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을 눌렀다.
확실히 여름을 끝내는 굵은 빗방울처럼
건반을 눌렀다
그렇게 정신없이 눌렀는데도
빗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아직도 습관처럼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얇은 이불로 몸을 감싼 채로
이상한 시간에 잠이 들었다
비 비린내에 잠이 깨었을 때
더이상 건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른 낙엽 같은 것에 막혀버린 홈통처럼
의식은 쪼록, 쪼록 새고
바닷가에서 너에게 뱉었던 말들이나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의 결정들이
이끼처럼 살아났다
습기
공기 중에 습한 기운이 너무 많다
그래서 숨을 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