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아픔을 나눠지는 사람들
대학교에서 진학하면서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서였을까.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널 위해 기도해 줄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건네는 말이었지만 모두가 진심은 아니었다.
사실은 더 이상 듣기 귀찮아서, 다정한 척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도해 준다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영상제작 수업에서 함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가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선배도 그중 한 명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지만,
그때는 캠코더로 촬영한 뒤, 파일을 옮기고 '프리미어'라는 프로그램으로 편집해야 했다.
팀원 3명 중 가장 나이 많은 선배가 자연스럽게 리더를 맡았다.
브레인스토밍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촬영을 마친 뒤, 각자 분량을 나눠 처음으로 편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음악과 장면은 자꾸 어긋났고,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룸메이트들은 하나둘 떠났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남아 편집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대로 제출할 수도 없고.. 이번에는 F 받고 재수강해야겠다.'
선배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만 남겨둔 채, 나는 도망치듯 기숙사를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비겁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성적표를 열어보니 예상과 달리 영상제작 과목에 'A'가 찍혀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다른 팀원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몇 마디 안부를 나눈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네가 영상 마무리했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친구가 말했다.
"아니. 사실 나 형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고 포기했는데.. 안 그래도 A가 나와서 이상했어."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와 친구가 놓아버린 과제를, 선배 혼자 끝까지 완성해서 제출했다는 것을.
나 같으면 화가 나서 한동안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며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는 자리에서, 선배는 밤새 작업하긴 했지만 A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허허 웃었다. 너희들도 고생 많이 했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선배는 우리를 용서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이후로도 선배는 늘 리더였다.
팀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부분을 묵묵히 메웠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선배 대신 악역을 자처했다.
옆에서 사람들을 재촉하고, 선배가 차마 못하는 말을 대신하면서 때로는 미움을 사기도 했다.
졸업 후, 선배는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갔다.
가정폭력 때문에 집에서 살기 어려운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 아이들이 선배에게 고마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비뚤어지기 일쑤였다.
흡연과 음주는 일상이었고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녔다.
근처 주택가에서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것은 늘 선배의 몫이었다.
언젠가 선배 부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다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배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너무 힘들지 않아?"
"힘들지.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자리 잡고 언젠가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
그게 선배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선배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말로만 기도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고 자기 삶을 통해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앙은 나의 이기심을 넘어 이웃을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삶으로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신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아닐까.
가끔씩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나만 챙기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