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기업이 남긴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오늘 다룰 주제는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양심고백』 속 단편 「톡 쏘는 맛」을 읽고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본격적인 주제에 들어가기 앞서, 현재의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면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첫 회사는 아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좋은 기회를 얻어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회사의 규모도, 업무도, 환경도 조금씩은 달라졌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는 내가 받는 임금이 크게 달라졌다. ‘나’라는 같은 사람이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것은 같고, 일에 대한 태도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더 받게 되었다.
이 차이는 내 능력에서 온 거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 현재 회사로 옮길 당시의 내 능력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전 회사가 내 능력을 과소평가한 걸까? 아니면 현재의 회사가 내 능력을 과대평가한 걸까?
회사의 규모가 커진 것만으로도 내 노동은 다르게 인정받았다. 노동의 가치가 때로는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디에서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은 실력의 반영일까, 아니면 환경이라는 '운'의 결과일까?
누군가는 노동이 정당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는 게 바로 ‘실력’이라고 하겠지만, 실력보다 ‘운’이 차지하는 영역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
「톡 쏘는 맛」에서는 한 외계 기업이 지구에 진출하여 지구인들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단순하게 신호가 오면 버튼을 누르는 업무, 9시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할 수 있으며,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야근이 없다. 대신, 보너스와 임금 인상 없이 최저임금만을 지급한다.
이 단순한 업무는 특별한 기술도, 자격도 요구하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일자리의 한계도 없다. 즉, 지구인들만 원한다면 모든 지구인들이 취업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는 넉넉하다.
이런 기업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잠시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던 일자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매장에 손님이 오면 계산하고, 물품 정리와 손님이 어지른 매장을 뒷정리하는 업무 어렵지 않은 일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의 대표 일자리다. 이런 대표적인 최저임금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사라질 거다. 반대로 정년퇴직을 하며 일자리 걱정을 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최고의 일자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아버지와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야 알바부터 회사에 입사하는 것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퇴직한 노인들의 일자리는 선택지도 크지 않을뿐더러, 생계형 일자리로 가지기는 어려운 소일거리 형태의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세상이 변해간다. 최저임금도 주지 않았던 기존의 아르바이트 자리들은 경쟁력을 잃고, 시급을 1.5배까지 올려 사람들을 붙잡으려 애쓰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시간만 투자하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생기자, 실업률이 줄고 경제는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가 외계 기업으로 취업하지는 않았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려면 최저임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과 함께 외계 기업에 대응하여 시급을 오른 기존의 일자리들 덕에 외계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생겨났다.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기초적인 임금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존재함으로 인해,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받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 소설의 설정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앞으로 현실에서 이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현실의 노동 시장은 소설 속처럼 간단하지 않기는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세 가지의 제약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기술의 발전이다.
소설 속 설정 상으로 외계 행성에서는 이미 노동을 기계가 모두 대체하였고, 지구인들에게 요청한 노동은 큰 공정 시스템 속에 수동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위탁한 것이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일단 지구상의 모든 일들을 자동화하지 못했다. 즉, 소설 속만큼 기술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제약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제약은 자동화에 성공해서 지구의 모든 수요를 만족할 만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더라도 분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현 지구에서는 충분한 생산성이 확보되어도, 생산량을 유지하기보다는 계속 늘어가는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생산된 자원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이를테면, 사치재를 필수화하여 우리가 살아 가는데 사용해야 하는 자원의 양을 계속 늘려나가는 식으로 끊임없이 생산량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것 같다.
(혹은 이미 그런 상황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제약은 우리의 노동의 가치가 소설처럼 ‘일의 난이도’나 ‘노력’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했듯, 나라는 사람은 같아도 회사의 규모에 따라 임금의 차이가 많이 난다. 실제로 업무에 있어서도 현재의 회사에서 더 노력하고 예전 회사에서는 덜 노력하지는 않았었다. 또, 현재 회사에서 동기들과는 같은 연봉을 받지만, 부서별로도 일의 난이도가 어렵고 까다로운 부서가 있는 반면에, 조금 일이 편하고 여유로운 부서도 있다.
지금은 이런 제약 사항들이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도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외계 기업은 사람들에게 자격을 묻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으며, 누구든 시간만 투자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노동의 가치를 다시 설계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악덕 기업들은 심각한 구인난을 겪었고, 단순한 업무 수행함으로써 최소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아 지구 안에는 극빈곤층이 사라졌다.
소설 속처럼 버튼 누르는 정도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동을 설계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시스템 속 일부분을 단순화하여 최소한의 노동으로 분리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 소설처럼 최소 노동에 최소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 이후의 노동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가치를 평가해 나가면 된다.
현실에서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같은 사람이 같은 노력을 해도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는 건 현재 노동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만,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로 빠져버리기 쉽기 때문에..
이상적인 관점에서는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의 결과가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단순히 바란다고 다가올 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