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간의 임정로드_Epilogue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뒤쫓아 걸었던 스물세 날의 시간은 길고도 짧았고, 공허하면서도 풍성했으며, 서늘하면서도 뜨거웠습니다. 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생각들을 끝내 모두 정리하지 못한 채, 일정에 맞춰 급히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문득, 갑작스러운 광복을 맞은 뒤에도 몇 달이 지나서야 조국으로 향할 수 있었던 임정 요인들의 머릿속은 과연 어땠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의 귀국길 그리고 그들이 품었을 마음은 저와 얼마나 달랐을까요.
한국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여의도 공원을 찾았습니다. 광복 사흘 뒤인 1945년 8월 18일 광복군 대원들이 타고 온 C-47 수송기가 전시된 곳입니다. 효창공원에서 시작해 중국 대륙을 종횡무진 훑고 돌아와 마지막으로 이곳에 서니, 비로소 모든 여정을 마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임정의 이동 경로를 따라 걷는 시간은 100년 전 그들의 숨결을 희미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던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깃발을 세웠던 상하이에서는 이유 없이 마음이 벅차올랐고, 서쪽으로 쫓기듯 이동하던 길 위에서는 한국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충칭으로 향할수록 길은 점점 험해졌고 그에 따라 몸과 마음도 함께 지쳐갔습니다. 그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겪었을 피로와 불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매 순간 그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은 오늘날에도 외국인이 생활하고 이동하기에 그다지 수월한 나라가 아닙니다. 중국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저조차 쉽지 않았고, 크고 작은 위기를 여러 차례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100년 전 그들은 어떠했을까요. 언어도 제도도 보호해 줄 국가도 없는 상황에서 그 광대한 땅을 오가야 했던 그들의 부담과 긴장은 감히 짐작조차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9월의 중국 날씨는 혹독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현지인들조차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습니다. 100년 전에는 이보다 덥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시에는 땀이 빨리 마르는 기능성 티셔츠도, 한숨 돌릴 시원한 백화점도, 머리가 쭈뼛 서게 만드는 아이스커피도 없었습니다. 관광지도 아닌 곳을 홀로 더듬고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적잖은 감시와 의혹의 눈초리도 받았습니다. 건물 사진 한 장 찍는 것에 간섭과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의 이곳은 얼마나 더 위험하고 괴로웠을지, 그 생각은 여정을 마칠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유적지를 방문한다는 것이 단지 한 장소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길, 떠나기까지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 거리의 공기까지 모두가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들이 머물렀거나 오갔을지 모를 길을 더듬는 동안 감상이 점점 더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었으니까요. 설령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빈자리를 상상하고 더듬는 과정 또한 의미가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였는지 방문했던 현장들은 어느 한 곳 예외 없이 떠나려는 발길을 붙들곤 했습니다. 과연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지, 올 수 있기는 할지 아니, 그때도 여기가 남아있을지 같은 감정들이 옆구리를 찔러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렇게 떠나는 길은 처연한 기분으로 걷게 되고요. 때로는 그런 기분에 휩쓸려 정처 없이 걷고 있노라면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거리의 소음과 자극적인 풍경조차 그런 기분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이야기하게 되지만 100년 전에는 그런 감상에 젖어 걷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체포 혹은 암살의 마수가 뻗쳐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 이동은 곧 위협과 긴장의 연속이었을 테니까요. 현장을 돌아볼수록 얼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인물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이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임무를 위해 감수해야 했던 눈앞의 위험,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나라가 없다는 현실은 그들의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했을 것입니다. 특히 1945년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시점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요.
이번 여정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걷는 동안 수많은 책과 사료를 찾아 읽었습니다. 임정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기록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보다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고, 동시에 입체적인 평가가 가능해질 테니까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료들에서는 그들의 숭고함과 함께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이고,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들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가 제한된 기록만으로 그들을 섣불리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여정은 판단보다 추적에 가까웠으며, 결론보다는 질문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스스로가 왜 그들의 행적에 이토록 천착하고 싶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당시 임정이 고민했던 흔적들-억압과 지배를 벗어나 더 나은 세상, 정치·경제·교육에서 균등하고 노동과 성의 차별이 없는-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고민해야 할 것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통 속에 꿈을 꾸었던 이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꿈꾸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제는 이 질문이 제 몫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희생한다는 것, 그것이 주는 감정은 숭고함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이질적인 경외감이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의 삶과 만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그 같은 투신은 끝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독립운동가가 순수한 신념만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해방 이후를 염두에 둔 계산도, 순간의 분노에 따른 선택도 분명 존재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을 오래도록 곱씹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생을 걸어야 할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게가 지금 우리의 일상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돌아보면, 준비도 역량도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그저 마음만 앞섰던 서투른 발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한 페이지에 굵고 진한 글씨로 새겨질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마치고 나니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특정 장소에 발을 딛고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일만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이동과 준비, 망설임과 결심까지 모두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아울러 조용히 기원해 봅니다. 이 시도가 어떤 완결로 소비되지 않기를, 여기서 멈춘 이야기로 남지 않기를,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생각들이 삶의 어딘가에 오래 머물며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P.S.
지난해 여름 시작했던 연재가 해를 넘겨 이제야 끝났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시작을 미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착역에 도착한 기분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제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 따위를 길게 풀어놓는 글에 과연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었고, 솔직히 말하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의구심이 적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열심히 쓰다 혼자 조용히 끝내는 그림을 상상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한 주, 두 주 글을 올리다 보니 다행히도 제 걱정은 기우에 가까웠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훨씬 고마운 방식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덕분에 끝까지 마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글을 쓰는 많은 작가님들을 보며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매주 묵묵히 마감을 지키는 모습들에 괜히 혼자 감동하고, 난데 없이 동지애 같은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실 일방적으로 느낀 연대감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만, 덕분에 외롭지 않게 쓸 수 있었습니다.
연재 막바지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출간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아직도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글에만 집중하겠다 다짐해 놓고,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이 이렇게 흔들릴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괜스레 부담도 크고 솔직히 겁도 납니다.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은 이곳에서 오간 응원과 격려, 때로는 아무 말 같은 댓글들 덕분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잘 써야겠다는 각오가 피어오릅니다.
당분간은 마감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며 조금 가볍고 말랑한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동시에 작가님들 글에 슬쩍 등장해 하나마나한 댓글을 달며, 늘 엄근진해 보이던 제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세탁해 볼 요량입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고, 앞으로는 조금만 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