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간의 임정로드_Chap.20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일본의 밀정 또한 상당수였다. 이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활동을 정탐하여 일본경찰에 보고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특히 임시정부의 혁명 활동을 주관하고 있던 김구는 밀정들의 가장 중요한 감시 대상이었다.
<한국의 광복을 위한 중국정부의 지원에 대한 회상, 샤오정(蕭錚), 1934년>
충칭에 도착한 뒤에도 도시를 곧장 떠날 수는 없었다. 전날 연화지 청사를 다녀온 후 발걸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못했다. 마지막 도시라는 감각은 여운처럼 남아 있었고, 그 여운은 여유 대신 무거운 생각들로 이어졌다.
충칭은 전시 수도였고 수많은 망명자와 정보기관, 외교 인력이 뒤섞인 도시였다. 사람은 많았고 말은 빠르게 퍼졌으며, 국적과 소속이 불분명한 존재들이 거리를 누볐다. 이 도시는 수많은 것들을 견뎌냈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갔다. 그럼에도 기록으로 남은 것보다 남지 않은 것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상하이를 비롯해 임시정부가 거쳐 간 도시들은 대개 그러했다.
그 과정에서 돌이켜보면 이따금씩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좀처럼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의문들도 뒤따른다. 일본군은 무슨 수로 임정의 이동을 정확하고 집요하게 추적했는지, 비밀리에 준비한 계획들은 왜 번번이 새어 나갔는지, 어떻게 요인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체포가 이뤄졌는지 같은. 100년 전의 일이고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설명이 매끄럽지 않은 순간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반복되는 이 의문들은 어느 순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단어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밀정.
기록에서는 배신자로, 교과서에서는 몇 줄의 단정한 문장으로, 영화에서는 얼굴이 분명한 악역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 직접 방문했던 그 많은 공간들에서 실체의 흔적 같은 건 쉽게 붙잡히지 않았다. 이 도시에도, 이 거리에도, 이 계단에도 분명 그들이 있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발각된 뒤의 이름, 처단된 뒤의 기록, 혹은 끝내 드러나지 않은 채 사라진 흔적. 그러나 그들이 밀정이 되던 순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언제, 어떤 이유로,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돌아섰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만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과 헌병, 일본군 정보기관이 운용한 조선인 밀정은 수천 명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공식 명부가 남아 있지 않고, 상당수는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해방을 맞았다. 기록에 남은 몇몇 이름들은 처단됐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름들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 보고서, 재판 기록, 독립운동가들의 회고 속에 흩어진 이름들을 모아보면 밀정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조의 일부였다. 독립운동이 치열해질수록 그것을 감시하고 관리하려는 식민 권력의 구조가 정교하고 공고해지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일제는 밀정을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독립운동 진영 내부를 흔드는 장치로 활용했다. 어떤 이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거나 거짓된 정보를 흘려 작전의 방향을 틀게 만들었고, 어떤 이는 서로 다른 계열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의도적인 불신을 심었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배신자를 만들어 의심이 의심을 낳게 했고, 내부의 다툼이 스스로를 소모하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밀정은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거짓 정보 하나, 왜곡된 보고 하나가 조직 전체를 불안 속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독립운동 세력이 스스로 분열하고 무너지는 것을 원했고, 이를 위한 공작의 최전선에 한인 밀정을 배치했다. 총성 한 번 없이도 조직은 무너질 수 있었고,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침묵 속에서 커다란 손실이 쌓여갔다.
그렇게 일본이 노렸던 것은 특정 인물의 제거만이 아니라 독립운동 전체를 끊임없는 불신과 경계 속에 가두는 것이었고, 밀정을 활용한 전략은 놀라울 만큼 집요하고 정교했다.
밀정은 총을 드는 대신 보고서를 썼고, 술자리에 섞였으며, 때로는 같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편지를 전달했다. 어떤 이는 생계를 위해 끌려 들어갔고, 어떤 이는 출세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충칭의 거리 곳곳을 거닐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길 어딘가를 그들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총사령부로 향하던 광복군 대원들, 회의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던 요인들, 그리고 그들 곁에 섞여 있었을지 모를 이름 없는 누군가들.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그래서 임정 사람들은 일본군의 포탄이나 일제 경찰의 추적보다 어쩌면 서로를 더 경계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정보를 흘릴지, 누가 거짓말을 할지, 누가 일제의 눈과 귀가 되어 움직일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망명정부의 일상이란 늘 불안 속에서도 사람을 믿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몰랐으니까.”
영화 속 대사는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그 말은 변명이었을까, 고백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극복하지 못한 자기 합리화였을까. 해방이 올 줄 몰랐다는 말은, 독립이 실현된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밀정이 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혹은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임정 사람들은 1945년을 알았을까. 정확한 날짜와 방식은 당연히 몰랐겠지만, 적어도 끝이 올 것이란 믿음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부를 유지할 이유도, 광복군을 조직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해방을 기다리고 준비한 사람들과, 미래를 외면하고 현재를 계산한 사람들. 그 사이의 간극이 바로 밀정이라는 존재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밀정은 영웅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위험했고,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다. 그들 때문에 체포된 이들이 있었고, 실패한 작전이 있었으며,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죽음들이 있었다.
밀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들을 용서하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묻지 않으면, 같은 질문은 반복해서 돌아온다. 미래를 믿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언제든 또 다른 밀정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언어로 쓰이지만, 선택은 늘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사람들은 몰랐기 때문에 버틴 것이 아니다. 몰랐지만 열망했기 때문에 기록했고 조직을 유지했으며, 끝까지 정부의 형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반대로 밀정이 된 이들은 모르고 싶었기 때문에 포기했고 계산했으며, 스스로를 정당화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8월 15일이 올지 몰랐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 시대의 어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도시를 온전히 읽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충칭의 밤, 그 화려한 불빛 아래서 누군가는 끝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끝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같은 시간을 살았고 같은 말을 썼으며 같은 조국을 입에 올렸던 사람들. 충칭의 밤은 그 차이를 증언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어둠 아래 서로 다른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품고 있을 뿐.
<알려드립니다>
세 차례의 연재가 남은 시점에서, 감사하게도 기획출간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많이 서툴고 부족한 글에 과분하게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연재가 출간에 이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여전히 고민이 많지만, 세상에 그리 손해나 낭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