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香港, HongKong

떠도는자의 기억법 #19

by 모래의 남자

2/21-25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같은 아시아권이면서도 단지 아시아스럽지만은 않은 역사와 배경 그리고 현재. 그런 특징을 가진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에 깊이 그리고 오래 빠져들게 된 것이.


대체로 4음절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들은 철없던 90년대 고등학생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영화라는 세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힘은 순간적인 임팩트뿐만 아니라 지구력까지 대단했다. 재견에 재견이 거듭될수록 그간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느끼고 읽어내지 못했던 것들이 마치 안개를 뚫고 내게 손짓을 보내오곤 했다. 여전히 영화라는 존재엔 까막눈이지만, 이렇듯 언제든 그 작품들과 함께하는 동안 항상 너무나 행복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40대에 찾은 홍콩. 그곳에서 작품들이 만들어진 현장을 누볐다. 당시의 영화들과 지금의 나 사이에는 홍콩 반환과 우산혁명 그리고 홍콩보안법이 차례로 들어섰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만큼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갭도 불가피했다. 이를 메워보려 머무는 동안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몽중인을 들으며 거리를 걸었고 스마트폰 배경화면도 그 영화들의 포스터로 저장했다. 그렇게 자못 유치한 노력들과 함께 가까스로 30여 년 전의 열기 아니 온기를 조금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던, 동시에 아련하면서도 짧고 협소했던 시공간.


오늘날 홍콩엔 중경맨션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금발의 임청하도 숏컷의 왕정문도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통조림 캔도 그곳엔 없다. 모든 게 쉴 새 없이 바뀌는 것 자체가 진정 홍콩이 지닌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한 어느 홍콩영화 거장의 이야기가 뇌리에 맴돈다. 다만 그 변화란 것이 어느 일방적인 존재로부터 기인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될 수 있길 바랄 뿐. 역사에 남아있는 1841년과 우리가 지켜본 2010년대부터의 그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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