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존재한다.

by 보나

시험에서 98점을 맞은 적이 있다.

거저 주는 문제를 틀려 너무나도 아쉬웠다.


시험이 끝난 다음 주, 수업 전에 성적 확인을 했다.

"보나? 손 들어 봐."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만점자가 N명이야. 100점이 많을수록 골치 아파져. 난이도 조절을 못 한 거지. 너처럼 한 두 개 틀려주는 학생이 가장 좋아."


나는 반에서 두 번째로 시험을 잘 본 학생이었다. 만점자가 한 명 있었거든. 그런데 100점 친구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98점인 나를 호명했다. 이 경험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부정적이던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맞아, 98점도 잘한 거야. 아쉬워하지 말자."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100점을 놓쳐 속상한 기억으로 남았을 거다. 그날 이후로 선택에 크게 후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설령 후회를 하더라도 잠깐일 뿐 금방 평소로 돌아왔다.


'후회해 봤자 뭐 어째. 이미 시간은 흘러갔잖아.'




나에겐 눈에 띄는 개복수술 흉터가 있다. 심한 켈로이드 체질이라는 걸, 수술 후에야 알게 되었다.


주변에선 말한다.

"후회되지 않아? 차라리 로봇수술을 하지"

"그러게 건강관리 좀 하지~"


실제로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잃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얻은 것도 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목표가 생겼으며, 행복도 알게 되었다.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존재한다. 바닥을 찍고 나서야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다.


해리포터가 죽음의 마법주문인 아바다 케다브라로부터 살아남으며 생긴 흉터처럼, 내 수술 자국도 건강한 삶을 되찾으며 생긴 증표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다. 왜 감사일기를 사람들이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긍정적인 마음은 삶에 활기를 준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이다. 카이로스는 머리가 앞 쪽에만 있어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다. 따라서 그(기회)가 보일 때 잡아야 한다더라. 앞서 말한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브런치스토리도 소중한 기회 중 하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이 좋았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작가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들은, "글로 먹고살기 힘들어.", "예체능은 재능이야."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던 나는 원하는 과가 아닌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가게 되었다. 유튜브에 웹소설 작가 브이로그가 뜨거나 작가 지망생 영상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쓰자."


시간은 흘러 25년 3월. 문득 서랍장 한켠에 묵혀둔 시나리오 노트들이 떠올랐다. "난 뭘 두려워하는 거지? 허접한 실력을 들키는 것?"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떨어지든 말든, 도전해 보는 거야.


3월 14일 금요일

떨리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했다.


3월 15일 토요일

토요일은 주말이라 검토 결과가 안 나올 것 같지만, 혹시 몰라 이메일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3월 16일 일요일

난생처음으로 주말이 길게 느껴졌다.


3월 17일 월요일

오전 9시 59분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신청이란 기회를 잡은 것처럼, 앞으로도 기회가 보일 때마다 절실한 마음으로 붙잡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자면, 꾸준히 글을 쓰며 부족한 글솜씨를 극복해 나갈 예정이다. 실력이 쌓이면 언젠가 내가 쓴 시나리오도 세상에 나올 날이 오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게 될 거라 믿는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