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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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고 무난한 삶의 표본인

우리 부모님에게

특별한 막내딸의 존재는

대리 만족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일단 겉으로 보는 우리 가족과 부모님의 인생은

봄날 새벽의 호수처럼 잔잔 그 자체였다.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일탈을 시도한 것은 아마도

막내 딸인 내 이름을 지을 때가 아니었을까.



나는 마흔이 넘는 지금까지 한번도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리고 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들은 사람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막내 딸은

부모님이 공들여 지어주신 이름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외모도 행동도 독특한 아이로 쑥쑥 자라났다.



사춘기 전까지는 나 자신조차도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것에 대해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마저 느꼈던 것 같다.


'특이한 내 이름, 특이한 내 외모, 특이한 내 생각.

음... 다 좋아!'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가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내 것들이 점점 불편하고

심지어 내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 생활을 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과 맞지 않는 톱니 같은

나는 살이 갂여 나가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들 속에 맞는 딱 부품이 되고 싶었다.




그 틀에 나를 끼워 넣지 못하면

그들과 같이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며 뱅글뱅글 신나게 돌 수 없다고 느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살 이후의 나의 삶이란

'평범'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어느 여대생과 섞어 놓아도 전혀 튀지 않을 외모가 필요했다.

남자들은 튀는 여자를 싫어하니까.

성형 수술도 하고,

유행하는 화장술도 익히고

잡지에 나오는 옷도 사고,

한번 듣고 누구나 바로 알아 듣는 흔한 이름도 필요했다.




어느 순간 나는

동해안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만큼

남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나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세상의 기준이라기 보다

나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내가 싫었던 것이었다.




그 때는 평온한 삶이란

주위 상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몰랐었다.



삶은 수학 공식과 달라서

괄호 안에 정확한 숫자를 넣더라도

정답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도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작동하는

공통의 공식도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의 삶도 '평범'한 삶은 없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처럼

아무 일 없이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며

대단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정말 몰랐었다.





마흔 평생동안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었다.

가끔 그들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미소 짓기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세상

그 누구의 삶도

하물며 풀 한 포기도,


자신에게 집중하며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존재는

멋지고, 대단하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것이기에

그 누구,

심지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해 받으려 안간힘을 썼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쓰럽다.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의 나 자체로 충분하니까.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1. (전편) 각자의 입장

을 이어 보시려면 : https://brunch.co.kr/@daram/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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