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을 수 없는 사회, 유전자의 선택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저출생과 생존 전략

by 알레로그

이기적 유전자 7장 ‘가족계획(Family planning)’에서는 새로운 개체를 낳는 것과 현존 개체를 돌보는 것을 나누어 각각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로 구분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뉜 두 행위는 서로 영향을 주어 자손의 생존율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출산율이 조정하는 진화적 전략을 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이라면, 한 개의 알을 낳기보다는 두 개를, 두 개보다는 열 개, 백 개 점점 늘어나 결국은 무한히 산란하는 게 최상의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을 택하게 된다면, 각 아이 키우기에 들어가는 노력 또한 무한히 나뉘어 각 아이가 보살핌을 받는 정도가 0에 수렴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이기적 유전자는 아이를 무한정 많이 낳기보다는 ‘적당한 수를 낳아 그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전략’을 택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각 자손이 생존해 유전자를 이어갈 확률을 높여준다.


이제 이 관점을 가지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자.


대한민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몇 세기 후 한국은 멸망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낮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책적 지원은 분명 존재한다. 정부는 출산 장려금, 육아휴직, 돌봄 지원 제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출산을 유도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건, 개인의 이기심 때문일까? 혹은 단순히 가치관의 변화 때문일까?


이미 많이 알려진 원인이 있지만, 이러한 원인 또한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현재 ‘낳는 게 손해’로 느껴지는 환경이다.


1. 높은 집값과 불안정한 고용은 가족계획을 어렵게 만든다

2. 사교육 중심의 경쟁적 교육 환경은 부모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3. 양육의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된 사회 구조가 자녀 계획 자체를 꺼리게 만든다.

4.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기 어려운 유교적 압박도 여전하다

5. 한국 특유의 '완벽주의 성향'이 부모가 되기를 주저하게 한다.


마지막 이유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 부연 설명을 덧붙이면,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것들만 경험하게 하고 싶고 완벽하게 기르고 싶은 마음이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면 당연히 드는 마음이고 전 세계 부모의 공통사이겠지만, 이 마음이 '완벽주의' 성향과 결합되어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등의 이유로 부모가 되기를 주저하게 한다고 본다.

무책임하게 낳아 기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어떤 부모가 처음부터 능숙하고 베테랑일 수 있을까? 첫째를 기르는 모든 부모는 미숙한 초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아기를 기를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는 마음으로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길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면, 현재 한국 환경은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낳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자원을 지키고, 자신과 기존 가족의 생존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문제 원인을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므로, 해결책도 같은 관점에서 찾는다면 핵심은 “여러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전략을 택하도록 만드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앞서 언급했던 ‘낳는 게 손해’로 느껴지는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한 2번과 3번을 묶어 사교육 중심의 경쟁적 교육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양육의 책임을 공동체에 부여하는 거다.


요새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선행’에만 있지 않다고 한다. 주변 학교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다니니까 내 아이만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후자의 이유라면 굳이 학원에 보내지 않고 다른 친구를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방향은 마음이 맞는 부모들끼리 의기투합해 사교육을 보내지 않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거다. 학원을 대신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아이를 기르게 되면 기본적으로 사교육 비용을 꽤 많이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책 다른 챕터에서 언급된 부분이지만 근연도 관점에서 내가 남동생을 돌보는 것과 어린 자식을 키우는 데에는 원칙적으로 차이가 없다. 즉, 아이를 여러 명 낳아 형제를 만들게 되면, 나의 돌봄이 줄어들면서도, 동시에 형제간 돌봄이 발생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관까지 맞는 부모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면 공동체에 속한 아이의 규모도 한 가정당 2명 이상씩 합류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러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전략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산아 제한’이라는 이름으로 출산을 억제하던 나라였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유리하다고 자연스럽게 판단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이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유전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출산이 손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도록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는 언젠가 다시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지도 모른다. 출산을 미루고 피하는 것이 점점 더 큰 불이익으로 다가올 어느 순간, 우리의 유전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을 ‘다시’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 인구의 회복이 자연적으로 불가능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오지는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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