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위기를 감지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재앙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는 금세 잊어버린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다행인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문제 예방의 효용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지나친 사건들에는 사실 수많은 경고와 준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그 모든 준비가 쓸모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김동식의 단편 소설 「돈독 오른 예언가」는 이런 모순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 ‘예언가’는 재난이나 사고를 예고하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라 이를 미리 예방한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예언가에게 감사하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지만, 예방되는 사고가 늘어남에 따라 예언가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어차피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왜 돈을 줘야 하지?’
‘사고가 이렇게 많이 일어날 리가 있나? 예안가가 돈독 오른 거 아니야?’
예언가의 말대로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인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현실은 곧 예언의 신뢰도를 갉아먹는다.
결국 사람들은 예언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실제로도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염병, 전쟁, 기후변화와 같은 '위기'들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이런 위기들은 문제가 심각해져 눈앞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리고 더욱 최악인 것은, 이런 부분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집단 면역을 이룬 단체 안에서는 전염병이 돌지 않기 때문에 집단 면역을 갖추기 위한 백신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방력을 강화하여 전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평화에 속아 국방비를 낭비로 치부하는 인간들이 있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화석 연료를 끌어다가 펑펑 써도 된다는 정치인들이 있다.
사람들은 눈앞의 문제에만 반응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예측과 대비는 언제나 의심받고, 과소평가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이 이런 불편한 진실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한 모든 과정이, 전쟁이 없었다는 결과로만 남아 그 준비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우리는 눈앞에 위협이 없다고 해서, 위협이 사라진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평화는 수많은 준비와 예방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이 준비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우리가 모두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결국 문제를 예방하는 것보다 문제를 겪고 나서야 움직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 괜한 걱정을 한다’며 밀어내는 순간, 우리는 진짜 위험을 초대하게 된다.
예방의 가장 큰 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