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간의 임정로드_Chap.19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영국·미합중국 등 반침략 제국주의 국가들과 보조를 같이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선전(宣戰)을 선언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인류의 자유와 정의를 유린하였으며,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30여 년 간 잔혹무도한 식민 통치를 감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영구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 1941. 12. 10.>
기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철로를 긁는 소리가 길어지고 차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도시, 충칭(重庆·중경)이었다. 브레이크가 마찰하며 내는 금속성 소음, 승강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의 기척, 문이 열리기 직전의 묘한 정적이 한꺼번에 겹쳤다. 어서 내려 플랫폼으로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과, 이 순간을 조금만 더 붙잡고 싶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몸은 이미 도착했는데 마음은 아직 도중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스무날 동안 열한 개의 도시를 지나왔다. 상하이에서 시작해 자싱, 항저우,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 치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충칭까지. 지명 하나하나 그리고 곳곳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알고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이고, 이 여정의 끝이 다가왔다는 것을. 하지만 이곳에 도착했던 임정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이번이 마지막 이동일지, 이 도시가 마지막 정착지가 될지, 혹은 내일 또다시 짐을 싸야 할지를. 끝이라는 걸 모른 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안도였을까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또 하나의 경유지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무감각이었을까.
충칭은 첫눈에 압도적인 도시였다. 3000만의 인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도시는 숫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 사람은 표현할 수 없이 많았고, 도시는 높은 건물들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고저차가 극심해 어떤 건물은 앞에서 보면 1층인데, 뒤로 돌아가면 7층이었다. 지도상으로는 불과 1km 남짓한 거리인데, 걸어서 가려면 30분이 훌쩍 넘게 걸리기도 했다. 계단과 육교, 고가도로와 터널이 도시의 일상적인 구조물이었다. 사이버 펑크의 도시라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밀집된 느낌, 평면이 아닌 입체로 확장된 공간 속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임정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을 낯섦과 긴장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기념관이었다. 도심 한복판 번잡한 도로와 상업시설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4층 높이의 건물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외관은 웅장하면서도 단정했다. 임시정부 군의 심장부라고 하면 어딘가 임시적이고 초라했을 것이라 막연히 상상해 왔던 예상을 단번에 뒤집는 모습이었다. 이곳이 정말 망명정부의 군 사령부였을까 싶을 만큼 공간은 정제돼 있었고 자신감이 느껴졌다.
내부 전시는 국민당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총사령부가 설치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주요 인사들이 사용했을 집무실과 회의실이 재현돼 있었고, 가구와 집기 하나하나가 비교적 깔끔하게 보존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았던 것은 조직기구표였다. 임시정부의 군대라고 하면 무기와 인원이 부족한, 어딘가 느슨한 결사체를 떠올리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직도는 전혀 달랐다. 병과별로 세밀하게 나뉜 편제, 각급 직할대의 구성, 참모 조직과 행정 체계까지 빈틈없이 짜여 있었다.
정치부 기자로 오래 일하면서, 정부나 정당의 조직도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 주는지 체감해 왔다. 조직은 의지와 계획과 선포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디까지를 어떻게 감당하려 했는지가 조직의 형태로 드러난다. 광복군의 조직도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임정이 충칭에 자리 잡을 1940년대 당시 흩어져 있던 무장 투쟁 세력들은 이곳 충칭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만주를 비롯한 중국 각지에서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던 독립군과 청년들이 광복군이라는 이름 아래 재편됐다. 총사령부는 단지 건물이 아니라 분산돼 있던 저항의 의지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세운 마지막 매듭이었다.
총사령부를 떠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화지 청사로 향했다.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정말 마지막 청사였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숙소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옷도 비교적 단정한 것으로 골라 입었다. 마치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충칭의 여름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옷은 금세 땀으로 젖었고, 마음은 급한데 중간중간 그늘에 서서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겨야 했다.
높은 빌딩숲 사이를 걷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일순간 시야가 낮아지며 작은 회색 건물이 나타났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묘하게 단단해 보였다. 결코 화려하지도 위압적이지도 않았지만 견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입구 위에는 큼직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애써 표정을 정리한 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키던 관리 직원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 걸 보고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청사는 계단을 중심으로 양옆 여러 동의 작은 건물들이 배치된 구조였다. 각 건물마다 유물과 함께 요인들이 사용했던 집기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이전 도시들에서 봐왔던 임정 청사들의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복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회의를 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하루를 버텨냈다.
마침내 백범 김구를 비롯한 요인들이 해방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던 계단 앞에 섰다. 사진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그 자리. 직접 그곳에 서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왔다. 막힌 숨이 목젖을 눌렀다. 긴 들숨과 뜨거운 날숨이 간신히 그리고 천천히 교차했다. 그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오면서 애써 눌러왔는지도 모를 감정을,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잡아두기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 임정은 조직을 정비하고 광복군을 훈련시키며 반격을 준비했다. 연합군과의 공동 작전부터 국내 진공 작전까지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은 그들의 계획과는 다른 속도로 끝나버렸다. 일본의 패전과 항복 소식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35년을 기다려온 순간이었지만, 기쁨만으로 채워지기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이뤄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해방 이후의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또다시 시작될 싸움에 대한 예감까지.
그럼에도 이들이 끝까지 버티며 정부의 형태를 지켜냈기에, 광복의 순간 우리는 정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비록 강대국들의 탐욕과 이해관계 속에 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지만, 또 다른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최소한의 조건은 그들이 만들었다. 충칭은 임정의 마지막 도시였지만, 동시에 다음 시대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들의 그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청사를 나섰다. 끝을 알았다면 조금은 다른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몰랐기에 끝까지 올 수 있었을까. 충칭의 계단을 내려오며, 그 질문의 생명력이 무척이나 길 것임을 직감했다. 마지막일 줄 모른 채 맞았던 그 마지막 순간이, 오늘의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