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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May 21. 2021

기획 전시를 평생 소장하는 방법, 전시 도록 모으기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전시 도록 첫 번째 이야기

그림을 모으는 데 관심이 많은 만큼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를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인증샷 몇 장과 전시에서 느낀 감흥은 생각보다 빠르게 잊히고, 돌아보면 내가 어떤 작품을 봤는지, 정보를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때가 많다.


이처럼 희미해져 가는 전시에 대한 기억을 시간이 지나서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를 보고 난 후에는 반드시 굿즈 숍에 들러 전시 도록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체로 두께가 있다 보니 정독까지는 못하고 책장 한편에 인테리어 소품같이 남겨지는 경우가 많지만(소품으로써의 엣지도 분명 있다.),  집에 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펼쳐보며 당시의 감흥도 떠올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전시의 감흥과 유익함이 담겨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수집품... 아직 수집이라고 하기엔 가지 수가 너무 모자라지만 나름대로 모은다는 느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전시도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고자 한다.  

또 하나의 수집 리스트가 되어 버린 '전시의 축소판'


전시 관람을 기념할 수 있는 여러 상품 중 가장 비싼 굿즈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전시 콘텐츠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전시가 끝나도 전시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전시 도록이다.


모든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를 가미한 일종의 기획서이자 리포트 같은 느낌으로 정리되는 만큼 도록 한 권에 전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야말로 '전시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전시에 들어간 모든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는 물론, 전시 기획자의 의도와 해석, 그리고 비평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 전시를 바라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장에 쌓이며 자연스레 수집 리스트에 오른 전시 도록


전시 아이템이나 미술관의 규모에 따라 도록의 형태나 두께 등이 달라지긴 하지만, 적어도 내용이 알찬 도록의 경우 적어도 3만 원 이상 정도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양장 커버 등 비용이 들어갈만한 요소들이 들어가면 꽤 적지 않은 가격이 매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관람객의 경우는 쉽사리 도록을 구매하지는 않는 듯하다. (적어도 내 기억엔 굿즈 숍에 있을 때 도록을 사 가는 사람은 나 말고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도록에 담긴 기획자들의 피, 땀, 눈물의 고증과 연구 흔적을 보면 그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다는 느낌을 받지만 도록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여전히 늘 고민하며 머뭇거릴 때가 많다. 그리고 경험상 겉핧기로 읽고 책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갈등에 휩싸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전시를 보고 나면 뭔가 도록을 지나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하지 말고 일단 지르자는 생각을 먼저 하고 있다. 모든 수집품과 마찬가지로 망설여질 때는 안사면 후회한다며... 그리고 책은 일단 사서 두고 읽는 거라며 내 안의 나를 설득하며 책 장의 빈칸을 하나 둘 채워가다 보니 결국 수집을 목적으로 도록을 모으게 됐다.



도록이 있어 추억할 수 있는 그날의 값진 감흥


현재 책장에 꽂혀있는 전시 도록들은 가격만큼이나 대부분 분량이 백과사전급으로 두껍다. 전시 작품의 사진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용지마저도 대개 두텁게 들어가기 때문에 꺼내 읽기도 부담스러운 느낌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도록을 꺼내 들고 펼쳐보면 당시 미술관, 박물관에서 직접 눈으로 봤던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날 현장에서 느꼈던 감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씩 피어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암스테르담 현대미술관 뱅크시 전시 도록 (2018.11), 우리 집에도 한 권 모셔왔다!

특히 해외여행지에서 들렀던 미술관 전시 도록은 전시뿐만 아니라 여행의 기억까지 소환할 수 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표지부터 패셔너블한 암스테르담 현대미술관(Moco Museum) 뱅크시(Banksy) 전시 도록을 소장한 도록 중 최애로 꼽는데, 광야의 외침 같은 그의 임팩트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음은 물론, 우연히 길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대박을 외치며 초행길의 전시장을 찾아가던 그날의 감흥을 떠올릴 수도 있어 애착이 많이 간다. 무엇보다도 그냥 도록 자체가 한없이 예쁘다.



도록이 없어 추억할 수 없는 아쉬움


2019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당시 전시장 분위기나 동선 구성 등에서 아쉬움이 많아 생각보다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온 전시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시 도록에는 진심이었어야 하는데, 전시 도록을 수집품으로 인식하게 된 얼마 전부터 호크니의 국내 전시 도록을 사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2019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도록, 전시 이후에도 수요가 꽤나 있는 도록 중 하나다.


아시아권에서 처음 열리게 된 호크니의 기획 전시라는 상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니 전시 도록을 포함한 전시 키 비주얼과 타이포가 디자인적으로 꽤나 좋았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일반 공모를 통해 선정된 키 비주얼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디자인된 호크니의 키 비주얼이 이베이나 아마존 등에서 구할 수 있는 그런 것들과 또 느낌이 사뭇 다르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당시에는 호크니라는 아티스트를 그렇게 좋아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쳤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기획 전시를 통해 종종 만나는 호크니의 작품을 보며, 당시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때 지르지 못한 그 도록이 자꾸만 생각나는 거 같다. 도록에 관한 글들을 쓰면서 중고라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수소문해 볼 생각이다. (중고 도록을 찾는 일화들도 소개할 예정)




전시를 보고 난 후 전시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생기거나 혹은 언젠가 복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전시장을 나올 때 흔한 굿즈 대신 비용을 조금만 더 보태 전시 도록을 구입해 보길 추천한다. 한정판이라는 아쉬움을 대비하는 투자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전시장에서 사진을 일일이 찍고 싶을 만큼 좋은 감정을 느꼈다면 카메라를 내려놓는 대신 도록으로 추억을 간직하는 게 관람자로서의 좋은 배려와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국내에서도 좋은 전시가 꾸준히 열리기 위해서는 결국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의 수요와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 물론 미술품이나 전시 콘텐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이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자본 여력이 충분한 극소수의 대형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양질의 전시 콘텐츠가 지속해 나오기가 어려운 실정인 경우가 많다. 물론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수요자 역시 후원자의 마음으로 전시 관람 후 도록이나 굿즈 구매에 관심을 갖는다면, 다채로운 전시 콘텐츠를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지 벌써부터 고민스럽긴 하지만, 모아둔 전시 도록을 들여다보며 당시에 느꼈던 감흥을 되새기고, 미처 알지 못했던 전시의 숨은 요소들을 발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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