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제로섬 게임

육아에세이 24편

by forcalmness

인생에서 공평함을 논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을 진빠지게 하는 건 불공평함, 공평하지 않은 기분이라는 걸 직장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고 지금도 그건 여전하다. 그런데 그런 공평함을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논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임경선 작가의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본 걸 또렷이 기억한다. "육아는 제로섬게임"이라고. 한사람이 하지 않으면 다른 한사람이 해야 하는 네거티브 제로섬 게임. 그 말을 봤던 건 아마 아이가 세살이 되기 직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말이 마음에 콕 박힌 건 그때 무렵이 육아부담이 최절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매일 육아시간을 쓰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늦게 하원하지 않게 노력하는데. 업무가 쏟아지는 시즌에도 그 하원시간을 지키려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일을 하고, 아이가 잠든 밤 스탠드등에 의지해 해야할 것을 보는데. 그런 노력들에 비해 신랑은 자신의 시간을 온건히 지키는 것 같아 보였다. 항상 아이의 돌봄으로 침투되는 시간은 내 시간이 먼저인 것 같았다. 내 시간이 정말 어쩔 수 없게 안되는 상황일 때라야 신랑의 시간이 투입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너무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사람마다 한계점을 느끼는 역치가 다 달라서 내가 불공평함을 느끼는 정도였다면 신랑은 육아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살기 싫다고 말한 적도 있던 사람이었다. 여기서 더 신랑에게 육아 분담을 요청한다거나 내 힘듦을 토로하는 건 그 사람의 삶의 이유를 죽이는 일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질 걸 알아서 말하지 못하는 말들이 마음에 쌓인다는 걸 그때 절감했다. 가장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나눌 수 없어 혼자 부던히 삭혀야 하는 것, 육아 부담. 이처럼 내가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육아임이 분명해졌다.



그 시간이 어찌저찌 흘러 이제는 신랑이 아이를 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요즘 아이와 티키타카를 하며 몸으로 놀아주는 건 거의 신랑이다. 육아를 하는 신랑의 얼굴도 많이 환해졌고 편안해 보인다. 아이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빠 품에 안겨 신나게 논다. 언제 그 힘겨운 시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그런데도 여전히 육아를 하는 순간순간 내 마음은 갈지 자를 그린다. 내 마음 속에서만 수천번 외친 말, '왜 나만'이라는 소리는 많이 잦아들었지만 불쑥 한번씩 그 소리가 내 마음에서 들리곤 한다.



그럴 때 그 소리를 지그시 누르고 내가 하고자 했던 아이 돌봄을 조용히 한다. 그러면 어느새 신랑은 그 비스무리한 아이 돌봄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때 드는 생각, 말 안하길 잘했다. 아마도 신랑 또한 그런 경험을 수천번 하면서 육아의 산을 넘지오지 않았을까. 육아가 제로섬게임이란 건 자명하지만 그걸 들여다 보기보다는 육아의 파이 자체가 둘이 짊어지기에 너무 무거운 짐이라는 걸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서로의 굽은 등을 토닥여 주기로. 묵묵히 내 짐을 들고 조용히 가다가도 한번씩 같이 허리를 피기로. 이 마음으로 부모의 길을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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