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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사는 삶,
우리는 계속 하겠습니다.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 정성우님

모처럼 나선 여행길이었데 종일 비가 보슬거렸다. 지도앱이 알려준 ‘시네마라운지MM’의 위치는 조금 예상 밖이었다. 목포항 인근의 건어물상 밀집지역인 만호동, 겉모습이 마치 수협 창고인가?라고 짐작되는 건물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입간판 하나가 목적지를 잘 찾아왔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게 갸우뚱하며 들어선 독립영화관 MM이었는데, 입구에서 2층에 오르는 보랏빛 계단부터 마음속 물음표가 가시지 않았다.. ‘아 뭐지? 이 공간? 이 느낌?...’ 처음 들어선 커뮤니티룸은 조그만 카페 같기도 했고, 손님을 맞아주는 거실 같기도 했다. 직원분의 환대를 받으며 공간을 둘러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뭉클함이 올라왔다. 하얀 합판으로 세워진 3면의 스크린, 철퍼덕 앉아도 좋을 바닥재, 편안함을 주는 1인용 소파, 그리고 뒷편의 계단식 좌석들까지... 면면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구석 구석에 시선이 멈추어졌다. 이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가 느껴졌다.

목포 여행을 마치고 오고 나서도 그 잔상이 눈과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가 그 공간에 스며들어 있기에, 처음 게다가 잠깐 방문한 나에게마저 그 기운이 느껴지는 것인지가 너무 궁금해서 한달여 후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시네마라운지MM은 독립영화관입니다.


안녕하세요


전라남도 목포에서 영화와 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이하 ‘MM’)을 만들어 가고 있는 정성우입니다. 영화관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고, 지역사회에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게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떠나보니 그 매력을 알게된 곳, 목포


목포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 때까지 목포에서 생활하다,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 거의 발악하다시피 서울로 대학을 갔습니다. 서울에서 20대를 보내다가 스물 일곱 때 다시 목포로 내려왔습니다. 그게 벌써 15~16년 전이네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너무 떠나고 싶었던 목포였는데, 서울살이 중 고향을 오가면서는 이 곳의 느낌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여기를 떠나려고 했었을까?’ 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곱씹어보고 나니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는 단지 성장기 때 부모님의 간섭이 싫어 그 슬하를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가 더 강했던 것 같더라구요. 그것을 깨닫고 나니, 목포가 점점 매력적인 도시, 괜찮은 도시라고 느껴지면서 ‘다시 목포에 내려오게 된다면 의미있는 일을 해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국내 최대 놀이공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주한 외국인 대상 마케팅 행사를 담당하며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또 인정도 받으며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그 곳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한 선배의 모습이 눈에 훅 들어오더군요. 그 순간 ‘내가 이 곳에서 일을 더 한다고 해도, 8년차에도 비정규직인 저 선배의 모습으로 살아가지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맞나? 이렇게 살지 말고 지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목포로 돌아왔습니다.


목포에서 영화를 시작해 독립영화관을 운영하는 30대가 되기까지


저는 원래 작가르가 되기를 꿈꾸었어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글을 잘 쓰는 분들은 너무 많고 저는 그 분들에 비해 글 잘 쓰는 능력은 없더라구요. 서울에 있을 때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제작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20대에 고민하던 것들을 영화로 풀어봐야겠다는 생각,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것을 굳이 서울에서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목포로 귀향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목포에 다시 내려왔을 때는 지역 내에 영화 관련 분야는 거의 불모지였습니다. 당시 <MBC 시청자 미디어센터>가 처음 생겼으니까요. 저는 그 곳에서 1기 교육을 수료하고, 이후 더 배우고 싶어 대학에 편입해 영화를 전공, 또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이후 지역에서 영화(예술) 강사로 활동했는데, 목포 내에 독립영화와 다양성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공동체 상영 등 여러 실험을 하며 전용관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지금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MM은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고, 소통하는 공간


3년전 처음 독립영화관을 열 때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한 때는 <정성우 영화관>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수많은 ‘우리’가 이곳을 위해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MM이 올해 협동조합으로 전환되기도 했구요. 

저는 이곳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과 함께하는, 지역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공간의 명칭인 MM도 단일한 의미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목포 무비, 목포 메모리, 목포 목원동(처음 영화관의 소재지), 목포 만호동 등 다양한 의미부여가 가능한데, 이 공간을 이용하시는 각 분들의 생각과 의미, 기억으로 재해석되기를 바랍니다.

처음 문열었던 동네를 떠나 5개월간의 준비기간 후 지금의 장소에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면서 MM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되었는데요. 현재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라는 역사를 담고 있고, 이 동네는 50년 넘은 건어물 유통상 밀집지역입니다. 이 공간을 협조받는 단계부터 지역주민들께서는 이곳 MM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젊은층에게 호의적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공간과 지역이 더 어우러지는 부분을 계속 고민하면서 주민과의 다양한 소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만호동 주민무료 영화 상영회’도 자체로 운영하고, 우리마을 예술축제 ‘2020 영화로운 만호’(목포시, 전남문화재단) 등을 진행하며 보다 더 친근하게 주민에게 다가서고 만나고 있구요. 그 밖에 다양한 지역기관들과 협력하며 청소년영화학교(전남교육청, 전남복지재단), 농어촌 성평등 문화혁신 프로그램 ‘청바지’(전남여성가족재단) 등도 운영했는데, 독립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함을 깨닫고 있고요. 이렇게 ‘지역과 함께하는 것’이 지역 독립영화관의 핵심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건물 입구에서 MM 에 들어서기까지의 풍경.  수협창고인가 싶어 선뜻 들어서질 못했는데  나무 입간판이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MM은 소소하고 작은 감동들이 곳곳에 베어있는 공간


처음 독립영화관이 문을 열였을 때, 우리가 무언가를 특별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많이들 좋아해주셨습니다. 그 표현으로 표지판을 만들어 선물 주시는 분도 있고,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구요. 만호동으로 이전해서도 여전히 관객분들이 보여주시는 소소하고 작은 표현들에 감동을 얻고 있는데요. 기억나는 관객 중 한 부부가 있어요. 아내분이 먼저 혼자 목포를 여행 하시던 중에 MM을 방문하고 이 공간을 좋아해주시더니, 이후 남편분이 또 혼자 여행을 오셔서는 이 곳을 방문해 주시더라고요. 아내분이 ‘목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강추하셨다면서요. 소소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우리를 계속 버티게 하고 위안과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곳에 다녀가신 분들이 이상하게(?) 공간이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고들 하시는데요. 아마도 그 이유는 우선 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요(웃음). 두번째는 이 곳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5개월동안 힘을 모았던 이들의 마음이 공간에 베어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공간 곳곳의 구성 아이디어는 물론,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의 청소, 벽돌 정리, 페이트칠 등의 손작업과 집기의 선택과 비치까지 직원들이 한땀 한땀 정성을 다했으니까요. 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 시민극장주(후원자), 조합원(협동조합의 구성원) 등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목포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분들도요. 저는 앞으로  5년 내에 우리 MM을 통해 연결되고 이어지는 후원자들을 천명 정도도 만들어 보자는 포부도 가지고 있답니다. 


상영관 앞에서 영화 시작을 기다릴 때의 그 설레임이란...


MM에 들어서면 <커뮤니티룸>이 먼저 관객을 맞아준다.


30석 남짓한 좌석이 있는 상영관이지만, 좌석 하나하나에 관객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지역 내 협력의 결정체,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 


말씀드렸듯 ‘지역과 함께 한다’는 것이 MM의 핵심가치이므로 굉장히 다양한 협력을 하는데요, 그 중 가장 의미있는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올해 7회째 진행된 영화제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우리 영화제는 외부의 지원 전혀 없이 지역 주민들의 지원으로만 5회까지 운영되었었고, 6회째부터는 목포시도 관심을 보이면서 일부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은 지역 영화제가 활성화 되어서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상영, 마을 단위의 영화제가 운영되면서 사람들 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요. 특히 올해는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전북 완주 삼례에서도 <삼례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것입니다.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라는 동일한 타이틀로 연대하고, 또 영화제 준비를 돕기 위해 얼마 전에 삼례를 방문했는데, 우리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새롭게 실험해보고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제 7회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 포스터


지역 독립영화관 운영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은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


3년차 독립영화관입니다만 여전히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현실적 부분에 부딪히게 됩니다. 수익을 어디서 꾀해야 하는지의 고민 앞에서, 극장 운영 뿐만 아니라 영상, 잡지 등의 홍보물 제작 외주는 물론 영화 관광, 영화 로케이션 촬영지 개발, 팸투어 등도 진행합니다. 또 MM의 다양한 SNS채널 운영, 카드뉴스도 직접 진행하면서 이 공간의 운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외부 지원 없이 이 곳에서 6명이나 일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들 놀라시곤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받는 타지역 독립영화관보다 근무 인원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 인원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생존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어려움을 마주치기도 하지요. 어제도 외부 지원사업을 하면서 상처가 되는 순간이 있었고, 그러고 나면 같이 일하는 20대 동료들은 "이렇게까지 하면서 계속 목포에 있어야 할까요?"라며 지쳐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외부 프로젝트 없이는 인건비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분들에게 MM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MM에서는 영화관람 외에도 주민영화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좋아하니까 우리는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최근 MM이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또 여러 과정에서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일단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무슨 일을 하던지 힘든 순간은 항상 있잖아요. ‘어차피 힘들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장 크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할 일이다’라고 생각되어지고, 그것을 누군가가 해야한다면 ‘우리가 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며 책임과 역할을 함께하고 나누어 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영화란 ‘떨림’ 인데요. 영화는 순간 순간 나를 떨리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고 긴장하게 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지라도, 영화에 대해서도 이 공간에 대해서도 그 떨림과 긴장감을 잃지 않고 싶습니다. 


영화로 일하며 신나고 재미있고 안정되기를


지금 이곳의 직원이 저를 포함하여 6명인데요. 저는 향후 5년 내에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영화 관련된 일로 신나고 재미있게 또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돈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내년에 장편 극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시놉시스나 시나리오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곳 목포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분위기의 독립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목포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면


낯선 곳에서의 삶을 탐색하고, 살아가는 경험은 누구나 하는 것 같습니다. 목포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많은 고민 말고, 이곳에서 꼭 무언가를 하려고 결정하고 시작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곳에 와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고민하는 것부터 직접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목포는 한 번 살아봐도 좋은 재미있고 동네입니다. 외지의 많은 분들이 목포에 오셔서 살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목포의 시내, 그리고 바다




녹록치 않을 것이 분명한 지역 독립영화관 운영일텐데도,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계속할 수 있다’며, ‘어차피 쉬운 인생은 없으니,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 낫지 않겠냐?’는 정성우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좋아하는 일을 혼자 하지 않고 ‘우리’로 해내며 버티어 가겠다는 다짐, 후배들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영화(映畫)로 영화(榮華)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바램이 머지않아 현실로 이루어지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요즈음이다. 무엇부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일상이 흔들리기 쉽고, 순간 순간 정신줄을 꽉 잡아야 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함께하는 우리를 만들어 가며 서로 힘을 모아간다면,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무너뜨릴 수는 없겠다는 마음의 힘을 다졌다.

잊지 말자. 우리가 바라는 삶이 있고, 그 바램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 무엇을 해야한다면 우리가 하자고 자처하며, 책임과 역할을 함께해가자는 그 생각이,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리 by 함성
사진 by 프로젝트 올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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