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의 기억들 (2)

June2008 - 샌디에이고

by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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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관리 부서의 출장은 보통 일 년에 2번을 가게 된다. 상반기에 도입된 제품 생산 라인의 본격 가동을 지원하는 출장이 있고, 하반기에는 그 해를 마무리하며 다음 해 생산을 준비하는 출장을 가는 일정을 계획해서 출장지역과 출장자를 선정했었다. 각 담당자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해외 공장을 갖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 유럽 지역을 담당하는 선배의 부사수로 지정되었다가 곧 북미와 중남미를 담당하는 공장을 담당하는 선배에게 일을 배우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외에는 해외 공장의 직원들이 있고 그들과의 대화는 물론 영어로 하게 된다. 부서의 선배들은 공장의 기계를 설치하고 돌리는 데에는 전문가들이었지만 해외 공장의 외국인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내 영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었지만 취업을 위해 공부했던 영어가 현지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에 문제는 없는 수준이었던 덕분에, 선배들은 필요할 때마다 나를 불러 전화와 메신저 연락에 대응하게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고 미국 공장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공장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미국 공장의 출장을 막내가 가게 되는 건 다소 예외적인 경우였는데,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막내가 영어를 곧잘 한다는 소문을 들은 부서장이 마침 중요한 제품을 새로 도입하는 출장에 나를 동행시킨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번 출장은 나 혼자 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부서 선배인 정ㅇㅇ 대리와 함께였다. 이 선배와의 일화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얘기할 게 많은데, 업무 능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 편이었으나 그 외의 부분들은 나와는 맞는 부분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아직 1인분 능력을 다 할 수 없었던 나는 통역과 업무 보조의 역할로 출장에 투입되었고,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터라 대사관을 통해 미국 입국 비자부터 발급하는 게 출장 준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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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이 정해지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출장 품의' 보고를 작성하는 일이다. 나는 '품의'라는 단어를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들었는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보니 어떤 보고를 '품의'라고 부르고 어떤 보고는 아닌지 꽤나 헷갈려했다. 결론적으로 '품의'는 회사 비용이 투입되는 모든 일에 대한 보고를 지칭하는 단어인데, 회사에는 생각보다 이런 '사내 전용' 단어들이 꽤 있었다.


아무튼 이 '출장 품의' 보고에는 출장을 떠나서 돌아오기까지의 모든 내용이 들어간다. 업무 계획은 기본인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항공편과 숙소를 결정하는 일이다. 회사에는 이런 서비스를 전담하는 여행사가 지정되어 있었는데, 출장 일정과 출장지를 메일로 전달하면 숙소와 항공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목록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샌디에이고, 미국에서 은퇴한 돈 많은 분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도시였다. 후에 돌이켜 보니 나는 이 도시에 총 6개월 정도를 출장으로 머물렀는데, '라라랜드'에서 보이는 LA와 같이 황홀한 연보랏빛 저녁하늘을 보며 퇴근하던 그 느낌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숙소는 샌디에이고지만 항공편은 LA로 가서 차량으로 샌디에이고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인천에서 샌디에이고로 가는 직항 편이 없기 때문이었는데, 출장을 같이 가는 정대리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하나 건네주며 미리 연락을 하라고 했다. 누구의 연락처인지 물어보니 출장지에서 머물 하숙집(게스트하우스)의 주인집 아주머니 전화번호인데, 샌디에이고 공항에 픽업을 나올 것이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방식의 숙소와 교통편 예약도 매우 특이한 경우였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보려 한다.


여행사에서 항공편과 숙소를 확정받으면, 이제 '출장 품의'을 '상신'하게 된다. 또 다른 '회사 전용' 단어인 '상신'은 '품의'을 결재라인에 넣고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올리는 절차를 말한다. 내가 입사하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신' 절차는 실제로 서류철에 넣고 부서장이나 부서장의 비서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했다. 나는 다행히 전자 결재 시스템이 구축된 후에 입사한 덕에 그런 어려운 절차를 겪어볼 일은 없었지만, 최근 공무원인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고위직 공무원들은 장관이나 차관에게 결재를 받을 때 아직도 전자 결재 상신과 함께 직접 약속을 잡고 찾아가 대면 보고를 하는 게 정식 보고 절차라고 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제법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곳인데, 공무원 세계에 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자꾸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는데, 다시 출장 준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출장 품의를 보고했고, 이번 출장은 부서장이 직접 지시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없이 승인까지 이어졌다. 이걸 ‘품의'가 완결되었다’고 말하는데, 이 모든 프로세스를 처음 해 보는 나로서는 그 과정이 꽤나 낯설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보고서를 작성하고, 상신하고, 승인받는 절차’ 일뿐인데도, 막상 처음 마주했을 때는 단계마다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그다음에는 또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품의가 완결되면 본격적으로 출장을 위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일이 시작된다. 여행사에서 발권해 준 항공권을 메일로 받고, 혹시 몰라 출력까지 해 두었는데 요즘처럼 전자 티켓이 당연한 시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그다음은 미국 대사관 인터뷰.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찾아간 대사관 1층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저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챙기고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출장 비자라는 특성 때문인지 2층으로 바로 올라가 안내를 받았다. 거기서 한국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하는 미국인 직원이 밝게 웃으며 “출장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던 게 전부였다. 겨우 1분 남짓의 짧은 면담 끝에 10년짜리 미국 비자를 손에 쥐게 되었는데, 최근 조지아주에서 발생했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 뉴스를 접하며, 그 사이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짐을 싸서 미국으로 향하는 일뿐. 생애 첫 미국 출장이라니, 무엇을 챙겨야 할지부터 고민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이건 대부분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걸 도착 직후에 알게 된다)

속옷, 양말, 세면도구부터 갈아입을 옷가지들, 그리고 혹시나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을까 싶어 챙긴 컵라면과 고추장까지. 그렇게 큰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떠올려 보는 인천 공항 제1 터미널의 풍경 속에서, 저 멀리 정대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굳게 다문 입술과 고집스러운 표정.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미국 출장보다 앞으로 한 달간 그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짐을 쌀 때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걱정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Epilog


출장 얘기를 이렇게 길게 했는데도 ‘일’ 얘기가 없는 이유는 당시 내 역할이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서는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효율을 높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부서였다. 하지만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서에는 약 40명의 선배들이 있었고, 대부분 고졸로 입사해 생산직에서 시작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회사가 커지며 해외 공장이 생기고, 현지 인력과 영어로 소통할 필요가 늘어나면서 영어 가능한 신입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발령을 받은 첫 신입사원이었다. 영어가 어려운 선배들과, 업무가 어려운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했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묘한 공생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