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영은 달라도, 말은 통해야 하니까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말한 ‘같은 것’, 『숙론』

by 알레로그

요즘은 정말 대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무슨 말을 꺼내기만 해도, 그게 어느 진영의 이야기인지부터 따져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공격하고,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하다. 심하면 틀린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우리 진영에서 나온 이야기는 옳고, 맞는 이야기여도 상대 진영의 이야기는 그르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토론’이라는 말은 점점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이러한 오염된 ‘토론’ 대신 ‘숙론熟論’이라는, 여럿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자고 제안하는 최재천 교수의 이 책 『숙론』이 눈에 들어왔다.



최재천 교수에 대한 내 생각은 호/불호 중에 호에 가깝다. 학창 시절에 읽은 ‘과학자의 서재’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숙론을 읽으며 엿보게 되는 교수님의 성향이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성향이었기에 아마 어렸을 때 과학자의 서재를 읽으면서도 이런 스타일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다만, 학창 시절과 현재의 차이가 있다면 『숙론』을 읽으면서는 저자의 성향이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게 느껴졌었고 그래서 나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등장하여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조금은 조마조마하며 글을 읽어나갔다. 재밌는 사실은 교수님은 스스로를 진보 성향으로 평가하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은 중도 성향의 사람 혹은 좌파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치적 성향을 숨겨두었다면 이 책을 평범하게 읽었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진영이 다르면 대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보니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게 때로는 앞으로 이쪽 편을 들 테니 알아서 들으라는 선언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조마조마하며 읽었던 나를 돌아보며 나 역시 진영 논리에 빠져 의도를 왜곡하지는 않았을까 성찰해 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대선 중 보수 진영에서도 이러한 ‘숙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보가 있었다. 물론 그는 ‘토론’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 닥친 수많은 위험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각을 나누고 충분히 의논해야 한다는 의도적인 측면에서는 같았다. 단지 정치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르겠지만.


재밌는 부분은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외에도 ‘하버드’ 출신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버드에서 토론을 활용한 배움이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같은 학교를 나와서 정치적 입장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똑같이 ‘숙론’ 혹은 ‘토론’을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우리 사회가, 그리고 정치가 나아갈 방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각각 주장한 숙론과 토론은 다음과 같다.

최재천 교수는 숙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숙론은 잘 싸우기 위한 것이다.”

무조건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말하자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날카롭게 부딪히더라도 끝까지 듣고, 곱게 정제해서 말하자는 의미였다. 싸우더라도 품위 있게,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해 가자는 제안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당대표는 항상 ‘토론’을 무기로 내세운다. 짧은 말이나 이미지로 승부하는 게 아닌, 각자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정치를 하자고 말한다.

정치의 방향이 다른 두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비슷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 진짜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 토론이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승부가 나야 할 것 같고,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를 따지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뿐인가? 주장의 옳고 그름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통해서 정해지지 않고 누가, 어느 진영에서 말했는지에 따라 정해지곤 한다. 우리 편의 주장은 언제나 옳고, 그렇기 때문에 반대 편의 주장은 언제나 그른 주장이 되어야만 한다.

이 방식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효과적인 정치적 전략으로 많이 채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재천 교수는 낙관적인 관점으로 우리 국민들이 이러한 모습도 잘 극복해 갈 수 있으리라고 책을 마무리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생각은 반대다.


그가 말하는 숙론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게 아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느리고 피곤하다. 때론 정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두 진영의 커다란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시간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승자가 독식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적인 문제, 기술의 윤리적인 문제를 논의할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익숙해져 왔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각자 다른 방향만을 바라보게 하면서 이 단절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생각이 다른 양쪽 진영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의견을 좁혀 나간다는 것은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나보다 훨씬 공부도 많이 하시고 똑똑하신 교수님께서 확신하고 있으니까.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정치는 다를 수 있다. 입장도, 배경도, 가치관도 전부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말은 통해야 하니까.

우리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맘 편히 숙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단순한 노동이 복잡한 가치를 부여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