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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May 07. 2021

롤모델 컬렉터의 삶을 통해 배우는 진정한 컬렉터의 자세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그림 여섯 번째 이야기

세상에는 컬렉터라는 타이틀로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소유하는 동기는 제각각이지만 그들 가운데서 내가 몸소 느끼며 생각했던 것들이 일치한다고 느낄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심플하게 정의하는 모습을 보며 무림의 고수를 만난 듯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도의 컬렉터들에게서는 그림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림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컬렉션 하나하나를 진실한 감정으로 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신념이 강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직한 취향으로 컬렉션을 구축해 간다.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처럼 작품을 셀렉하는 컬렉터 역시 작품과 많이 닮아있을 때 좋다고 느껴진다.

오늘은 그 가운데 미술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가장 순수하면서도 미술품 수집을 주저하는 흔한 월급쟁이들에게 신선한 희열을 느끼게 해 줄 만한 흔한 느낌의 모습을 한 흔치 않은 컬렉터의 이야기를 놓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월급쟁이 컬렉터로 동아시아 미술시장에서도 많이 알려진 일본인 미야쓰 다이스케에 대한 이야기다.


월급쟁이 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략 5-6년 전이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그때 당시도 인터넷을 통해 매일같이 미술, 전시 관련 기사들을 즐겨 보곤 했는데, 월급쟁이 컬렉터로 시작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며 소용돌이처럼 기사를 몰입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월급쟁이 컬렉터로 알려진 미야쓰 다이스케


미야쓰 다이스케는 일본 도쿄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 유니클로를 즐겨 입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중년 남성이다. 하지만 그는 약 20여 년 동안 400여 점 이상의 컬렉션을 수집하는 등 컬렉터로 높은 명성을 갖고 있고, 이미 대림미술관과 아트 부산 등에서 그의 컬렉션이 전시된 이력이 있을 만큼 한국 미술시장과의 인연도 깊은 컬렉터다.


어쩌면 그에게 붙는 월급쟁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이력을 독특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컬렉터로서의 태도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컬렉터로서 보여주는 그의 순수한 열정과 작품 앞에서의 겸손함, 그리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고 정직한 모습들... 아직은 그냥 남들보다 미술품을 조금 더 일찍 소유하는 경험 정도가 다인 애호가 수준이지만, 그를 통해 무언가 나의 호기심 어린 행동에 대한 의미와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다이스케, 그가 컬렉터로 만든 첫 컬렉션은?

다이스케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작품을 살지 말지, 혹은 컬렉팅을 지속할지 그만 둘 지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이 첫 작품을 얼마나 잘 구입하는지, 그 가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금전적 가치보다 작품을 얼마나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이스케의 첫 컬렉션은 그의 에세이에 쓰인 것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강렬함 그 자체였을 거라 상상해 볼만 하다.


다이스케가 처음 구입하게 된 작품은 공교롭게도 일본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0대 신입사원 시절 당시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쿠사마의 작품을 500만 원에 구입한 것이 그의 첫 컬렉팅. 물론 그의 오리지널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에디션 작품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을 생각하면 큰 금액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그때 당시라면 더더욱 도쿄에 사는 월급쟁이로서는 생활이 흔들릴 수 있는 거금이기에 그가 얼마나 작품에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때문에 그의 말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다이스케가 소유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무한그물> 1965년 作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하듯 쿠사마 야요이는 미술시장에서 점점 명성을 높여갔고, 다이스케는 갤러리에서 다시 마주한 쿠사마의 대표 연작 <무한 그물> 작품에 다시 한번 깊이 빠져들어, 당시 그의 연봉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500만 엔의 가격이 붙은 <무한 그물> 시리즈 작품을 사기로 결정한다. 그가 가진 모든 저축과 주식 등을 처분해 갤러리에 선납을 하고, 모자란 잔액을 갤러리 측에 요청해 분할 납부를 해 손에 넣을 수 있었으나, 월급 말고는 더 이상 재원을 끌어모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아내와 부모와 할머니 등 가족회의를 통해 차용증을 쓰고 완납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그의 에세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1965년 작품인 이 <무한그물> 작품은 그가 남긴 시리즈 중 가장 가치 있는 연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얼마 전 케이옥션에서 나온 시리즈 작품이 12억 5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아마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수작에 가깝다. 그렇다면 가격은,,,?)

그녀의 작품을 구매한 좋은 경험이 있는 만큼, 그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당시 월급보다 비싼 첫 그림을 소유하기 앞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세계에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유년 시절 폭력적인 가정에서 불우한 시간을 보냈던 쿠사마는, 눈을 뜨면 세상의 모든 사물에 점으로 차오르는 일종의 환영이 덮인 세상을 바라보게 됐고, 남들과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아픔을 예술로 승화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어찌 보면 낯설기도 하고, 환 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그림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다이스케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며 더욱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림 만으로 작품의 모든 감정과 메시지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럴 땐 그림을 통해 피어난 호기심을 작가의 삶과 생각으로 연결해 생각해보면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작품을 소유해야겠다는 생각을 명확히 할 수 있음을 다이스케의 일화를 통해 깨달았던 적이 있다. 관심 있는 작품이 생기면, 작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습관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다이스케가 알려준 진정한 컬렉터의 자세

또한 앞서 언급한 쿠사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영감을 준 모든 아티스트와 깊이 관계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자신의 안목에서 영감을 주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지원함으로, 작가의 성장을 도모하는 컬렉터이기도 하다.

사실 샐러리맨 입장에서 이미 유명해진 작품보다는 신진급 작가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신진 시장을 돌아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좋은 컬렉터라고 생각되는 점은 작가의 네임밸류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점,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좋은 작품과 작가 앞에서 늘 경외감을 갖는 모습을 인상 깊게 느꼈다. 이제 갓 시장에 등판한 신진 작가가 자신을 응원하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다면, 그 자체로 큰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컬렉터는 단순히 고객 그 이상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진 주체임을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그는 한국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애정 하는 컬렉터이기도 하다. 특히 독특한 작품세계로 젊은 나이에 국내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정연두 작가와 두터운 관계를 갖고 있는데, 심지어 그의 컬렉션이 집대성된 이른바 다이스케의 아트하우스의 계단 벽면에는 작가에게 요청해 그의 시그니처 패턴을 장식한 점을 보면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와의 교감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관계하는 엿볼 수 있다.


다이스케의 자택 계단에 함께하고 있는 정연두 작가의 <보라매 댄스홀> 패턴
정연두 <내사랑 지니> (2001~),실제 그는 정연두 작가의 대표 프로젝트인 <내사랑 지니>에 실제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설치미술까지 소유한 그의 컬렉팅 노하우

대학원을 다니며 호기심과 궁금증을 하나씩 채워갈 때, 다이스케 컬렉션을 다양한 방면으로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의 열정은 단순히 국내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한국과 중국,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 쪽 미술시장에도 늘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다. 그의 수집 작품은 회화뿐만 아니라 영상물, 심지어 설치 작품의 소유권까지 가질 정도로 영감을 주는 모든 형태의 미술품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미야쓰 다이스케 著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 초보 컬렉터에게 추천!


그의 저서인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어떠한 형태로 소유할 수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설치미술을 소유하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점이 아주 흥미롭다.) 그의 자세한 이야기와 작품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컬렉팅을 입문하면서 주저하게 되는 바에 대해 이 책만큼 속 시원하게 해답을 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고상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미술품 컬렉팅의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언젠가 맞닥뜨릴 인생의 기로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결단하기 위한 예행연습'... 작품 컬렉팅을 고민할 때의 마음가짐을 표현한 그의 책 속의 한 구절이 무릎을 치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물론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이 혼자만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가끔은 남의 시선과 의견에 의존적으로 기댔을 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독단적인 삶의 태도는 금물이지만 가끔은 그래야 할 때도 있다. 그때가 아마 좋은 그림을 눈 앞에서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그에 대한 후회 없는 해답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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