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이직하고 싶을 때

회사를 떠나는 임원이 절대로 '주인의식 갖지 말고 떠나라' 말했다.

by 유앨런

먼저 말해두자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가장 오래 다녔습니다. 커리어 9년차임에도 벌써 4번째 회사인데요. 2년 터울 마다 회사를 옮겼는데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좋은 제안이 와서 수동적으로 그랬습니다. 옮긴 곳마다 좋은 기회를 받았던 것도 맞고 후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회사를 다닌지 벌써 3년이 됐는데요. 우수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기업이 가장 원하는 '주인의식'이 있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작년부터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대표이사부터 팀원들,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뿐 아니라 자리와 노트북까지요. 제자리에 서있는 저를 제외하고 모든 게 변했죠. 이제보니 마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것 같네요. 맞네요. 아예 2026년부터는 새로운 직장을 다니고 있다 생각해야겠습니다. 조직개편은 밥먹듯 이뤄지고 동료애와 유대감보다는 오로지 지표, 성장, 매출로만 이야기하는 기업으로 변하니 머리를 맡대고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 떠났습니다. 우리 회사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에 다들 끄덕이며 송별회를 몇번 했는지 모르겠네요.


이에 질 수 없어 저도 지난해 말부터 이직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요구와 새로 가려는 회사들의 의조건이 수차례 맞질 않아 잠시 접어둔 상태였죠. 매서운 AI의 기세와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고려하면 조금 더 스테이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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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제 흔히 말하는 레드 플래그를 마주했습니다. 그것도 회사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많은 직원들이 따랐던 임원분의 송별회 때 말이죠.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분은 마지막까지 우아했습니다.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과 앞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당부 등등을 상세하게, 차분히 설명해주셨죠.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시간의 마지막 즈음, 임원분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작심한 듯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이 나간 뒤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시던 그분은

"앞으로는 더 어려워 질거고, 여러분은 더 힘들어 질거다. 빠른 시일 내 안정적인 대기업으로 옮겨라."


어라?... 메신저의 힘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두가 롤모델로 삼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웅성웅성 동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남겨주셨는데, 새빨간 레드 플래그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주인의식,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임원으로서 여러분께 많이 했던 말이지만 오너 아니고선 주인의식은 허상이다. 주인의식 절대 갖지 말라. 당신이 최우선이다."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홀가분함에 180도 달라진 그의 모습도 충격이었지만 위기감과 함께 본능에 가까운 쌔함이 명치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결론내렸죠. 진짜로 떠나야할 때다.


그래서 어제 밤부터 열심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콧대 높던 작년에는 고려해보지 않던 곳까지 이력서를 넣어보고 있네요. 누군가의 제안으로 수동적인 태도로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말입니다.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커리어적으로 마지막 전환점임을 알기에 더 신중하고 절박해졌습니다.


복잡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이 글은 지금 제 정신상태를 잘 드러내는 거 같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마다 글쓰면 정리에 도움되는 만큼 손길 가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나중에 이직에 성공하고 이 글을 "아 이때 진짜 절박했구나"하며 웃으면서 보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정말 이직하고 싶어진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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