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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능초보 Jan 12. 2023

《그녀의 심청》을 읽고 — 전승을 뒤집는 운용 요소

2022 만화문화론 리포트 / 장판문예 2023 제출•수정고

누워있기협동조합 주최 “장판문예 2023” 평론 분야 제출작.
https://archive--liedowncoop.repl.co/jangpan2023/critique/1.html ​


《그녀의 심청》(seri/비완, JUSTOON, 2017~2019)는 조선의 작자 미상 작품 『심청전』을 GL 장르 및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웹툰이다.


어레인지의 키 (1): 상식과 낙차

특정 문화권에서 공통된 상식으로 되어 있는 고전의 재해석은 주지의 이야기를 이용함으로써 저자•제공자의 메시지를 더 명료하게 투영할 수 있다. 그때 키가 되는 것은 고정 관념을 어떤 방식으로 비틀어 차이를 두는가에 있다. 만약 고전의 완전한 복각•재현을 목표로 한다 하더라도 그 경우 역시 ‘오리지널’이라는 이름표로부터 발생하는 권위를 가지고 동시대 상식 밖에 있는 무언가를 어필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 형제 동화의 ‘잔혹한’ 원본 복각 등.)

같은 시기 연재된 웹소설 원작 웹툰 《용왕님의 셰프가 되었습니다》는 본작과 마찬가지로 심청이 등장한다. 《용왕 셰프》의 심청은 귀엽고 단정한 분위기, 뛰어난 요리 솜씨, 소박하면서도 알록달록 물든 한복 등, 전통적인 여성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서양풍 이세계 러브코미디와 더 깊은 낙차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 경우에는 적절한 고정 관념을 이용해 장르의 오락성을 풍부히 한 사례로 들 수 있겠다.

한편 본작의 전복적 의도는 프롤로그부터 명확하다. 제0화 초두를 보면 주지의 옛날이야기를 구연하는 듯한 내레이션 말풍선을 일반적인 심청 이미지와 비슷한 소녀의 업 숏에 겹쳐 두어 마치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것처럼 유인한다. 그 후 어긋난 인식이 점차 밝혀지며, 시퀀스 절정에 이르러 나타나는 ‘심청’의 모습은 앞선 소녀와 색채, 시선 등 여러 요소를 대비적으로 그린다. 기존 심청으로부터 보인 유교의 이상적 여성상을 초장부터 거절하는 것으로 본작은 메시지 면에서 낙차를 이룰 것을 선언하는 듯한 컷이다.

다음 절부터는 인식의 낙차를 만드는 요소인 캐릭터와 장르의 양 측면을 관찰하고자 한다.


어레인지의 키 (2): 캐릭터와 구조

제3화 중

여기서 나는 고전 동화 「백설 공주 Snow White」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각색한 「흑설공주 Snow Night」(Barbara G. Walker, 1996)를 떠올린다. 해당 단편의 전술에 따르면 저자는 원전에서 왕비가 악역으로 규정되는 요소로 여성의 미추를 계측하는 메일 게이즈와 마법으로 상징되는 영적 권위에 주목하며, 그 미소지니를 파훼하도록 캐릭터 및 인간 관계를 재구성한다. 이러한 캐릭터 구축은 본작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심청과 함께 주역을 맡는 장 승상 부인은 이를테면 제3화에서 심청과 한 가로줄에 색채 대비를 시키는 것처럼 심청과 반대항으로서 나타난다. 영화 《아가씨》(dir.박찬욱, 2016)의 히데코를 모티프 삼은 듯한 그녀는 당시 귀족 여성의 입장을 상징하지만, 실제로 원전에서는 몇 가지 판본에서만 나타나는 이름 없는 단역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를 자극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의 틈을 이용한 운용 폭이 넓어지고, 극을 저자 측이 점거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원전에서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뺑덕은 「흑설 공주」에서의 왕비와 마찬가지로 당시 여성관에서 벗어난 여러 요소—점술사, 자유분방한 사고•행동, 장애인 단독 부양자 등—로 인해 ‘악녀’로 낙인 찍힌 심청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장 승상 부인과 갈등 관계에 있는 아들 부인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필연적인 희생자임을 작중에서 드러낸다.

반면 남성 캐릭터는 대체로 현대에도 대중 의식에 잠재된 차별 의식을 폭로하는 안타고니스트로서 그려진다. 공양미 삼백석을 요구하는 승려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를 이용해 성차별적 가치관을 강화하고 성폭력을 저지르는 전형으로 그려지고, 심 봉사도 그의 장애 이전에 미성년자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성인으로서 그 책임을 방기한 무능함을 전면에 나타낸다. 사실 심 봉사의 묘사가 실질적으로 원전과 비교해 크게 다를 바없다는 점으로, 원전에서도 그를 몰락 문관을 풍자 및 비판할 대상으로서 다루는 판본[1]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인식되지는 않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동일한 구조를 현대 시선에서 재해석하는 효과는 심청이 제물이 되어 승선하는 심청이 심 봉사에게 하고 말을 건네는 장면에서 메시지의 반전이 이뤄지며 절정을 맞이한다(제71화). “아버지, 제발 눈을 뜨고 저를 보세요” 하고, 본디 효행의 끝에 보답 받는 결말부의 대사인 것이, 여기서는 여성이 여성이기에 감당하는 여러 문제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에 대하여 눈을 감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집약으로 대체된다[2].


이미지와 모티프(1): 장르의 기반

이와 같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대폭 표한 본작이지만, 이전 절에서 다룬 「흑설 공주」와 같은 작품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점은, 각 콘텐츠가 뿌리 내린 기반의 차이일 테다. (애초에 「흑설 공주」는 여성주의 연구 일환으로 출판된 사회 과학 서적 수록작으로 보는 편이 옳겠다.) 저자의 관점을 직접 드러내고 서술하는 「흑설 공주」와 달리, 장 승상 부인의 이용 방식은 심청의 눈을 매개한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인에 의해 소위 ‘여성스러움’을 지니게 되는 여태 알려진 “효녀 심청”으로 키워지는 부분(제27화)은 해당 메시지와 별개로 캐릭터의 매력을 한 단계 진전 시키는 스텝인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제31화에서 나오는 성적 농담과 같은 전개를 포함해, GL 만화 특유의 전개와 섹슈얼한 게이즈를 관철하는 양상이다.

물론 이 역시 ‘여성의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긍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전 절에서 캐릭터에 관해 언급한 《아가씨》 모티프는 그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엄격한 가풍에서 성장한 부인에게 바깥 세상을 알려주는 인간 관계, 그녀들 간 음모와 배신, 속박지로부터 도망하는 이야기 구조 등에서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러브코미디, 판타지, 스릴/서스펜스 등의 현대 서브컬처 장르를 적절히 짜는 것을 통해, 프로파간다성 이전에 오락 콘텐츠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증거가 되어, 이야기의 스무스한 현대화를 성공시킨다[3].


이미지와 모티프(2): 물의 이미지

제1화, 제6화에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

원전 『심청전』에서도 본래 인당수, 수중 용궁, 연꽃 등 물과 관련된 모티프가 나타나는 것처럼, 본작에서도 물의 미장센이 다용된다. 주연 둘은 제1화에서 부인이 배에서 떨어진 연못에서 만나고[4], 욕탕에서 관계가 진전되며(제6화), 절정부에서 생존을 위해 함께 싸우며 갈등이 봉합될 때 비바람은 반동 요소에서 그녀들이 리퀴드하게 섞여드는 매개가 된다(제80화[5]).


맺음과 보강: 웹과 단행본의 시퀀스 차이

지금까지 《그녀의 심청》에서 기존 전승을 전복하는 요인을 만화 콘텐츠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해 보아 왔다. 기존에 알려진 전승과 작가가 이용한 장르 요소를 신선하게 조합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낙차는 그곳에 강력한 메시지를 관철할 공간으로 기능한다.한편, 본작은 웹툰뿐만 아니라 단행본에 있어서도 2018년 한국 만화 서적 출판사 중 매상 1위 달성에 기여하는 등 유의미한 지표를 나타냈다[6]. 웹툰 소비가 대부분 웹에서 마치는 것으로 연재 작품 수 대비 서적화율이 낮은 경향을 생각하면 본 단행본은 단독된 비평 대상으로 다루기에 충분할 것이다.

웹툰은 스크롤을 이용한 시퀀스 표현을 볼 수 있지만, 단행본화될 때 매체의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어레인지의 키(1): 상식과 낙차” 절에서 다룬 제0화의 주막 소녀와 심청의 대비는 스크롤을 이용한 충격 효과로 인한 것이었다면, 단행본에서는 와이드 컷 구도를 반복하며 연속 미술적 효과를 바라는 대응을 볼 수 있었다.

최종화 제81화의 파노라마 숏은 전승을 구연하는 프롤로그와 수미상관 구도를 형성하고, 그녀들—즉, 역사의 객체로서 존재해오던 여성들—의 기록을 이어 받는 의미와 연결되는 중요한 엔딩 연출이다. 이 경우도 단행본판에서는 이미지와 메시지의 직관적 합치 효과를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배경과 내용을 액자식 구도로 배치해 그녀들의 이야기를 ‘기록물화’하여, 독자에게 그 기록을 전달하도록 하는 연출로 대체했다고 생각되고, 이렇게 매체에 따른 판본 차이도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보인다. 전승이 그렇듯이.




[1] “심청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lopedia of Korean Culture,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 E0033945.

[2] 단행본 6권 후기 참고. 참고 자료에서는 해당 대사의 맥락 변용만 건들고, 해석은 본 작성자가 더함. 장애를 부정적 비유 표현으로 다룬 윤리적 한계를 포함한다.

[3] 메시지가 지니는 프로파간다성을 부인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님을 밝힌다.

[4] 제1화에서 부인의 오필리아와 같은 이미지는 이후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의 끝자락에 이르는 전개를 암시하며 대조적으로 연계된다.

[5] 여기서도 《아가씨》의 모티프를 짚을 수 있다. Peter Bradshaw, “The Handmaiden review ‒ outrageous thriller drenched with eroticism”, The Guardian, 2017.04.13, https://www.theguardian.com/film/2017/apr/13/the-handmaiden-review-park-chan-wook.

[6] 임소라, “단행본매출 1위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 올 상반기 5작품 영상화 계약 체결”, 아시아경제, 2019.06.25, https:// www.asiae.co.kr/article/201906250915089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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