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는 동안 내 돈 주고 우산을 사 본 경험이 없다. 사실 그렇다는 것조차 인식하고 살지 못했다. 우산은 집에 있는 걸 아무거나 들고나가면 되는 일이었기에. 비만 잘 막아주면 장땡이니까.
이상하게도 우산은 늘 풍족했다. 아마도 그건 돈처럼 돌고 도는 일종의 공공재 같은 개념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남의 우산을 함부로 들고 온다거나 하는 파렴치한은 아니다. 단지 처음 보는 우산들이 우리 집에서 자주 발견될 뿐이었다.
주로 누가 버린 우산들이 우리 집으로 흘러들어오곤 했다. 어릴 때에는 가끔 아빠가 길에서 우산을 주워와 휘어진 우산살을 고쳐 사용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 다음날에는 길가에 고장 난 우산이 꼭 한 두 개는 뒹굴고 있다. 아빠는 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휘어지거나 뻑뻑한 우산들은 아빠의 손을 거치면 멀쩡해지곤 했다.
아니면 누가 끝까지 가져가지 않은 우산들. 학교 교사셨던 아빠는 교실에 뒹구는 우산의 주인을 찾다 찾다 포기하고 집으로 들고 오신다. 그중에 쓸만한 거는 결국 "가질 사람"을 찾아 가위바위보를 시키고 "아싸"하며 득템한 어린이의 차지가 된다. 그렇게 어린이들에게조차 외면당한, 득템을 하고 싶지 않은 초라한 우산들이 주로 우리 집으로 흘러들어오곤 했으니, 어린 시절 나도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화사한 우산을 탐냈을 법도 한데, 또 그런데 무념무상이던 나는 역시 아빠 딸을 인증하며, 우산은 구멍만 안 났으면 됐다.
여전히 우리 교실에도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한 우산들이 매년 등장한다. 우산에는 꼭 이름을 써달라고 알림장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우산을 공공재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관계로 이름 따위는 적히지 못한 우산들.
살이 휘어지거나 천이 찢어진 우산들은 없다. 모두 쓸만한 걸 아이들은 자기 것인 줄도 모르고,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 버리고 만다.
종업식을 하기 일주일 전부터 교실을 굴러다니는 쓸만한 물건들 중에 주인을 잃은 것들을 사진 찍어서 알림장에 올린다. 아이들에게 "이거 누구 거야?" 아무리 물어봐도 동글동글 눈알만 굴려대니 학부모님을 소환할 수밖에. 하지만 알림장에 사진을 올려서 분실물의 주인을 찾아도 도통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현상이 발생한다. 굴러다니는 자잘한 색연필, 연필, 지우개 따위는 모두 공공재의 연필꽂이 통으로 들어가고 그런 것들이 한 해 두 해 쌓이다 보면 내 연필통은 그득그득해진다. 따로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니 이 정도면 자원재활용계의 엄친아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주인 잃은 우산을 잘 가져간다는 소문이 났는지, 작년에는 아들과 함께 동네 분식집에 갔다가 무려 "어몽어스"캐릭터가 그려진 우산을 사장님께서 가져가라고 내주시는 일이 있었다.
"며칠을 놔둬도 아무도 안 찾아가서 버리려고 하는데, 혹시 이거 필요하시면 가져가실래요?"
역시 우산 수집가에게는 우산이 절로 굴러들어 오는 법이다. 그렇게 아들은 집에 몇 개의 구부러진 우산이 있지만 아주 멀쩡한 어몽어스 우산을 받아 들었다.
결혼하고도 마찬가지로 우산이 어디선가 자꾸 나타난다. 아이들의 최초 우산은 시어머니께서 얻어다 주셨는데, 무려 시크릿쥬쥬 우산과 헬로카봇 우산이었다. 어린이들은 그걸 오래 쓰고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는 경찰분들이 학교로 찾아와 나눠주신 노란색 안전 우산을 들고 다닌다.
전교생이 똑같은 우산을 받았지만 길에서 보면 그 우산을 들고 다니는 어린이들은 많지 않다. 다들 형형색색의 예쁜 우산들이 비 오는 날에 거리로 쏟아진다.
그러다보니 욕심 많은 딸아이는 우산을 사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 우산을 사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 딸아이의 "우산 사줘 타령"을 듣다가 큰 마음먹고 인터넷에서 어린이 우산을 구매했다. 투명이면서도 알록달록한 무늬들이 인쇄되어 있어서 아이는 그걸 들고 좋아했는데, 우산을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는지라 어린이 우산에도 사이즈가 다양한 줄은 미처 몰랐다.
좀, 많이 작았다. 그리고 아이는 그걸 쓰고 나간 날 가방까지 흠뻑 젖어 수학익힘책이 쭈글쭈글해지고 말았다.
다시 쿠팡에 들어가 내 인생의 두 번째 우산구입을 했다.
나를 위해서는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는 걸, 엄마가 되니 해주게 된다.
계절은 그렇게 돌고 도니까. 그리고 또 비는 오니까.
돌고돌아 버림받은 우산들이 나에게 온다.
하나의 우산을 나눠 쓰던 지나간 연애가 떠오른다. 우산을 각자 쓰고 왔지만 굳이 하나는 접어두고 함께 나눠 쓰던 그런 쓸데없는 행동들이, 유독 떠오른다.
"너의 우산이 되어줄게" 따위의 로맨틱한 말들도 비 오는 날의 습기처럼 공중으로 부양한다.
우산을 나눠 쓰던 그 남자애는 지금쯤 누구와 우산을 나눠 쓰고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또 떠오르는 걸 보니 장마철이 맞구나. 비만 오면 과거가 회상되는 건 나이가 들어서겠지만 그런 하찮은 추억들이 있어서 내가 되고 있다.
이제는 자기의 한쪽 어깨가 흠뻑 젖어도 나를 위해 우산을 기울여주던 그런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아이의 머리 위에 비가 쏟아질까 봐 웅덩이위에서 첨벙첨벙거리는 아이를 위해 내 머리가 다 젖는 건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버려진 우산조차 지나치지 못하고 우산살을 반듯하게 펴주던 손에 주름살이 가득하고, 내 머리에는 비가 쏟아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