 하게 된다.
여하튼,
아무런 영어에 대한 준비가 없이 왔던 아이는 해외에서 1년 그리고 2년이 되니까 우리 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아이의 잠재력과 학습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우리 아이여서가 아니라 그 또래 아이들은 경험을 지식으로 빠르게 습득하는 치트키가 있는 거 같다.
그리고
뉴질랜드의 환경과 교육방법이 우리 딸에겐 잘 맞았다.
2년간의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아이는 다니던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해야 했다.
뉴질랜드에서의 자유로운 환경에 익숙한 아이는 아빠보고 여기서 일을 해서 자기가 여기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면 안되겠냐는 말을 때때로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빠도 이곳이 너무나 좋아. 하지만 아빠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 그리고 아빠가 일을 하다 보면 너를 신경 써줄 수가 없을 거야. 바빠져서 말이야. 그리고 엄마도 한국에 있잖니? 이제 같이 살아야지."
그러자 아이는 나의 요리실력을 과대평가했는지
곰탕을 만들어서 팔아봐라
깍두기를 만들어서 팔아라
반찬을 만들어서 팔아봐라
와 같은 초등학생 같은 제안을 나에게 했다.
(초딩이니까…)
현실적으로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이는 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나에게 한 이야기가 귓속에 계속 맴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