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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상 Feb 06. 2016

모기와 하루살이

그리고 진득한 과일향

모기 B는 지금 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로 생긴 바 BAR는 분위기도 붉으스름하며 습한 것이 딱 자기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다른 모기들의 위잉 위잉 대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날갯짓을 몇 번 움직인 것도 다 기분 좋은 탓일 것이다.


RH+ A형 48년 산은 향뿐만 아니라 맛까지 엄청났다. 모기 B는 잔 안의 커다란 각진 얼음을 살짝 흔들어 피를 차갑게 했다. 굳기 전에 빠르게 마셔야 한다. 물론 피는 따뜻하게 먹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모기 B는 속으로 비웃었다. '따뜻한 피는 어린애들이나 주라지.’


"저기요."


한참 피 맛에 심취해 세상을 향해 비아냥 거릴 때쯤 간드러진 목소리가 모기 B를 자극했다.


"옆에 자리 있나요?"


빨간 드레스에 약간은 귀여운 얼굴, 허리춤까지 내려온 투명한 날개를 가진 하루살이가 모기 B를 향해 말했다. 모기 B는 살짝 당황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루살이의 매력적인 몸매와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날갯짓을 할 뻔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앉으시죠."


바는 여전히 붐빈다. 각자의 묻힌 소리 속에서 모기 B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금은 가벼운, 그렇다고 경망스럽지는 않은 좋은 미성이다. 하루살이의 눈을 바라보며 긴 팔로 옆자리를 대강 치웠다.


미모의 하루살이는 자신의 드레스 밑단을 살짝 걷어 올리며 자기 허리춤보다 조금 위에 있는 의자에 앉으려 했다. 매끈한 다리를 의자 발판에 걸쳤을 때 모기 B의 눈은 이미 그곳을 향해 있었다.


“성함이?”

“I라고 해요. 반가워요. 그쪽은 성함이?”


모기 B는 하루살이 I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곤 속으론 '대답을 너무 빨리했나'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너무 바빴어요. 피로를 날려줄 달콤한 뭔가가 끌려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쪽은 어떤가요?”


하루살이 I의 눈이 모기 B를 향했다. 빨간색 립스틱은 살짝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입술을 훑고 간 것일까. 다리를 꼬고 있던 긴 다리가 한번 풀리며 반대쪽으로 꼬는 순간 모기 B는 지금까지 먹었던 피를 다 뿜어낼 뻔했다.


“크흠… 저도 오늘은 너무 바빴네요. 하루가 너무 안 가더군요. 제 업무에 집중하고 있어도 느리게 가는 시계가 얄밉더라고요.”


모기 B는 말을 뱉으며 눈을 흘겼다. 비단 같은 날개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긴 다리가 그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하루가 너무 안 간… 다구요?”


하루살이 I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바텐더가 건네준 작은 주스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에 모기 B는 자연스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은 사람을 집중시켰다. 또렷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옆에서 듣는다면 그 누구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모기 B의 옆에 앉은 순간 찰나의 정적은 바 BAR안의 모든 수컷들의 신음 소리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모기 B가 대답할 틈도 없이 하루살이 I는 곧이어 말을 이어갔다. 모기 B는 그녀가 받아주는 대답에 신나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루살이 I는 모기 B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멍하게 눈길은 그의 이마와 미간 사이를 보고 있었으며, 똑바로 앉아 있던 의자를 살짝 틀어 그를 향했다.


그제야 제대로 마주 앉은 모기 B와 하루살이 I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모기 B의 앞에 놓인 피는 살짝 굳어 담겨 있는 잔 안쪽에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잔을 잡고 있었던 긴 손가락은 저절로 테이블 아래로 내려 그녀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저도 오늘 바빴어요.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향했어요. 밝은 햇빛과 상큼한 바람이 저를 맞이 했죠. 살짝 구름이 껴 자외선 걱정 따윈 안 해도 될 것 같은 아주 시원한 그런 하늘이었어요. 그렇게 제 길을 가던 중, 조금 쉬어가고 싶어 근처 나무 나뭇잎에 앉았죠. 주변에서는 다른 하루살이 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았고 제 삶에서 그렇게 활기찼던 적은 없었을 거예요.”


모기 B는 그녀의 얘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오늘뿐이겠죠.”


하루살이 I를 바라보던 모기 B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잔을 향해 가던 손을 머뭇거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녀는 모기 B를 부러운 듯이 아련하게 바라보며 살짝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주 보던 모기 B는 그 슬프고도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짙은 마음에 눈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바 BAR를 찾은 손님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정을 넘어선 시간부터 일하기 시작하니까.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모기 B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끼익끼익- 문의 경첩이 시끄러웠다. 조용해진 공간, 기분 좋은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 소리가 메아리쳤다.


"즐거웠어요."


잔 안의 피는 안쪽 표면에 굳어 마치 거미줄처럼 보였다. -잘그락- 각얼음이 녹으며 소리를 냄과 동시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기 B의 긴 코를 쓰다듬었다. 손 끝에서 살짝 묻어난 과일향이 모기 B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빨간 드레스 끝단이 부드럽게 흐르며 구두 소리가 바 BAR를 채웠다. 모기 B는 왠지 모를 먹먹함에 그녀를 붙잡으려 일어났지만, 짙은 과일향 조차 사라진 문을 바라만   볼뿐, 발걸음을 떼지 못한 체 멍하니 그녀의 체취를 쫓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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