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의 기억들 (1)

Oct 2007 - 브라티슬라바, 프라하

by AIR

입사 교육을 받고 처음 배치된 부서는 제품의 생산을 관리하는 팀이었는데, 국내 생산이 거의 없는 회사라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었다.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이야 당장 출장을 갈 일은 없었지만,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출장을 가게 될 것이라 해서 내심 첫 출장은 언제 어디가 될지 궁금해하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1월에 입사를 하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즈음에 부서장의 통보로 첫 출장이 결정되었는데, 목적지는 슬로바키아, 내가 어릴 때에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로 불리던 곳이었다. 영국 어학연수 시절에 프라하는 여행으로 가봤는데, 슬로바키아라.. 기대가 커지는 나라는 사실 아니었지만, 첫 해외 출장이라는 데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기대감에 출발일이 기다려졌다.




출장기간은 2주일, 출장 목적은 새로 도입한 제품 생산 라인에서 양품이 생산되도록 점검하고, 본격적으로 생산의 시작을 승인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써 놓고 보니 거창하지만 아직 아는 것도 변변치 않은 신입사원이라 이미 다 준비된 생산라인에 가서 멀뚱히 서 있다가 제품이 나오면 눈대중으로 검사하고 문제없으면 "ok, no problem" 정도만 해 주는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제품도 아니었어서, 큰 문제만 없으면 말 그대로 '꿀 빠는' 출장, 떠날 때에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있었는데 하루 정도 있다 보니 주말에 뭘 할까 생각도 해 보는 여유가 생겼다.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고, 이 출장은 아마도 내 능력치를 고려한 부서장의 배려가 포함된 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뭔가 대단한 판단을 내릴 만한 역량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장이라는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배움이 됐고, 지금도 그 부서장님 이름은 잊지 않고 있다.


출장을 처음 나와서 가장 놀라웠던 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정도의 후한 대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평범한 수준의 호텔이었지만, 번듯한 호텔방을 혼자서 쓰고 출근과 퇴근을 호텔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왠지 모를 ‘성공한 어른’ 같은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차가 있었다. 회사가 마련해 준 폭스바겐 파사트는 출퇴근뿐 아니라 근교를 둘러보는 데에도 쓸 수 있었는데, 막 운전을 즐기던 시절이라 차를 몰고 다니는 매 순간이 설레었다. 학생 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는 걸 보면서, ‘아, 내가 진짜 회사원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주말이 다가오자, 슬슬 무엇을 할지 고민이 생겼는데, 때마침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가 여행차 프라하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차를 몰고 프라하로 향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차로 다섯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주말 이틀 일정에 다녀오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테지만, 29살의 나에게 그 정도 고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나 보다.

프라하에서 만난 친구와의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함께 자라온 어린 시절 친구를 이국적인 도시에서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던 순간은 특별했다. 낯선 곳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익숙한 대화가 오가던 자리였기에, 붉은 지붕의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며, 검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진했던 그 묘한 어울림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다시 슬로바키아로 돌아와 남은 일주일을 보내고 귀국길에 오르던 날, 의외로 마음 한구석이 아쉬웠다. 출장을 가면 도착하기도 전부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의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감정이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12시간을 버티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장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피곤함이 상쇄되던 시절이었다.

Passat TDi 2.0.jpg [Passat TDi 2.0, 첫 출장에서 과분하게도 받았던 렌터카였다]


2007년의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장을 떠났고,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팔도 맘껏 펴지 못하고 받아 드는 기내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먹으며 잘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수많은 출장들을 떠났고, 18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첫 출장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한국을 100번 이상 떠났고, 30개국 이상을 출장으로 방문하며 여러 경험을 했다. 즐겁고 신나는 일도 많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지치는 순간들도 그만큼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를 채워주었다.


그 출장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려고 한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던 첫 출장부터, 떠날 때부터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까지. 혹시 해외 출장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기를.



Epilog


슬로바키아에서의 기억은 사실 많이 남아있지 않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도 아니라 기억을 도울 만한 수단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가지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들이 있는데, 현지의 공장 기술자들이 나와 함께 갔던 한국인 기술자들에게 무엇이든 배우려고 열심이었던 점. 평생 쇠를 깎는 - 문자 그대로 쇠를 깎는 엔지니어들이다 - 일만 해온 분들이라 영어라고는 땡큐 헬로 말고는 못 하는 분들이었는데, 손짓과 눈빛 만으로 기술을 전수해 주고 그것을 또 받아내고 뿌듯해하고 감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90년대부터 이 일을 해오셨다는 우리나라 기술자분은 저녁을 먹으며 본인도 젊은 시절에 일본 기술자들에게 그렇게 일을 배웠다며, 이제 우리가 그 기술을 여기서 가르쳐 주고 있으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회상했다.

기자가 되고 싶어 글만 쓰던 내가, 어느 날 슬로바키아의 한식당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며, 평생 공장에서 쇠를 깎던 老기술자와 나는 어떻게 이곳에서 만났을까 생각하며 소주를 한 잔 더 따라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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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ta, Slovakia 어딘가의 건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도시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