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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온다니 펜잘이 필요해

by 새벽책장

그 애는 나보다 키가 큰 6학년 여학생이다. 나도 여자치고 작은 편은 아닌데, 전교학생 중에 제일 크고, 몸무게는 더불어 많이 나간다. 하지만 밝고 명랑하고 소리도 잘 지른다. 그래서 내 고막이 남아나질 않지만 그건 그 애 뿐만이 아니고 다른 아이들의 탓도 있으므로 이쯤 해둔다.

그 애는 상처받았다. 돼지라고 놀림받고 심지어는 돼지라서 냄새가 난다는 말도 들었다. 어린이들 입에서 어떻게 그런 표현들이 쏟아지는지.

어린이는 아름답고 숭고하며 착하고 천사같고.... 개뿔이다.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한 후 성악설을 강력하게 믿게 되었다. 사실 성선설이 맞다면 우리 사회에 교육따윈 필요없겠지. 악하게 태어난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이고 교육이 할 일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부모라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친구한테 돼지라서 돼지 냄새가 난다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의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얼마전 인성도 지능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뇌에서 명령하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성이니까 맞는 말 같다. 그리고 환경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엄마 아빠들은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 아이를 두고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 선생 자격이 어쩌고 저쩌고. 모르겠고, 정교사1급 자격증은 있다.

부모도 자격증을 따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 몇급쯤 될까. 나 역시 1급은 안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부모로써 나는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싫다는데 이르고, 싫다는데 잡아끌고, 싫다는데 귀 옆에서 소리지르고, 싫다는 데 끌어안고. 어린이니까 용서가 되지만 또 어린이니까 훈육을 해야한다. 그러고나면 우리 애를 혼냈다고 나를 훈육하러 학부모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식은 자기가 잘 키우면 좋겠다. 나도 훈육하는 거 힘들다. 일년 내내 친구 몸에 터치하지 말라고 해도, 일년 내내 뛰지 말래도 뛰어다니고 친구를 치고 도망가고 나 잡아봐라를 시전한다.

나는 어린이때도 그런적이 없어서인지 도통 이해가 안간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게 인간들이니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냥 똑같은 도돌이표 잔소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상처받은 그 애의 엄마가 온다고 한다. 아침부터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럴 때 나의 지갑 속에 늘 상비하는 타이레놀, 펜잘, 게보린 중 하나를 선택한다. 오늘은 펜잘로 하자. 타이레놀은 2알을 먹어야 할 거 같으니까.

상처받은 아이의 엄마는 생각보다 교양있게 이야기하신다. 아 괜히 쫄았다. 교양있는 두 사람이 만나 교양있게 이야기하고 지켜보다가 학폭을 걸기로 교양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깔끔한 게 학폭이니까.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다면 해야지 어쩌겠는가. 그러려면 학교 판사가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 둘째가 떠오른다.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온 몸이 멍투성이라 어디가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걸로 오해를 받을 것 같은 그 아이. 담임 선생님이 무척 쌀쌀 맞으시다.

역시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가 못마땅하고, 교사 입장에서는 학부모가 못마땅하다. 우린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아이들을 사이에 둔 시부모와 며느리처럼 기싸움을 하는 걸까. 아니면 간보기를 하는 걸까.

학부모가 화가 나서 씩씩대며 교실 문을 발로 차는 상상을 하던 나는 교양있는 그 애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체기가 사라졌다. 두통도 사라졌고. 이건 펜잘의 위용인가 상담 끝의 쾌락인가.

그래도 친구에게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일년동안 나쁜 말 쓰지 말라고 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건 교사로써 꽤나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나로인해 아이들의 행실이 변화할 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한다. 나는 걔네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내 자식을 잘 키워야 한다. 또 둘째가 생각난다. 역시 오늘의 교훈도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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