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 세포에서 시작된 연애/결혼 가치관

난자와 정자의 차이가 만든 암수의 갑을관계에 대하여

by 알레로그

연애 혹은 결혼 관련 유튜브를 보면 연애는 ‘여자’가 결혼은 ‘남자’가 선택을 한다는 말을 자주 인용하는 걸 볼 수 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일반화하여 단순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애하고 결혼하는 걸 지켜보는 사람들, 이를 테면 앞서 말한 결혼정보회사 대표나 연애 상담을 콘텐츠 삼는 유튜버들이 쌓아놓은 통계 데이터는 연애와 결혼 과정에서 남녀가 항상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사회적인 통념 안에서 생겨난 이러한 경향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기적 유전자』 식 해석을 빌리면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본 주제를 가져오게 되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9장에서 “암수의 전쟁”에서 성의 진화 전략을 설명한다.

개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건 가능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그 뒤의 양육 부담은 상대에게 넘기는 것이라 말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최대한 적은 자원을 투자하여 본인의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사람의 경우 여성보다는 남성이 택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암컷이 잉태하는 순간부터 태아를 본인의 체내에서 기르게 되며, 태어난 자식에 젖을 만들어 먹임으로써 시작부터 수컷보다 많은 자원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를 ‘착취당하는 성’이라고 표현했는데 인간의 경우 여성이 착취당하는 성이며, 이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서 시작한다.

생식세포 단계에서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많은 자원을 자식에게 투자한다.


이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진화적으로 풀이한 내용임에도, 사회 현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이다. 미혼부보다는 미혼모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란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가 만들어낸 현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여성은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착취를 당해야 하는 성일까? 정답은 ‘아니요’다.

짝이 여성을 착취하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여성이 선수 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교미를 거부하는 것이다. 앞서 암컷의 착취가 진화적 관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교미 후 잉태가 된 시점에서는 암컷이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자한 대주주가 되어버리기 때문인데, 반대로 말하면 잉태 전 암컷은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있는 투자자가 된다. 수컷은 이러한 투자자의 마음을 얻어야만 암컷을 대주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수컷은 성실함과 가정적인 성격을 암컷에게 어필하는 방법도 있고, 암컷이 추후 투자할 자원을 고려해 미리 본인의 자원을 암컷에게 투자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고 처음에 이야기했던 연애는 ‘여자’가, 결혼은 ‘남자’가 선택한다는 문장으로 돌아가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문장을 해석해 보면 교미는 ‘암컷’이, 양육은 ‘수컷‘이 선택한다는 문장으로도 읽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남성/여성은 각각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유리할까?

책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상황에서든 암수 어느 쪽이든 먼저 상대를 버리는 쪽이 스스로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식은 부모 양쪽의 유전자를 절반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쪽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남은 한쪽마저도 자식을 버리는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이 내용은 사회적 제도를 무시한 온전히 자연계 안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때 택할 수 있으며, 사회를 이루고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매장될 수 있는 불리한 전략으로 생각된다.


위 논의보다는 도킨스가 제시한 성의 ESS를 통해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 고민해 보는 게 조금 더 흥미롭고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간단한 성의 ESS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킨스가 제시한 모델 안에서 암, 수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각각 두 가지다.

암컷은 전략에 따라 조신형과 경솔형으로, 수컷은 성실형과 바람둥이형으로 나뉜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이름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조신형은 수컷이 수 주간에 걸친 길고 힘든 구애를 거치지 않으면 수컷과 교미하지 않는 전략이며, 경솔형은 누구와도 즉시 교미하는 전략이다. 성실형은 장기간 구애를 지속할 인내력이 있고 교미 후에도 암컷 곁에 머물러 양육을 돕는 전략이며, 바람둥이형은 암컷이 즉시 교미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암컷을 찾아갈뿐더러, 교미가 끝나면 좋은 아비의 역할을 하지 않고 새로운 암컷을 찾아 사라지는 전략이다.


자식이 무사히 컸을 때 부모가 각각 얻는 유전적 이득을 +15로, 자식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부모가 합계한 것을 –20으로, 긴 구애로 낭비되는 시간에 대한 비용을 –3으로 두고 최초에는 조신형 암컷과 성실형 수컷만 구성된 개체군에서 시작한다.


이 상황 안에서는 이상적인 일부일처제 사회가 되고, 하나의 자식을 키우면 어떤 부부라도 평균 +15 이익을 얻는다. 양육의 비용을 암수가 각각 분담하여 –10씩, 그리고 긴 구애에 소요된 비용 –3을 계산하면 모든 암수는 +2의 이익을 얻게 된다.


여기서 경솔형 암컷이 생겨나면, 경솔한 암컷은 긴 구애에 소요된 비용 –3이 소요되지 않아 경쟁자인 조신형 암컷보다 +3점 높은 +5의 점수로 집단 내에 퍼지기 시작한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바람둥이형 수컷이 먼저 생겨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조신형 암컷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바람둥이형 수컷은 점수를 낼 수 없어서 개체군에 퍼질 수 없다.)


경솔형 암컷이 성공하면서 수컷 측에도 변화가 생겨나는데, 바람둥이형 수컷이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 바람둥이형 수컷은 양육비용을 암컷에게 떠넘기고 떠나버리기 때문에 경솔형 암컷과 바람둥이형 수컷이 만났을 때 점수를 각각 계산해 보면 경솔형 암컷은 –5점( +15-20=-5)을 바람둥이형 수컷은 +15점을 얻는다.


이렇게 되면 경쟁자인 성실형 수컷보다 바람둥이형 수컷이 점수가 늘어나 바람둥이형 수컷이 개체군 내에 퍼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경솔형 암컷보다는 조신형 암컷이 유리해진다. 바람둥이형 수컷과 조신형 암컷이 만나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양쪽이 얻는 점수는 +0점이지만, 경솔형 암컷은 바람둥이형 수컷을 만날 때마다 –5점이 되기 때문에 점수를 얻지 않은 조신형 암컷이 더 유리해진다.


조신형 암컷이 다시 늘어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0점인 바람둥이형 수컷에 비해 성실형 수컷은 +2점을 얻어 다시 성실형 수컷이 개체군에 퍼지게 된다. 이렇게 계산된 모델 안에서 안정적인 ESS 모델은 조신형 암컷이 5/6, 성실형 수컷이 5/8으로 된 개체군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모델이지만, 이 안에서 스스로에게 적합하고 맞다고 생각되는 위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채택된 안정화된 ESS 모델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전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하나는 위 모델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모델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암수의 전략은 위에서 제시된 두 전략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다양한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위 결과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개체군 내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에 적합한 전략(조신형 및 성실형)을 택한 개체가 대다수일 때 진화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는 단순한 사회적 합의를 넘어 진화적으로 안정되고자 했던 유전자가 오랜 시간 만들어온 전략일지도 모른다. 이 점을 고려해서 자신만의 전략을 만드는 게 좋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위 시뮬레이션에서 부여한 점수 또한 임의로 부여된 점수이며, 아마도 유전자를 퍼뜨리는 관점에서만 부여된 점수일 것이라는 점이다.

7장의 내용을 다룬 '낳을 수 없는 사회, 유전자의 선택'(https://brunch.co.kr/@allelog/15)의 글과 함께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까지 함께 고려했을 때 앞서 계산했던 유전적 이득 점수는 달라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앞서 계산된 전략 비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개체군 전체의 안정적인 비율을 신경 쓰기보다는 상대편 성에서 채택하는 주 전략을 분석하여 스스로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전략을 준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도구처럼 사용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행동들은 유전자의 전략 중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점을 알고 있다면 오히려 유전자를 이해하고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진화가 만들어낸 틀 위에 우리는 문명과 윤리를 덧입혀왔다.

유전자는 생존을 위한 전략을 우리 몸을 통해 구사하였지만, 우리는 더 이상 생존만을 위해 관계 맺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성별로 구분된 전략을 따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전략을 조율하고 타협하며, 새로운 구조로 재설계하는 것.

이를 위해서 우리는 유전자의 전략을 이해하고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화가 현재의 우리를 설계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유전자와 함께 미래를 설계할 차례다.

우리 삶에 가장 최적화되고 유리한 연애와 결혼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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