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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Dec 20. 2019

블랙아이스, 녹아버린 감정의 위험

얼마 전 상주-영천고속도로 블랙아이스 교통사고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슈’라는 가벼운 표현 속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참극이 담겼다.


블랙아이스(Black Ice)란, 눈이나 비가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으며 생기는 도로 표면의 얼음층이다. 또한 매연, 먼지 등과 함께 섞이며 검게 얼어붙어 운전자는 빙판이 된 도로를 인식하지 못해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빙판이 된 도로를 조심하자’는 다짐 정도로 끝내기에는 그 결과가 참담했기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까지 관련 부처의 안전조치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도로 위의 블랙아이스뿐만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는 ‘감정의 블랙아이스’ 역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순간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도로를 달린다. 일상에서 익숙한 감정의 도로를 달리다가도 때로는 낯선 감정의 도로를 지나기도 한다. 그렇게 일어난 대부분의 감정은 시간과 함께 잊히기 마련이다. 혹자들은 인간이 그렇게 프로그램된 존재라고도 하고, 잊히는 것이야 말로 신이 준 선물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이런 감정들은 보통 강렬한 사건을 동반하는데, 대부분 사건은 잊히고 당시 느꼈던 감정만 남는 경우가 많다. 마치 녹차 티백에 우러난 물처럼 티백을 제거해도 노릿노릿한 색과 향이 남듯이 말이다. 


강렬한 사건으로 인해 생긴 감정들이 때로는 ‘트라우마’로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발현된다. 이것은 마치 눈에 보이는 빙판과도 같다. 하지만 사소한 감정을 간과해 생기는 '감정의 블랙아이스'는 눈에 띄지 않기에 예측이나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에는 작고 사소한 감정이었다고 치부했지만, 정작 그로 인해 발생될 사고의 가능성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돌아보면, 감정의 블랙아이스는 사소한 ‘불만과 분노’를 해소하지 못했을 경우 형성된다. 그런 불만과 분노의 발생지는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인된다. 예를 들어, 부당한 상사의 요구, 무례한 동료 혹은 후배의 태도를 마주하게 될 때, 가족과 지인의 행동이나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우리 마음속에 불만과 분노가 형성된다. 


하지만 터트리기에는 너무 사소하거나 아주 미묘한 경계에 있어 참게 되고, 시간이 흘러 완전히 잊혔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때 남은 감정이 일시적으로 누그러져 가슴속에 녹아든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 부정적인 환경과 상황에 더해저 가슴속에서 살며시 얼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감정의 블랙아이스가 된다.


이처럼 사소한 불만과 분노는 우리의 무의식 어느 한구석에 녹아있을 뿐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감정의 길목을 보이지 않는 빙판으로 만들어 둔다. 그리고 방심한 채 그 길목을 건널 때 사고를 키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죽도록 보기 싫은 사람이 생기거나, 사소한 감정적 사건에 과도한 분노가 표출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 역시 사소한 일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부모, 부부, 자녀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기도 한다. 


돌아보면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본인조차도 왜 그랬는지 모를 정도의 과민반응이었으니, 타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뻔하다. 그것이 어떤 과거의 시간이나 지속적으로 겪어온 감정이 얼어붙어 생긴 감정의 블랙아이스라는 것을 타인이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감정의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 상황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겠지만, 운전자가 블랙아이스에 대비하는 방법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도로의 블랙아이스 & 감정의 블랙아이스 대처법>


첫째,

<운행전 도로 상황 확인, 타이어 상태 및 보호장비 설치하기>와 같이, 

일상에서 느끼는 타인에 대한 사소한 불만과 분노를 무조건 참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타인의 요구가 불합리하다거나, 이런저런 감정을 느꼈다고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둘째,

<지하도, 교량, 고가도로 등의 위험지역 통과 시 감속운행>과 같이, 

주로 내게 불만과 분노를 유발하는 상대라면 최대한 부딪히지 않도록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피치 못하게 대면해야 할 때는 최대한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미리 자기 암시 등을 통해 담담한 마음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차간 안전거리 확보>와 같이, 

타인과의 적절한 감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동일한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친하거나 허물이 없는 사이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불필요한 부정적 감정이 생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우리 삶에는 수없이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험들을 모두 제거할 수도 없다. 마치 모험을 떠나는 영웅처럼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역경과 마주하며 싸우고 이겨내며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까지 조심해가면서 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하루의 삶을 열기 위해 나아가는 우리는 신화 속 위대한 영웅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영웅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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