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수업 기록
장애인복지관에서 생애사쓰기 강사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 오래전 <뜻밖의여정>이라는 책 작업을 같이 했던 복지관이다. 대상을 물으니 성인발달장애인들이라 했다. 일단 담당자를 만나보기로 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적임자를 찾지 못한다면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겠지만, 깜냥에 안되는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꼴이 될까 두려웠다.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수년간 발달장애아들과 한 달에 두어 번 만나고 기록한 바는 있으나 내가 발달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담당자에게 물었다. 복지사는 자기가 기준으로 한 것은 생애사쓰기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을 찾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가진 발달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식에 대한 의심은 아주 낮은 주파수 같았다. 어떤 친구들이 수업에 오게 되느냐 물었다. 성인발달장애 중에서 쓰기와 읽기가 가능한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복지사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발달장애인들의 그림을 본 적은 있다. 독특하고 묘한 느낌인데 선이 분명하고 색채가 화사했다.
<동화로 쓰는 생애사>수업에 참여하기로 한 친구들은 20대 이상 성인발달장애인 9명이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참가자도 있지만 쓰기와 읽기가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첫 만남에서 참가자들은 큰소리로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먼저 앉은 은혜 씨가 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친구들이 다 오면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교실에 들어서서 참가자들의 명단을 받았다. 자폐1급, 지적장애 1급, 2급 등 다양했는데 이들의 양상이 모두 다른 것 같았다. 일단 나는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수행능력이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건 장애여부를 떠나 모든 수업이 똑같다. 모둠활동을 해야 하는 수업인 경우 상호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 되는지, 교실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수업의 경우 반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인데 평소 담임이 어떤 성향을 보이는지도 큰 영향력이 있다. 참가자들의 언어표현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각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모두 성인이기 때문에 누구 씨, 라고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기로 했다. 내 소개를 하자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쉬운 단어를 쓰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며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참가자 중의 몇 명이 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하길래 나는 자기소개를 할 참가자 옆에 가서 서서 인사를 듣고 메모를 한 다음 소개를 끝내고 앉는 참가자와 한 명씩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 참가자들도 반갑습니다. 라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수첩을 꺼내놓고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이름을 적으며 참가자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 썼다. 오래 전엔 어떤 모임에 가도 순식간에 사람 이름을 외우곤 했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게 전혀 안된다. 이번에는 빨리 이름을 외워야 했다.
한 사람은 자기가 1996년생이라는 걸 강조했으며 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꼭 끼워서 이야기했다. 9명의 발달장애인, 이라고 뭉뚱그리기에 모자란, 모두가 뚜렷한 개성과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우리가 “장애”라고 규정지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평범, 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잣대인지 모르겠으나 비장애인들의 통상적인 의사소통, 주고받는 것들이 약간 상이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비장애인이라고 모두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다. 안녕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비장애인인 경우 안녕치 못하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복지관에서 전해준 참가자 자료엔 자폐성 1급과 2급, 지적 1급과 2급, 3급으로 장애등급이 적혀 있었다. 한 명 한명 자기소개를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석 씨는 에, 와 응, 의 중간발음으로 대답만 하는 경우가 많다더니 발표는 하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내가 물어본 질문에 정확하게 잘 대답했다. 자기 이름은 무엇이고, 아빠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아나운서를 좋아한다거나,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거나, 커피 만들 때를 좋아한다는 등 다양한 자기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만 보니 몇 명은 나이가 비슷해 서로 진한 친구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여성 발달장애인의 경우 언니 동생 하는 사이도 있었다.
45분 정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쓰기 능력을 봐야 하는데 이 주제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찰나, 관장님이 들어와 첫 수업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했다. 예전에 뜻밖의 여정 프로젝트 때는 이 기관에서 국장님으로 일하던 분이다. 서글서글하니 잘 생긴 편이고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인데 관장님이 들어오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흥분을 금치 못했다. 수연 씨 같은 경우 볼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고 얼굴이 붉어졌다. 모두들 관장님을 엄청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참가자들에게 관장님은 어떤 사람인지 뭐가 좋은지 이야기 해달라고 했더니 다들 아빠 같고, 친절하다, 는 대답이 나왔다. 수연 씨는 “배려가 깊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수연 씨는 이어서 “배려가 깊은 남자는 여자에게도 잘 해요.”라는 말도 했다. 고급단어가 나온 것에 의의를 두고 수업을 이어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관장님이 들어와서 관장님 이야기를 나눠봤으니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자. 고 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내가 “이제 무엇무엇을 해볼까요?”라고 물으면 “네 좋아요!”라고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복지사선생님들이 나눠준 흰 종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잠깐 시간을 둔 다음 종이를 뒤집어서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을 적어보자고 했다. 몇몇 참가자는 연필을 꾹꾹 눌러쓰며 글을 적어갔다. 글쓰기가 어려운 참가자는 봉사자들이 옆에 앉아서 대신 받아써 줬다. 참가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양하게 적었다. 관장님에 대해 쓴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남성 참가자는 상당히 긴 문장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적었다. 중학교 때 전학하게 돼서 복지관을 못 온 적이 있었는데 다시 복지관에 나오게 되어 관장님을 봤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수연 씨는 관장님이 아빠같아서 정말 좋다고 하길래, 나는 그럼 수연 씨 아버지도 정말 좋은 사람이겠네요. 라고 물었다. 수연 씨는 그렇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수연 씨는 좋은 아빠가 있어서 참 행복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렇다면서 웃었다.
글씨를 잘 읽지 못하는 채림 씨는 말하는 대로 봉사자가 받아 적었고 그 종이를 들고 일어나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상민 씨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수영 씨에 대해 적으며 나에게 설명을 했다. 무용단 활동을 할 때 같이 장난을 친 게 좋았다고 해서 장난을 주고받는 게 잘 되는 친구냐고 물었더니 장난도 주고받고, 라는 표현을 바로 받아서 적었다. 주현 씨는 계속 손을 흔들면서 혼잣말을 끊임없이 했다. 담당자에게 주현 씨는 모든 이야기의 끝이 아나운서 이야기라는 정보를 받았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겁먹지 않고 외국인과도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주현 씨는 들은 대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최선규 아나운서고 김정근, 오상진 아나운서와 자기까지 네 명이 같이 에버랜드를 가는 게 자기 꿈이라고 말했다. 자폐1급이지만 지능이 상당히 높아보인다고 담당복지사에게 물었더니 담당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보였다. 모든 이야기의 끝이 아나운서라는 점도 “말”에 대한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기와 글쓰기 수업을 마치면 미술선생님이 그림 수업을 바로 이어서 진행한다. 그림 선생님은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아이들과 성인발달장애 직업훈련 수업도 진행한 적이 있다. 친절하고 정중한 말투로 수업을 진행했다. 참가자들 모두 그림을 꽤 잘 그렸다. 색칠도 잘 해서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이 참가자들의 그림을 한 장씩 들고 구체적으로 칭찬을 했다. 다들 환히 웃으며 즐거워했다.
첫 시간이라 들뜬 마음이 없지 않았으리라. 긴장했던 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담당복지사에게 이 참가자들도 날씨 영향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전체적으로 흐트러진다. 노인들은 우울감까지 증폭된다. 담당자가 전해준 참가자 명단엔 스트레스 받을 때 하는 정동행동도 적혀 있다. 수업을 하면서 나 스스로 기억하게 되겠지만 미리 미리 숙지하는 게 좋겠다. 담당자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돌발행동을 하는 참가자에 대해서 물었더니 담당자가 몇 명의 성향과 감정기복에 대해 설명했고 그럴 때는 각자 이런 대처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나는 “비장애인들은 자기감정에 대한 대처법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 사고를 치기 쉬운데, 자기감정 대처법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첫 시간이라 미술 선생님과 담당복지사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첫 회의 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이 수업을 저에게 맡기신 이유가, 여전히 궁금한데요. 저보다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있으실 텐데, 못 찾으신 건가요?”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는 말씀드렸듯이 생애사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선생님이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다른데서 강의도 많이 하시는 분이 우리 친구들하고도 같이 수업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특수교육을 전공한 글쓰기 전문 선생님은 없고요. 예체능쪽은 대부분 치료로 접근하세요. 저는 치료도 필요하지만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담당자가 말을 아끼려 애쓴다는 게 느껴졌다.
치료도 필요하지만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자꾸 교정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비장애인들이 받는 교육을 장애인들도 동등하게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읽혔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런 수업을 장기간 진행하면 강사료를 떠나 내가 공부하는 게 무척 많다. 그건 강사료로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회가 쉽게 오지도 않는 일이다. 나는 숨김없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고 담당자에게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며, 올 한 해, 이 수업을 통해 나도 크게 자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그리 생각해주시니 마음이 놓인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항상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파고들다 보면 그 질문이 왜 생겨났는지 맥락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태 해왔던 수많은 수업을 기록하겠다면서 한 번도 제대로 기록한 적 없다. 수업은 화요일에 있었고 지금은 목요일 밤인데, 이틀 동안 다른 일이 밀려 이 파일을 펴놓고 띄엄띄엄 적었다. 일단 적기로 한다. 생각은 묵히면서 다시 해보기로 한다.
아홉 명의 참가자들을 나도 이제 “학우”라 불러볼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글을 공개하면 발달장애가 낯선 사람들이 세계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삶에게 응원을 보내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일을 시작한다. 10월 말까지 우리 모두 무탈하길.
2018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