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말이라는 게 그렇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의 목소리, 억양, 바람, 습도, 온도(읭?)가 섞여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들이, 장막을 걷어내고 '말'만 남고 나면 계속 기억에 남거나 가슴을 쿡쿡 쑤신다.
그녀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교사라도 별 수 없네요. 하하하하. 내가 정신과를 갈 필요가 없어. 00이 엄마하고 얘기하고 나면 치유가 된다니까."
상담심리 대학원을 두 학기만에 때려치웠는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치유를 주다니 학위는 못 받았지만 성공한 건가.
내가 봐도 우리 둘째 아들은 천방지축 개구쟁이다. 하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직 8살인 우리 아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은 상태다. 머리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운동도 잘하고, 책도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소리는 지를지언정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아이는 아니다. (소리 지르는 건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모든 엄마가 원하는 엄친아 스타일은 아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이고 얌전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엄친아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말이다.
게다가 남들이 봤을 때 어쩌면 내 아이는 굉장한 문제아로 보일지도 모른다. 좋게 말해 골목대장 스타일인데, 다른 엄마들이 봤을 때는 많이 나대고, 꼴베기 싫은 스타일일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나는 교실에서 많은 유형의 아이들을 만난다. 또 많은 유형의 교사들도 만나왔기 때문에 선생님과 아이들의 궁합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느 해에는 우리 아이가 문제아로 낙인찍혀 괴로울 수도 있고, 어느 해에는 귀여운 개구쟁이로 선생님과 티키타카를 하며 지낼 수도 있다.
그런 사람과도, 저런 사람과도 지내보는 것은 아이의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일이고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모두에게 마음에 들 수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그렇게 나는 교사니까 모든 아이들의 모습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인정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인지 놀이터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도 그다지 눈에 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00이 엄마 저 배고파요. 아이스크림 사주세요."라고 스스럼없이 매달리는 아이도 예쁘고, "아줌마가 간식 사줄게. 같이 가자."라는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거절하는 아이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거기에서 쟤는 왜 저렇고, 쟤는 왜 저런데?라는 평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마다 나는 내 아이를 단속해야 하나, 싶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단원평가 40점 맞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에게 집에서였다면 그래? 어려웠나 보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내년에는 더 잘 볼 거야,라고 자연스럽게 말했을 텐데, 놀이터에서는 다른 엄마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만다. 마치 내가 40점짜리 엄마가 된 것처럼.
모래 위에서 기어 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멍하게 앉아 있는 나의 귓가에, "어머어머 저렇게 기어 다니면 저 빨래 어떻게 해요?"하고 나 대신 우리 아이의 옷 걱정을 해주는 소리를 듣게 되면, 일어나라고 해야 하는 건지 더 기어 다니라고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니까. 전혀 상관이 없는 나의 마음과는 다르다. 빵꾸 나면 버리면 되고, 그래서 7000원짜리 바지를 사 입히는 거지.)
"00 이는 혼자서 책가방 정리해요?"
"아니요. 제가 정리해줘야 해요."
"그래요? 맨날 잔소리하게 돼서 힘들었는데, 선생님이라도 자기 자식은 안되나 봐요?"
"그것도 성향인 것 같더라고요. 잔소리해서 되는 애가 있고 안 되는 애가 있고. 하하하."
"그래도 선생님들은 혼자 알아서 하도록 해주라고 하잖아요."
"교실에서는 스스로 하라고 지도하죠. 일일이 해줄 수없으니까요. 그런데 교실에서는 잘하는 애들도 집에서는 안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애만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대체로 집에서는 엄마눈에 안 차는 애들도 학교에서는 잘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특별한 경우 말고는 걱정 안 해도 애들은 잘 크더라고요."
"어휴. 진짜 애 키우기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대화들은 의미도 없고 교훈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기분만 나빠지고 만다. 그렇다. 내 아이는 공부도 못하고 정리도 못하고 선생님께 지적만 받고 돌아온다. 그래서 나와 내 아이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위안을 얻나 보다.
"저 집 애보다는 우리 애가 낫다." 뭐 그런 마음.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학원 가느라고 충분히 놀지도 못했는데 시간 되었으니 가야 한다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 같이 놀다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삐쳐서 집으로 가버리는 모습,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우리 아이가 낫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교사라도 별 수 없다. 엄마의 교육관에 따라 아이의 서로 다른 모습에 격려를 받게 되니 말이다.
모래 위에서 열심히 기어 다니는 아이를 보면 나는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는 기겁을 하고 아이를 들어 밖으로 꺼내 놓을 것이다.
교사라고 아이를 완벽한 모범생으로 키울 수 있을까? 그저 아이는 생긴 대로 크는 것이 아닐까, 키우면 키울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