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함박스테이크 아저씨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어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살다가,
그 다음에는 친구와 하숙을 하고
그리고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돈을 열심히 모아야겠구나."
주변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그런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이 있다니!
무엇보다,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그렇게까지 가난한 사정은 아니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먹을 것을 사랑하는 대식가였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대성한 먹방러가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노쇠하여 식욕이 그 때에 비하면 별로다)
보통 라면을 먹으면 기본 3개,
고기는 혼자서 5인분 정도 먹는 수준?
피자 라지 1판은 기분 좋게 먹었으니까.
스트레스성 폭식은 아니고,
정말 원래 그렇게 많이 먹었다...
다행히 비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언가의 결핍을 느끼면
왠지 더 절절히 원하게 된다랄까.
그때는 생각했다.
"나중에...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가격 같은 건 보지도 않고!
먹고 싶은 만큼!
아무때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성공하면 좋겠다!"
혼자 자취하며
간간히 하는 알바로는
그 식비를 다 충당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쓰니까 정말 불쌍해 보인다.
게다가
가족 중 먹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런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내가 서울로 떠나자마자 요리 지옥에서 벗어났다며
심지어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소포로 반찬을 보내준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 때는
엄마와 이렇게 친하지도 않아서
보내달라는 부탁도 안 했었고.
어렵게 추석에 내려갈 기차표를 구하게 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버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저녁도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야구모자만 대충 눌러쓰고 기차에 올라탔다.
입석으로 탄 사람들까지 기차 안은 빽빽했다.
기차 안에 식당칸이 있긴 했지만,
식당칸의 메뉴는 보통 가격이 비쌌다.
용돈에 쪼들리는 대학생인지라
당연히 기차에서 식사를 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너무 배가 고팠다.
"에라, 모르겠다!"
사람들을 비집고 꼬리칸에서 식당칸으로 가니
식당칸 자리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자리를 기다리며 무슨 메뉴를 먹을까 고민했다.
응당 가장 싼 메뉴를 먹어야 했겠지만,
어차피,
'에라, 모르겠다.'를 외친 바,
'가격 따지지 말고 진짜 먹고 싶은 걸 먹자!'
비장하게 메뉴를 주문하고 어렵게 자리에 앉았다.
"함박스테이크 주세요!"
사람이 많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합석을 해서 먹었다.
추석 귀경길 기차 안에서 먹는 함박스테이크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나는 고개 한 번을 들지 않고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금새 몸이 따뜻해졌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갔다.
"계산할게요."
"앞에 분이 이미 계산하고 가셨는데."
"네? 누가...?"
"그 앞에 아저씨, 학생 모르는 사람이었어?"
자리로 돌아와 생각했다.
물론 잠시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기분이 좋다거나, 놀랍다거나 하기보다
의아했다.
"왜? 무슨 이유로?"
그러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날따라 모자를 쓰고
시골 누렁이 사료 먹듯 코를 박고 먹어서
또 주변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성격이라
도무지 아저씨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혹시나 누가 나를 훔쳐보지는 않나
촉각을 세워 보았지만,
이내 골아떨어졌다.
몇 시간이 지나 우르르 사람들에 섞여
종착역에 내렸다.
한 밤중이었다.
플랫폼에서도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사실은 자기가 밥값을 내줬다며
스윽 다가오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들 들뜨고 피곤한 얼굴로 재빨리 사라졌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력을 다해 달리는 여유 없는 삶을 사는 순간마다
가끔
얼굴도 모르는 함박스테이크 아저씨가 생각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
"이런게 그 말로만 듣던 여유, 여유라는 걸까?
나도 가끔은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그런 "여유" 있는 아줌마로 사는 것도 좋겠지 !"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프롤로그를 보시려면:
https://brunch.co.kr/@daram/135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전편 3. 그 사람은 우리가 아니니까요
를 보시려면:
https://brunch.co.kr/@daram/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