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환승 연애

by 새벽책장

이십 대 초반, 대학교 새내기였다.

꽃 같은 스무 살을 재수종합반에서 보내고 입학한 대학교는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과제와 조별 모임, 친구의 연애 이야기들.

스무 살은 인생을 알기에 너무 어렸지만 우리는 대단히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던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


한 살 어린 그는 같은 과 동기였지만 나를 한 번도 누나라고 부른 적이 없다.

친해질 만한 접점이라고는 같은 과라는 것 말고 없었던 우리의 관계는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영화를 보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종로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인산인해였고, 영화관은 진즉에 매진이었다.

그는 영화표를 두 장 들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할 일 없으면 나랑 영화 볼래?

라고 말했다.

친하지도 않은 과동기와 영화를 보기는 불편했지만 또 못 할 것도 없지, 라는 생각으로 함께 본 영화가 그들의 첫 연애의 시작이 되었다.

캠퍼스 커플. 요즘에는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땐 그걸 CC라고 불렀다.

어렸을 때는 대학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CC를 해보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가볍게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연애라도 아픔이 있는 법이다.

재미없던 대학 생활이 찬란하게 물들었고, 세상이 다 아름다웠던 시절들이 흘러갔다.


출처 픽사 베이


다시 벚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고, 캠퍼스에는 갓 스무 살이 된 아이들로 파릇파릇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신입생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이유진이었는지 김유진이었는지, 무튼 가끔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그 아이의 시선이 꽤나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스무 살 초반이었고,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우리는 친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싸이월드에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날것의 문장들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핸드폰에 익명의 문자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선배 멋있어요.

-선배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배 좋아해요.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에게 들이대는 여자들의 심리를 지금도 나는 모른다.

스무 살이었던 그녀에게 그런 도덕적 관념이 없었던지, 그냥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지, 저 여자보다는 내가 더 낫다던지, 여하튼 무슨 생각이 있긴 했겠지.


그리고 그 해 여름 우리는 헤어졌다.

환승 연애라는 멋진 말을 갖다 붙이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것은 연애도 무엇도 아니다.


그때는 모두 이십 대 초반이었고, 너무 어렸다.

이십 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실수들이었을까?


자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CC의 특성상, 그 이후 2년여를 꽤 고달프게 보냈다.

우리 과는 졸업과 함께 시험을 보고 직업전선으로 나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시험에 떨어졌다. 안타깝거나 불쌍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고소했고,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 어떤 형태로든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말이다.


지금은 상처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유진인지 김유진인지 그런 이름을 보면 솔직히 그녀가 먼저 떠오른다.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라는 말이 있던가, 그렇다면 나는 더없이 잘 복수했다.

스무 살의 치기를 그녀도, 그도 가끔은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