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41
좋아하는 단어들이 다 들어있는 책제목, '새벽 산책 허밍'(Dawn Stroll Humming). 작가가 의미하는 새벽산책허밍은 책 바로 앞에 적혀 있었다. '깊어간 모든 밤을 새벽이라 하면 글은 나를 가장 멀리 가게 하는 허밍. 깊은 밤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가장 먼 곳까지 산책했다.'
책속에 고개를 파묻고 침잠하는 시간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 멀리 가게 할 때도 있다는 걸 알아서,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새벽허밍산책이라 말하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 '어디로 가려는 거니.' 자신에게 매번 되묻는 말도. '멀리멀리 가고 싶다는 마음도, 멀리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도'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어서 이런 문장들에 눈이 갔다.
눈덮힌 샷포로에 여행을 가서 기차를 타고 했다던 작가의 말을 곱씹었다. '내내 열차에만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지, 혼자 묻고. 응, 그럼, 혼자 대답한다. 부드러운 마음. 길도 없고, 담도 없는, 눈 많이 내린 마음.'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고. 따뜻한 기차 안에 앉아서 고요하게 눈 쌓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꼭 눈 내리는 풍경이 아니어도 좋다. 계속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고요히 앉아있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했었던 여행의 조각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트램을 처음 타보고 트램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 생각했던 오스트리아 빈. 트램 안에서 눈이 마주친 어린 여자아이, 트램에서 계속 지나쳤던 고딕건물들의 아름다운 풍경들 같은 잊고 있었던 순간들이. 책을 읽으면 이런 순간이 좋다. 잊고 있었던 기쁨의 순간들을 다시 만난다. 그러면 신기하게 희망이 아주 살짝 흩날리는 것 같다. 그때 느꼈던 기쁨이 저 멀리서 희미한 바람처럼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삿포로에서 자주 들른 빵집과 카페에 대한 얘기도 감미로웠다. 빵집 이름은 펭귄, 카페 이름은 안개. '가게 안의 따뜻한 공기와 삿포로의 겨울 공기가 만났기 때문에 생겨난 안개. 나는 안개 속에 있구나. 그랬다.' 가게 이름을 곱씹어 여행의 감각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말들이 예뻤다. '나는 머물 곳이 필요했고, 머물 수 있는 곳을 좋아하지만 빵집이란 곳은 오래 머물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니까. 빵집 대신에 빵집 맞은 편의 커피숍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는 말들도. 요즘 점점 오래 머물 수 있는 곳들이 드물어지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여행을 가면 저자처럼 공원을 산책하고 오래 머물 만한 카페를 찾아 머물다 빵집에 들러 한 두개 빵을 사서 돌아가고 싶다. '빵집에 들러 빵을 하나 두개 사는 것은 돌아가겠다는 의식 같은 거다. 빵을 사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마음이 안정되는 의식을 반복하며, 여행지에서 일상을 살아보는 기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애틋하고 튼튼한 마음을 잡아가며.
황수영 작가를 처음 이 책으로 만났는데, 이 작가가 쓴 글은 시로도 산문으로도 읽힌다. 노래인 듯 목소리인 듯 작은 마음인 듯 그 모든게 허밍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흥얼거림. 무한히.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든. 허밍, 허밍, 허밍. 음, 음, 음.' 작은 마음이 가느다란 목소리가 되고, 노래가 되고, 허밍이 되어 글로 쓰여진다. 글들로 저멀리 더 멀리멀리 산책을 다녀오는 저자의 허밍소리를 또 만나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