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 Dec 02. 2023

빨간 차 그녀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화분 하나를 소중하게 안고 타셨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화분을 내려다보시며 이파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계시는 손길이 시어머님을 떠올리게 했다. 패딩을 두껍게 입으시고 목에는 머플러와 손에는 장갑까지 장착하신 모습이 추운 날 난방비를 아끼신다고 보일러도 틀지 않고 집에서 패딩을 입고 지내시는 시어머님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이 추운 날 화분을 안고 어딜 가시는 걸까.


엘리베이터 버튼은 지하 1층을 누른 상태였다. 우리 아파트는 지하 1층이 주차장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1층을 눌러야 하는데, 그분은 1층을 누르지 않으셨다. 화분에 너무 심취하셔서 버튼 누르시는 걸 잊으셨나 싶어서 1층 가시냐고 여쭤보고 싶었지만 오지랖을 잘 펼치지 못하는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1층을 지나쳐 지하로 내려갔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지하 1층에서 화분을 다시 한번 그러안으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셨다. 그녀가 내리고 나서 이곳이 1층이 아니란 걸 깨닫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미리 말씀드릴걸, 괜히 죄송하네, 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주차장으로 나가셨다.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왜 60대 여성은 운전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녀는 곧장 빨간색 승용차의 운전석 문을 여셨고 나는 그걸 곁눈질로 훔쳐보면서 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여전히 자꾸만 그분이 어머님같이 느껴졌다. 시어머님은 내가 결혼한 초기에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남편은 말렸고 나는 속으로 '따시면 되지 뭐가 문제일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어머님은 십 년 동안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않으셨고 시간은 흘러 어머님도 60대 중반이 되셨다. 50대에 면허를 따셨다면 조금은 편하게 여기저기 다니실 수 있으셨을 텐데, 후회는 늘 후회로 남고 만다.

나도 면허를 늦게 딴 편이다. 32살이 시작되는 겨울에 학원에 등록했으니 진짜 늦깎이였다. 첫 학교를 동네로 출근하느라 운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학교를 이동하게 되면서 운전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해 겨울, 면허를 취득했고, 나는 먼 거리의 학교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운전은 하지 않았다. 면허를 따는 것과 실제로 도로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극강의 괴리감이 있는 일이다. 내가 운전을 하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주었고,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운전을 만류했다. 아마 그 나이에 무슨 운전이냐,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걱정도 되고 말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 상황 판단 능력도 느려지고(약해지는 건 아니다 느려질 뿐이다.) 운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들 한다. 실제로 노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이 든 여성분이 그것도 추위에 대비해서 옷을 단단히 껴입으시고 장갑까지 끼신 채로 화분을 들고나가시니 어디 옆 동에 사시는 친구분한테 가시는 걸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니, 나는 겨우 거기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싸인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나보다 먼저 주차장을 나가고 있는 빨간 차를 보면서 '어머, 나도 나이 들면 빨간색 차를 타고 다닐까?'라는 생각까지 잠시 했다면 이미 내가 그녀에게 반해버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밖으로 나와 신호대기 중인 그녀의 차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신호가 빨리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고개를 왼쪽으로 틀어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그녀의 차를 쳐다봤다고 해야 맞겠지만 말이다.

안전 운전을 기원하며, 앞으로 주차장에서 그녀의 빨간 차를 찾고 있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씁쓸하고 한편으로 즐거운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어른의 시기를 지나면서 오히려 할 수 없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일도 더불어 많았던 건 아닐까, 자문해 본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하는 일은 내 생에 못하겠다,

나이 들어서 이렇게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다녀도 괜찮은 걸까,

아이돌 댄스 한 도 마스터를 못하고 이대로 죽는 건가,

이 나이에 무슨 등단이야.


왜, 나라고, 내가 마흔이 넘었다고 못할게 뭐람. 그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책바가지라고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고, 시어머니의 눈살을 찌푸리게는 하겠지만.

왜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일은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늘어만 가는 걸까.

김미경 강사님의 "자식들 서울대 가라고 뒷바라지하지 마. 네가 가는 게 더 빨라. 왜 네가 안 가고 애들 보고 가라고 그래?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네가 가"라는 말씀처럼 못 할 게 없는 게 인생 아닌가. 단지 마음을 먹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 내 인생 내가 간다. 머리는 분홍색으로 염색하고 빨간 차를 타고 달리는 오십 대의 나를 상상하다가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마음 한 켠에 떠오르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멀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인스타에서 연락처를 동기화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