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가 되면
감동, 그러니까 마음의 동요라는 걸 느끼기가 쉽지 않다.
뭔가
가슴 속이 막 만든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한 느낌이랄까
그런 간질간질 따뜻한.
20년 전에 산 MD플레이어가 탑재된 미니 컴포넌트가 있다.
떠돌이 개 같았던 나와 어울리지 않는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이었다.
어느 땐가 깜깜한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휴대용 MD플레이어에
MD를 갈아 가며 듣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는
저걸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산에 가서
휴대용 MD플레이어와 레코딩이 가능한 미니 컴포넌트 오디오를 샀다.
특히 오디오는 단번에 고를 수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예뻤다.
집으로 배송해 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젊은 여자애라 그랬나
새상품이 아닌 진열한 상품을 선심쓰듯
집에 후다닥 설치해 주고 갔다.
그냥 오디오가 마음에 들어서 별 말은 안 했다.
그렇게 나와 동거를 시작한 미니 컴포넌트는
종국에
부모님 집 내 방에 방치되었다.
내가 결혼한 지가 10년도 넘었으니까
10년 동안 전원 컨센트를 연결해 본 적도 없었다.
오늘 왜 그랬을까
갑자기 눈에 밟혀서
전원을 연결해 보았다.
"이거 켜 볼까?"
"좋아!"
전원이 켜지다니!
서랍을 뒤져보니 MD 한 상자가 나왔다.
그런데 MD 투입구가 열리지 않는다...
그냥 플레이를 누르니
당연하다는 듯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저 MD는
오디오 안에 10년은 갇혀 있었던 거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내가 20년 전엔 이런 노래를 들었었어. 들어봐."
아침 7시 반이면 이미 전철 손잡이를 잡고 내 팔에 기대 서서
졸린 눈을 비비며 듣던 앨리샤 키스의 달콤한 목소리.
12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강변 북로를 아마 시속 140으로 달리며
듣던 짐노페디의 피아노 건반음들.
어디를 향해 달리는 줄도 모르면서
뭘 듣는 지도 모르면서
사무실에 앉아 마이너스8을 듣고 또 들으며 열심히... 또 열심히 그리다 보면
그냥 잘 산 것 같아 뿌듯했던 나.
종을 치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음악을 듣자
그때의 감정들이 주룩 흘렀다.
"음악 취향이 멋졌네."
그리고
언제나 혼자였던 내가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눈을 마주보고
탱고를 추며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니.
나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함께 잠깐 춤을 췄다.
음악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춤사위였지만
그냥
이 감정을 그냥 가만히 앉아 듣기에는
너무 일렁거렸다.
기분이 간질거렸다.
그것도 잠시.
나는 나에게 아무말도 걸지 않기를 바랬다.
이 음악들을 혼자 듣고 싶었다.
뿔소라의 쓸개처럼 씁쓸했던 나의 20대.
나는 조용히 내 귓가에만 대고
그 험난했던 파도 소리를 잠시 울려보고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 남았네.
타인의 취향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아마 개뿔 자기 취향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나의 취향이 좋고
또,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것이 내 수입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내 나이와 상황과 맞지 않더라도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