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의 기억들(3)

June2008 - 샌디에이고, 티후아나

by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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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아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미국에 이민을 간 가족의 LA생활이 배경이었는데, 마당이 딸린 큰 2층집에 여유로운 일상과 당시의 일반적인 한국 가족들보다 서양식 생활을 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해외에 사는 한국사람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내심 이민 생활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 드라마였다.


LA공항에 도착하니 우리 회사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든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샌디에이고까지 이동하도록 픽업을 나오신 분이었다. 이 분은 내가 1달간 묵을 숙소(게스트하우스라고 불렀다)의 주인이기도 했는데, 나와 같은 출장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하숙집을 운영하는 분이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LA아리랑에서 보던 집과 너무 똑같아서 혹시 여기서 드라마를 찍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방이 6개에 화장실이 3개로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크기의 내 상식으로는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 규모였는데, 부엌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면 야외 수영장에 바비큐 시설까지 있어 그런 집을 처음 본 나는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방은 2층의 화장실 옆에 있는 방이었는데, 복층 구조의 집에서 처음 자 보는 터라 내심 들뜨는 마음이 들어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아래와 위를 몇 번 오갔던 기억이 난다. 1층에는 큰 거실이 있었는데, 족히 10명은 앉을 수 있는 ㄷ자 형태의 소파가 있었고, 앞에는 당시로서는 가장 큰 사이즈인 30"이 넘는 TV가 있었다.


처음 보는 미국식 가정집의 규모에 놀라 이것저것 구경하던 나에게 주인아주머니는 마트를 갈 건데 미국을 처음 와 봤으니 구경을 가겠냐는 제안을 해 따라나섰다.

처음으로 가 본 미국의 마트는 몇 번이나 나를 놀라게 했는데, 우선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크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우유팩이 보통이었는데, 여기서는 두 손으로 안아야 할 정도로 큰 갤런 단위의 우유가 진열돼 있었다. 감자칩 봉지도 한국에서 보던 것의 서너 배는 됐고, 케이크는 마치 잔치를 벌여야 할 것 같은 크기로 팔리고 있었다. 카트마저도 성인 한 명은 거뜬히 들어가 앉을 만큼 커서, 이래서 미국 사람들은 한번 장을 보면 며칠씩은 나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 가서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한 것, 변기도 크고 높아 까치발을 들어야 했고, 심지어 화장지 폭도 넓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마트까지의 거리였다. 차로 20분이 걸렸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이 정도면 가까운 거리"라고 하셨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게 실감 났다. 어디를 가든 걸어서는 불가능하고, 모든 것이 차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였다.

세 번째는 의외로 한국 물건이 많다는 점이었다. 라면이나 과자 같은 건 물론이고, 소주도 진열돼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는 길에 아주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이냐고 물으셔서 몇 가지를 얘기했는데,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냉장고에 내가 말한 브랜드의 맥주들이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 주시다니 신기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집 밖으로 나와보니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앞에 렌터카가 배달돼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주인아주머니는 단순히 하숙집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렌터카 사업까지 함께 하고 계셨다. 한인택시부터 하숙집 운영에 렌터카까지.. 대체 이 분 정체가 뭐지 궁금해졌다.

집 앞에 배달된 렌터카는 쉐보레의 말리부였는데, 정대리는 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툴툴거렸다. 지난번 출장 때는 더 좋은 차를 받았었다나, 원래 회사 규정대로면 소형차를 받는데 중형차를 받은 게 업그레이드 서비스라고 주인아주머니가 정대리를 달랬다. 나는 처음 몰아보는 중형차가 마냥 신이 났었다.


차키를 받아 드는데, 옆집에서 갑자기 서너 명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집 앞에 주차된 차에 올라타 출근하는 중이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은 이 동네가 일종의 하숙집촌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온 출장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집들이 10여 채 정도 있었는데, 손님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려고 온갖 서비스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실제 주인이 아니라, 집을 통째로 렌트해 놓고 하숙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다고 했다. 손님이 없으면 적자를 보는 구조였으니,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맥주를 냉장고에 채워주었던 세심한 배려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새로운 사실들에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본격적으로 첫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목적지는 숙소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잠시 미국 구경에 정신이 팔리긴 했지만, 내가 일할 곳은 국경 너머에 있었다. 샌디에이고와 멕시코의 경계에 위치해 있고, 여러 기업들의 공장이 몰려 있는 국경도시 '티후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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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후아나는 샌디에이고와 거의 맞닿아 있는 ‘국경의 문’이다. 매일 수십만 명이 차와 도보로 국경을 넘나드는 통로 역할을 하며, 미국에 가까운 탓에 여러 산업의 생산 기지로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산업도시이다. 국경 바로 옆이기에 멕시코의 싼 물가를 찾아 미국에서 주말 여행지로 찾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을 위한 여러 관광지도 개발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다만, 이곳의 치안은 극심하게 불안한 편이어서, 밤에는 절대 밖에 돌아다니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었고, 내 숙소가 샌디에이고에 있는 이유는 바로 티후아나의 치안상태에 따른 회사의 조치였다.


미국에서 처음 해 본 운전이 의외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도로 사정이 한국보다 훨씬 넓고 단순해서인지, 생각보다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길을 직접 외워서 가야 했는데, 그게 꽤 큰 부담이었다. 문제는 옆자리에 앉은 정대리가 워낙 친절한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길을 잘못 들면 짜증부터 냈다는 거다. 게다가 그는 방향을 알려줄 때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신 차 유리창을 ‘탁탁’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첫날부터 그 소리가 내 신경을 긁어대며 속으로 불만이 쌓여갔다.


첫 출근지인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 직원들이 수백 명씩 일하고 있었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결국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는데, 그제야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지금까지 출장 경험이 많다고 하던 정대리가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어떻게 다녔을까 싶었는데, 애초에 이곳에서는 영어가 필요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정대리는 제품이 생산되면 '굳'이나 나'오케이'로, 불량품에 대해서는 '낫굳'이나 '말로(Malo - 스페인어로 bad)'라고 하며 거의 두세 마디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는데, 한국인 직원이 많은 탓에 한식과 현지식 두 가지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조리사들이 따로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식의 맛이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멀리 국경을 넘어온 자리에서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그날 점심은 묘한 감동이 남았다.

출장지에서 나의 업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정대리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으니까.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생산 관리팀의 문화가 일종의 도제식이어서, 직접 가르쳐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옆에서 보면서 배워라”라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대리가 기계를 세팅하는 방법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모습을 그저 옆에서 눈으로 따라 배우곤 했다.


첫날 업무가 끝난 시간은 대략 저녁 6시쯤으로 기억한다. 종일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와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을 견뎌야 했던 탓에, 오직 숙소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대리는 옆에서 계속 마음이 급하다며 차를 빨리 몰라고 다그쳤다. 이유를 알고 보니, 미국에서 멕시코로 들어올 때는 국경검문소 직원이 랜덤으로 차량을 선별해 검사할 뿐, 대부분은 별도의 입국 절차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량 행렬이 이어져 있었고, 검문 절차도 훨씬 까다로웠다. 결국 첫날 숙소로 돌아가는 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같은 장소를 오가는데도, 갈 때와 올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샌디에이고와 티후아나는 마치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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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경을 통과하는 건 하루 중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티후아나에서 샌디에이고로 통하는 출입국 사무소는 총 3개가 있었ek. 각 사무소마다 대기시간이 달라 어느 사무소를 통해 입국할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했는데, 라디오 교통방송에서 각 사무소의 대기시간을 정기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내가 방송을 듣고 대기시간을 정리하면, 길을 잘 아는 정대리가 이동경로를 생각해서 사무소를 결정하는 식이었다. 사무소에 줄을 선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닌데, 운이 없게 Secondary check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은 숙소에 몇 시에 들어가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첫 출장에서 딱 한 번 Secondary check에 걸렸는데, 차의 시동을 끄고 대기장소에서 3시간을 가만히 있어야 했다. Secondary check에 걸린 차량의 탑승자는 Officer가 오기 전까지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시동을 켜서 에어컨을 쓸 수도 없었다. Secondary check에 보내지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출장자들은 한국말을 하면 Secondary check으로 보내진다고 생각해서 국경 사무소 Officer가 가까워지면 모두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규칙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걸 모르고 창문이 열린 상태에서 Officer가 가까워지는데 한국어를 한 마디 했다가 Secondary check으로 보내졌다. 정대리의 잔소리가 3시간 내내 이어 진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