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그저 커리어 수단일 뿐
후배들을 만나 꿈이 뭐냐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매번 ‘회사 이름’이 나온다. 직장 말고 '꿈'에 대해 다시 물어보면, 생각해본 적 없다 한다. 대기업, 중견기업에 들어가는 걸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슬픈 현실. 어쩌다 회사가 꿈이 됐을까.
현 기성세대들이 취준생일 때는 직업 선택의 폭이 좁고, 건실한 기업도 드물어 구직자가 회사에 매달려야 하는 시대였다. 정보 자체가 귀한 시대라 좋은 기업에 들어간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게 중요했고, 자연스레 훌륭한 선배를 만날 수 있는 명문대 진학도 중요해졌다. 덩달아 교육체계도 개개인의 적성을 발전시키는 대신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방향으로 돌변했고, 공교육을 넘어서기 위해 사교육이 발달하니 학원산업도 함께 성장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학원, 학교, 기업 등 훌륭한 단체가 곧 삶의 목표(꿈)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중심에 정작 중요한 개개인의 목소리가 없다.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보고, 초중고대학까지 끝없이 입시에 시달리며, 취업준비를 위해 별도의 스터디를 꾸릴 정도로 바쁘게 지내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1초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어른들이 나이를 먹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인터넷과 이직 플랫폼 등장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인맥으로 이어지던 네트워크가 플랫폼으로 급속히 대체됐다. 지인 소개가 없어도 기업의 빈자리를 알 수 있고, 심지어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헤드헌터들이 먼저 연락하곤 한다. 이는 개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2030의 가치관과 잘 맞아떨어졌고, 시너지 효과는 배가 됐다.
거기에 비대면 재택근무로 기업에 대한 소속감이 덜해지고, 동료와 유대감은 느슨해지며 상황은 더 빠르게 변해갔다. 혼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니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만의 시간이 늘어나니 스스로를 되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또 출퇴근에 썼던 시간을 여가생활로 보내면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꿈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구태여 힘든 직장생활과 단조로운 업무를 반복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신입사원 절반이 2년 이내로 퇴사를 결정한다는 뉴스에 10년 이상 근속하는 기성세대들은 혼란스럽다. MZ세대(정작 MZ세대들은 안 쓰는 단어)를 보며 이상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왜 이직하는지, 어떻게 옮겨 다니는지 모른다. 그러니 MZ세대를 마치 기형적인 시대라 프레임 씌우며 버릇없다고, 요즘 것들은 끈기가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시기와 질투를 섞은 채로. 슬기로운 구직자들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길을 찾아 더 빨리 나아간다.
기업에게 매달리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기업이 인재에게 '구애(求愛)'해야 하는 세상이다. 인재라는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우리는 더 이상 회사에 목매달 필요가 없다.
이직 자체가 도전인 만큼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나도 회사를 옮길 때마다 불안했고, 100% 만족하지 못했다. 이름 대신 직책으로 불렸고, 이전 회사는 금방 다른 사람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큰 포부를 안고 입사했지만 인수인계라는 단계를 거치면 이전 근로자가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가는 부품일 뿐이더라. 워라밸 바람과 함께 근로자 목소리를 들어주는 시대라고 해도, 회사는 그저 우리를 이용하는 사용자일 뿐이다.
이직이라는 도전에 성공해봤던 만큼 좋은 경험을 해봤다. 그 경험은 굳어져 회사에 대한 기대를 점점 놓게 하고, 스스로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사를 꿈으로 생각하는 대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가끔 회사가 부리는 수작에 애사심이 생길라 그러면 메모장에 적은 글을 꺼내보며 정신 차린다.
"회사는 우리를 책임지지 않는다."
"회사가 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장은 그저 내 커리어의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