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생활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동안 글쓰기가 뜸했다. 생각보다 쳇바퀴 같은 일상이라 자잘할 일들을 적어야지 하면서도 금세 휘발되어 버려서 그런가 보다.
그러다 그냥 자유롭게 글 쓰자 생각이 들어 익명의(?) 블로그에는 습작처럼 정말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고, 이곳에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려고 한다.
나는 첫 직장도 늦게 들어간 편이었다. 여자 동기들은 보통 나보다 많으면 서너 살이 어렸다. 핑계를 대자면 대학생활을 하며 꿈을 찾지 못했다. 이런 저런 공부를 해보다 결국 그냥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뒤늦게 학업을 마무리했다. 덕분에 동년배인 전 남친(현 남편)과 비슷한 시기에 졸업과 취업준비를 하게 되었고, 동반 취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꿈이 없어 졸업이 늦은 만큼 취업도 그냥 서류 통과가 잘 되는 업종으로 집중하여 큰 회사가 아닌 외국물을 먹은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업종도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라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 했고, 첫 일, 이년은 자격증을 따다가 적응도 못하고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외국계에 대한 선망으로 대기업을 무르고 선택한 나의 경솔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외국회사는 또 다른 대기업에 내가 속한 회사를 팔고 떠나버렸다. 우리 회사를 인수한 회사는 심지어 같은 업종의 경쟁사였고 동일 업종 인수합병이라는 엄청난 상태에 놓이고 만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말단에 불과해 그냥저냥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회사 내부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수년간 이 업에 대한 애정을 붙이지 못했기에 여러 가지로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결혼 전에 업무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오고, 스트레스성 위경련으로 인생 최초로 응급실 방문을 하는 등 긴 부적응 기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적응이 어려우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여 직무나 보직 변경을 요구해 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에는 전쟁터와 같은 업에서 함께 하는 동기들도 있고 하니 혼자서만 그런 요청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업무가 심각하게 안 맞는 경우에는 일단 인사팀이든 친한 선배든 조금 어렵겠지만 직속 상사에게든 일단 상담을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안에 있으면 '나를 손가락질하진 않을까?', '부적응자로 보지 않을까?' 이런 걱정부터 되기에 보통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떠나오고 돌아보니 방법 중에 하나였을 텐데 거절당하더라도 한 번 시도는 해봤을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장고 끝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직을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이 업종 자체가 나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이기에 같은 업계에서 이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같은 업종에서 다른 직무로 이직하는 것은 회사 내 이동보다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연차 이직시장에서는 당연히 해당 직무의 경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나름 공부도 많이 하고 자격증도 줄줄이 딴 당시의 업무가 아쉽긴 했지만, 아예 다른 방법의 이직을 택했다. 공무원이 나이 제한을 폐지하면서 공기업, 공공기관도 당시 나이를 보지 않는 채용이 일반화되었다. (물론, 사기업도 당시 모두 표면적으로는 나이 제한은 폐지했었다.) 나는 소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을 바라는 심정으로 공공기관과 공기업 쪽에 신입으로 원서를 넣었다. 필기시험을 보는 기관은 어렵지 않게 서류와 필기시험을 통과했으나 면접의 고배가 첫 취업보다 더 많았다. 물론 나의 능력과 자질이 그 회사에 닿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역시 30대 기혼자의 구직은 딱히 뽑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의 임신 출산으로 잠시 멈춘 이직 과정은 출산휴가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재직 중 이직준비를 했다는 점은 전 직장의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달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수가 된 상태였던 나의 직장은 이직 준비할 때에 합병이 진행 중이었기에 많은 인원들이 정리되고 가능한 사람은 이직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최종적으로 현재의 직장에 합격하여 퇴직 의사를 밝히고 소속 부서장과 임원께 직접 연락을 드렸을 때에도 연차 제한도 없이 명예퇴직 권고가 횡행하던 분위기에 제 발로 나가 준 나를 그리 미워하지 않고 잘 되었다며 축하해 주셔서 큰 스트레스 없이 좋게 잘 나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 중이었기에 딱히 당장 없으면 큰일 나는 인력이 아닌 점도 있었겠고, 경쟁사 이직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내 전 직장은 여성 비중이 크고 육아휴직도 어렵지 않은 쪽이었다.)
둘째까지 낳은 상황에 나를 받아 준 회사는 어떤 회사냐 하면, 정말 편견 없이 나를 바라봐준 회사라고 할 수 있겠다.
(2편에 계속..)