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바스러질 것처럼 말라버린 잎사귀들이 낙엽비로 내리는 이 며칠의 기온을 좋아한다. 너무 짧아서 아쉽다. 아니, 짧아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꽃비는 꽃이라서 예쁘게도 부르는데 낙엽비는 볼품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워버려야 하는 귀찮은 것들인데, 쌓인 낙엽을 밟으며 노는 어린이들은 마냥 즐겁다.
낙엽이 한창 떨어질 즈음, 학교에서는 낙엽 주워오기 준비물이 알림장에 올라온다. 그걸 가져다가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보곤 하는데, 도화지 위에서 멋지게 탄생한 낙엽 작품은 대충 말리다 보면 다 쪼글쪼글 바스러져서 교실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이걸 집에 가져가는 날에는 엄마들의 분노가 함께 흩날리기 마련이다.
지난주 하교하는 어린이들의 손에 뭔가가 들려있다.
그날은 예쁜 테이블 야자를 모두들 한 손에 들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직접 만든 토피어리에 테이블 야자를 심어서 가지고 나오는 아이들은 그걸 자랑하느라 바쁘다.
"어휴, 저런 거 주는 거 딱 싫은데."
내 옆에 있던 엄마가 혼잣말을 한다.
지난봄, 교실에서 키운 무순을 들고 하교한 아이들 틈에 그걸 반기는 엄마가 한 명도 없었던 게 떠올랐다.
"이런 걸 왜 들려 보내는 거야?"
"이거 먹는 거예요?"
"몰래 버려야겠네."
자기 무순이 제일 싱싱하게 잘 자랐다고 자랑하는 아들과 나는 그 주말, 라면에 무순을 넣어 먹었다. 아, 물론 아이는 라면 면발만 건져먹었지만 뭐, 국물에 우러난 걸 어쨌든 먹긴 먹었다.
교실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교육활동이다. 결과가 볼품없더라도 과정이 있었으니 그걸로 교육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덧셈 문제를 자동으로 나올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학습지나 학원의 시스템과는 다르게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그렇게 계산되는 과정이다. 13+6=19가 1초 만에 입에서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서 푸는 과정이 중요한 법이다. 그걸 해냈든 해내지 못했든.
과정이 쌓이다 보면 성장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쌓이고 꽃을 피우다가 또 겨울이 되면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다. 그런 낙엽은 쌓여서 거름이 된다.
하지만 낙엽을 거름으로 만드는 존재는 바로 박테리아 같은 균들이 있어서다. 그게 우리 인생을 갉아먹는 게 아니고 오히려 거름으로 만들어 준다. 모든 것은 필요하다.
아이들의, 아니 우리들의 인생에 겨울도 필요하고, 균도 필요하고, 찬바람도 필요하다. 그래야 또 꽃이 핀다.
퇴근하고 7시가 넘은 어느 날 저녁, 하민이 어머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선생님, 하민이가 그러는데 선생님이 하민이 색종이 작품을 쓰레기라고 하셨다던데 정말인가요? 지금 하민이 그거 때문에 속상한지 우네요."
나는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창체시간에 종이 접기로 수업을 해주시는 전담선생님이 계셔서 나는 그분을 말씀하시는 건 줄 알았다.
"아니요 선생님 담임선생님이 그러셨대요."
"네?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순간, 그날 5교시가 시작될 때쯤, 창가에 앉은 하민이에게 창가 위에 올려놓은 것들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창틀은 개인 공간이 아니니까 자기 물건을 올리면 안 되기도 하고 거기 놓았다가 까먹고 가는 경우도 있어서 늘 그곳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그날 하민이 옆에 종이 뭉치가 있길래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게 종이접기 작품인 줄 안 보였던 나는 그저 종이 뭉탱이인줄만 알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건 버려야 할 물건이고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날 나는 등교한 하민이에게 사과를 했다. 네 작품을 쓰레기라고 한 게 아니고 선생님이 눈이 나빠서 그냥 종이뭉치인 줄 알고 치워달라고 한 것뿐이니 오해를 풀라고.
하민이는 다음 쉬는 시간에 나에게 종이로 접은 팽이 하나를 선물했다. 알록달록 3단 팽이가 돌아가면 원래의 색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을 만큼 부드러운 색감으로 빙글빙글 돌아간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과, 모든 말과, 모든 웃음에는 다 그렇게 버릴게 없다.
쓰레기는 없다.
오늘도 하교한 아이들의 가방 속에는 아이들의 하루가 담겨있다. 잘린 지우개, 선생님께 받아서 먹고 버린 마이쭈 껍질, 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 뭘 먹었는지 알겠는 숟가락까지.
쓰레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