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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상 Dec 09. 2016

꿈과 현실의 비율

Ratio

 늦었다. 진짜 늦어버렸다. 최근 몇 달 내내 이런 아침이 날 반겨준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봐 한숨을 한번 쉰다. 간밤의 온도와 길고 길었던 꿈속에서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형형색색의 연기를 따라 미로처럼 얽힌 곳에 갇혀있다가도 어느샌가 내가 모르는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으며 하늘을 날기도 했다.


 잡생각은 그만, 일어나 대충 씻은 뒤 옷을 추슬러 밖을 향한다. 문을 열자 추운 날씨가 얼굴을 비볐다. 건조한 얼굴에 하품 한 번 하니 따가워 눈살을 찌푸린다.


 '로션이라도 바를 걸 그랬나.'


 속으로는 헛생각, 발은 빠르게 움직였다.

 하루는 빠르게 지나간다. 점심과 오후 일정을 마치니 금세 저녁이 찾아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피곤이 몰려왔다. 끊임없는 하루의 반복. 이곳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가. 무의미한 일과 속에서 유의미를 찾아야 하는 불쌍한 인생.


 금세 우울해져 또다시 한 숨을, 그리고 눈을 감아 아무 생각 안 하기로 한다.


 집은 포근했다. 문을 열자마자 바깥과는 다른 열기에 괜스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 앞으로 향한다. 오늘은 미뤄두었던 TV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 그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녀볼까.


 몇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다가 브라우저 창 끝에 걸린 작은 광고를 무심코 클릭했다.


 "에이씨..."


 입으로 욕이 나오려다 멈춘다. 사이트의 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글을 한자씩 읽어 내린다. 


꿈과 현실의 비율을 원하는 대로 맞춰드립니다.


 내용은 이러했다. 특정한 약을 먹어 꿈속에서의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무슨 소리가 싶어 괜스레 호기심만 더 생겨버렸다.


 만약 꿈속에서 시간이 더 늘어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혹은 더 줄어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꿈속에서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꿈을 꾸게 되는 걸까. 현실과 꿈의 비율을 1:1로 만들 수 있다면 꿈속에서의 하루는 어떨까.


 하지만 만약 줄어든다면. 현실의 시간을 줄여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들 수 있다면, 현실은 얼마나 덧없이 변할까.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달려있다.


 재미있다. 어쩌다 들어온 사이트 내용에 홀려 멍하니 쳐다본 내가 우스웠다. 진짜면이라는 가정 아래 그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고민했던 게 너무 웃기다. 하지만 내용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놓고 결제창을 띄어버리는 자신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깜빡 거리는 커서에 '그래, 한번 해보지'라는 마음이 든다. 이 자식, 최면 거는 건가.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사기면 어떻고, 진짜면 어떨까. 시도해보는 거다. 너 따위 상술에 내가 속아주는 거다.


 합리화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결제는 빛의 속도로 이뤄졌고 나는 큰 일을 끝낸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그리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도 전날의 아침과 동일했다. 늦잠을 잤고 지각했으며 하루는 금방 흘러갔다. 정신없는 일상에 새벽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저녁에 도착해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악!"


 머리를 쥐 뜯으며 멍청한 짓을 한 나를 때려보지만 의미 없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몇 만 원 정도야 기부했다고 치자.


 물건은 금방 도착했다. 다음 날 저녁에 나는 꽤나 당황했다. 빨리 도착한 물건도 물건이지만, 그 내용물이 두려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작은 통에 들어간 비타민처럼 보이는 그것이 과연 내가 주문한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설명서는 간단했다. 두 가지 색으로 구분된 알약은 각각 꿈의 시간을 길게 늘리는 것, 현실의 시간을 줄이는 것. 어느 것을 먹느냐에 따라 나는 그 비율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한 개를 집어 자세히 관찰한다. 정말 이게 그런 역할을 한단 말이야? 속으로 온갖 잡생각이 흐른다. 그리곤 다시 생각을 해본다.


 '잠을 자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지각하지는 않을 거야.'

 '꿈속에서 오래 있을 수 있으면 새로운 경험이 될 거야.'

 '어차피 무한한 루프를 살아가는 인생, 조금의 행복을 찾는 게 뭐가 잘못된 걸까.'


 어떻게든 먹을 이유를 만들어낸다.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 손에는 꿈을 길게 늘이는 약과 다른 한 손에는 물컵이 들려있다. 길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한 입에 그것들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잠자리에 눕는다.


 신기하다. 처음 든 생각이다. 이건 정말 신기하다. 제3의 입장에서 구경하는 게 이리도 즐거울 줄이야. 지켜보다가도 내가 감각을 느끼고자 하면 1인칭으로 변한다. 형형색색의 구름과 기억의 파편들이 섞인 이 공간은 매우 신기했다. 오롯이 내 무의식에 의해 발현되는 이 공간은 내 전용으로 맞춰진 놀이동산이었다.


 얼굴이 변화하는 여자와 신나는 데이트를.

 동물을 타며 광활한 대지를 누비고.

 구름 속에 떠다녀 맑은 공기를 맡는 등.


 나는 이곳에서 무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도 모른 체 푹 빠져들어버렸다. 눈을 뜬 것은 알람이 울리기 전. 그 순간이었다. 꿈과 현실의 괴리감에 갑작스러운 감각이상이 생긴다. 머리가 아파오고 손 발이 덜덜 떨렸다.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큰 격차로 인한 쾌감이 온몸을 짜릿하게 감쌌다. 여자들이 가지는 오르가즘이 이런 것일까.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쾌감은 점점 증폭되어 머리를 울렸다. 쿵! 쿵! 그렇다. 이것은 인류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쾌감이다.


 꿈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것은 마약이다. 절대 끊을 수 없는 마약.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통을 찾는다. 뚜껑을 열어 금방 찾을 수 있게 바닥에 부어버린다. 물도 필요 없다. 약을 집어 목구멍 안쪽까지 넣는다. 허리가 꺾이며 그대로 꿈속으로 빠져버린다. 육체는 중요치 않다.


 환상적인 세상.

 귀에 들리는 알람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아아. 이곳이다. 내가 반한 곳. 내가 있어야 할 곳.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 찬 이곳. 내 마음대로 기억을 바꿀 수도 다른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깨어난 현실. 엄청난 괴리감과 붕 떠버린 느낌이 현실에 안착할 때 느껴지는 이 쾌감! 아아.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중요치 않다.

 현실 따위.

 꿈속으로 가자.


 이미 꿈과 현실의 비율은 틀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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