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산내면 새벽네나무공방 정상길 님
처음 인터뷰를 요청드리기 위해 공방에 찾아갔을 때, 공방 앞 저만치서도 맡을 수 있었던 나무 내음이 참 좋았다. 공방에서는 재즈 음악이 크게 나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머리에 붙은 나무가루들을 툭툭 털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오는 정상길 님을 처음 만났다.
커다란 기계와 여기저기 쌓인 작품들을 보며 질문을 쏟아내는 우리에게 툭툭 대답을 하시는데 말투는 무심한 듯 싶었지만 그 안에 담긴 작업에 대한 정성과 진심이 느껴졌다. 정상길 님은 나무 발우와 생활목기를 서양 방식이 아닌 전통방식인 갈이 칼로 만드는 장인이다. 이제 이런 방식으로 발우를 제작할 수 있는 장인이 거의 없는데 이 분의 작품 25합 발우는 밀라노 박람회에 출품될 정도로 대가로 알려져 계신다.
이곳 지리산 자락 산내에서 25년 넘게 갈이 장인으로 작업하고 살고 계시는 정상길 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동안에 이 마을로 이주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연결되어 살고 있는 모습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얼마 후 다시 공방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내에서 나고 자란
나무쟁이 정상길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났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여기 빈 몸으로 내려오셔서 터를 일구셨죠. 나는 나무 깎는 것만 할 줄 알지만, 아버지는 목수셨어요. 전통 한옥 목수는 아니고 뭐라고 할까. 새마을 목수? 한옥도 지으시고, 양옥도 지으시고, 마을의 일꾼이셨죠. 손재주가 정말 좋으셨어요. 형제는 첫째 누님 돌아가시고 6남매예요. 누님 한 분 제외하고는 모두 여기서 한 시간내 거리에 살죠.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서 살고 있는데, 둘째 누님이 지금은 저희 형제를 진두지휘 하셔요. “야 모여!” 하면 형제들이 “네”하면서, 함께 나고 자란 이곳에 모입니다.
어릴 때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친구들이랑 산에서 15박씩 놀다 오고 했어요. 배낭에 코펠 하나, 텐트 하나면 산에서 계곡가에서 먹고 자고 놀았지요. 그러다 돈 떨어지면 산에서 뱀을 잡아다가 팔았어요. 그때만에 해도 40년 전이니까 유원지 쪽 가면 뱀탕하는 집들이 있었거든요. 돈 떨어지면 산에서 뱀 몇 마리 잡아다가 식당에 팔고 그 돈으로 라면 사서 또 산에 가서 놀고 계곡에서 작살질로 물고기도 잡고. 이 지리산 자락을 온전히 누렸지요.
울 아버지가 내 손재주를
중학교 때 알아보셨어야 했는데..
중 3이 되었는데, 이제 고등학교는 남원으로 나가야 하는 거예요. 성적 좋은 애들은 남원고나 성원고로 진학했고, 그때 막 화이트 칼라가 뜰 때여서 은행 취직하고 싶은 아이들은 상고에 갔고, 난 부모님처럼 여기서 농사짓고 살고 싶었으니 농고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부모님이 상고에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진학계획서에 부모님 도장을 받아가야 하는데, 제 바램과 부모님 바램이 다르니 '이걸 어쩌나?' 고민을 했죠.
그때 우체국 앞에 회양목이 많았어요. 그게 도장 파는 나무거든요. 등교 길에 톱으로 쓱 쓸어서 칼로 다듬고 사포질 해서 농고에 진학하겠다고 적고 아버지 성함으로 ‘정한수인’ 이렇게 파서 찍었죠(웃음). 담임선생님이 알 턱이 있나요. 그런데 하필 농고에서 입학안내서를 집으로 보낸 겁니다. 결국 들통이 나서 학교 선생님께 엄청 혼나고 집에서 부모님께 엄청 혼나고 결국 상고 진학을 했죠. 그렇게 간 학교라서 학교생활에 큰 재미는 없었어요. 엄마 얼굴 봐서 졸업을 했지만 억지로 다니고 졸업하고 바로 군대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잘 살고 있어요
군대 제대하고는 남원 시내에 있다가 20대 중반즈음 부모님 계신 산내로 왔어요. 내려와 있으니 아버지 후배셨던 김대현 어르신이 “너 칼 한번 잡아봐라” 하며 가리 칼을 잡아보게 하셨어요. “아무거나 깎아봐라” 하셔서 어깨 넘어 본 대로 칼 잡고 깎는데, 회전하면서 스르르..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아이고 큰일 났네, 이거 내 일이구나' 하며 시작해서 이제 25년이 넘었네요.
원래 이 마을에 전라기술중학교가 있었어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목기 전문학교였는데, 지금 마을의 80대 어르신들이 1회 졸업생이실 거예요. 제가 여기 내려왔을 때는 마을에 그 학교 나오신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동네 어른들의 2/3 이상은 다 나무 만져본 분들이라 저는 편하게 배웠죠. 그리고 2002년에는 자립해서 조그맣게 제 공방을 차렸지요.
태풍 루사로 공방 건물이 싹 날아가기도 했고 여러 고생도 많이 했어요. 이번 5월이면 이 공방 차리면서 가졌던 빚을 다 갚아요.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제가 여기 터 잡고 아이 넷 키우며 열심히 나무 깎으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관계가 중요한 거죠.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는
이 산내 마을에 살겠다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이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내려와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근데 초창기에 내려온 사람들 중에 얼굴이 밝은 사람을 못 봤어요.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죠. 무슨 사연일까 유심히 보게 되고, 그러면 제가 ‘나 뭐하는 사람이요’ 하면서 말 걸어보고 술 한잔 함께 하고. 그렇게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그때 마을에 내려온 사람들은 내 또래, 내 누나들 또래라 금방 친해였지요. 지금도 다 친해요. 그리고 이곳에 자리 잡은 인드라망 공동체, 지리산 생명연대, 지리산 이음 등은 내가 한 달에 만원이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후원하고 있는 마을 단체들이에요. 그 세월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그곳에 있죠. 맘에 들든, 안 들든 내 친구들이고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최근에 오는 젊은 친구들은 사실 잘 몰라요. 이제 다음 세대 친구들이 오니까 사실 더 다가가기 조심스럽더라고요. 커뮤니티 안에서 보이는 모습들에 걱정이 되는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내가 더 이상 관여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늘 응원은 하고 있습니다.
외로운 친구들도 함께할 수 있다면,
여기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누가 “나도 귀촌해서 살아보고 싶소” 하면 물어봐야죠. “네가 여기 와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가 잘하는 게 뭐냐” 하고 물어볼 거예요. “그림을 잘 그려요” 하면 “그래, 너는 외롭겠구나” 하고, “괭이질을 잘해요” 하면 “그래 너는 살겠다” 하고, “성격이 좋아요” 하면 “그래 너는 잘 살겠다” 하겠죠.
지금 우리 마을에 대한 느낌은 그래요. 지금 이 작은 마을에 모임이 60여 개가 돼요. 그중에서 여러 커뮤니티에 중복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을 싹 빼면 정말 몇 개 안 되거든요. 저도 한 열 개 넘는 모임에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빼고 살펴봐야 해요. 그런 모임에도 참여 못하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찾아야지요. 이런 친구들까지도 찾아서 함께할 수 있다면, 산내 여기 정말 살기 좋은 동네예요.
이런 친구들을 함께 찾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저도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 새로 자리 잡은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그 친구가 누구랑 어울리더라' 생각해보는 거죠. 제가 막 뭘 챙겨주거나 하지는 못하긴 해요. 하지만 그들도 느끼고 있거든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는 것을요. 지리산 이음이나 마을에서 함께 반찬 나누는 언니들처럼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그런 친구들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 마을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의 성공은 지금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내 인생에 대한 책 한 권을 쓰겠다 하면, 제목은 “내 인생의 성공은 지금이다”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행복하고 몸이 덜 피곤해서가 아니고 “이만하면 되었다” 생각해요. 아이들 너무나 잘 커줬고, 내 인생 20대부터 막 달린 거 같은데 이제 좀 숨통을 트인 거 같고. 이후 내 인생이 큰 요동을 칠 거 같지도 않으니까요.
지금 저희 공방에 외지에서 내려와서 가리 칼 잡고 일 배우며 함께하고 있는 젊은 친구가 있어요. 눈이 반짝이는 참 예쁜 친구인데, 그 친구가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전해줘야겠다 생각하며 함께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대학 졸업하고 지금 같이 있는 막내딸도 목기 일을 하고 싶다고 하고요. 저는 좋죠.
지나고 보면 주위 사람들이 저를 돌보았던 거구나 하고 생각해요. 늘 제가 마을과 이웃들에게 받은 게 훨씬 많더라고요. 저는 우리 마을에서 살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술 먹고 성내도 다 받아주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게 제일 크죠. 세 놈만 있어도 돼요. 그 세 놈과 같은 마을에 산다는 건 축복이고요.
정상길 님과의 술자리를 겸한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다른 마을 분들과의 대화에서도 정상길 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곳에 와 마음을 열고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고. 마을로 누군가가 왔을 때, 그 누군가를 지긋이 바라봐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주고 먼저 어려운 것들을 살펴봐주는 이웃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정상길 님의 산내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마음,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다음 세대에 대한 세심한 마음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었다.
이제 지리산 산내에 가면 반갑게 찾아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생겼네! 그게 제일 기쁘다. =)
글 by 생강
사진 by 프로젝트 올라운드
나무로 만든 물건에서는 왠지 스테인리스의 차가움과 플라스틱의 가벼움과 비교되는 깊이 있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정상길 님이 직접 정성과 마음으로 깎아 만든 다양한 목기와 발우들은 아래의 페이지에서도 보고,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